내 30대 중반이었던 1990년대 말에 초등학교에서 영어교과가 도입되었다. 교육청에서 영어교육 활성화를 위해 구미시의 영어 담당 교사들을 모아 놓고 영어수업전문가라는 모 교사의 수업을 공개시켰다.
영어수업전문가의 수업 도중에 사달이 났다. PPT 띄우기 위해 TV를 켜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고 교사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한 아이가 “선생님, ‘고장났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해요?”라고 물은 것이다. 교사는 돌발상황에서 당황한 탓인지 “It’s out of order”를 떠올리지 못했다. 난감해 하던 그 교사의 표정이나 수업 관찰자 모두가 민망해 했던 당시의 상황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영어수업과 관련한 두 번째 에피소드로 작년에 내가 관내 영어영재학급에 출강할 때 겪은 일이다. 내 특기인 ‘노래로 영어배우기’를 가르치는데, 어떤 노랫말에 나오는 ‘pray’라는 낱말을 설명할 때였다. 한 아이가 “선생님, 그 단어 뜻이 ‘먹이사슬’과 관계있는 것 아닌가요? 전에 한 번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요.”라 하는 것이었다.
“아, 좋은 질문이다. 근데, 네가 들은 단어는 아마 ‘pray(기도하다)’가 아닌 ‘prey(먹이)’일 거야.” 라고 답해줬더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의 눈빛은 ‘선생님, 대단해요!’라는 듯했다.
두 에피소드의 차이는 어제 글에서 언급한 A교사와 B교사와의 차이 바로 그것이다.
영어수업전문가라는 분은 내가 잘 아는 분이다. 나는 그 분보다 영어 실력은 낫지만 시범수업을 그 분만큼 근사하게 하진 못한다. 그러나 시범수업 잘 하는 것은 영어 지도를 잘 하는 것과 별 관계가 없다. 영어를 잘 가르치는 교사란, 학생들이 질문했을 때 막힘없이 답해주는 교사, 학생들이 어려워 하는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교사이다. 한마디로, 영어실력이 뛰어난 교사다.
수업이 수업기술의 문제일까? 대관절 수업기술은 뭘 말하는 것인가? 1년에 한 두 번, 참관자들 앞에서 쇼 잘 하는 것 아닌가? 영어 실력이 얕은 교사가 어떻게 영어를, 음악 기능이 부실한 교사가 어떻게 음악을, 학생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2.19.
'교육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치판단은 구체적으로 (0) | 2018.07.12 |
---|---|
다문화 관련 (0) | 2018.04.11 |
현재의 능력 외에 미래의 발전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0) | 2018.02.20 |
선량한 나눔, 행복교육과 사람사는세상의 필요충분조건 (0) | 2018.02.01 |
망국적 찍기 특화 교육 (0) | 2018.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