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영화 이야기

보헤미안 랩소디

리틀윙 2018. 11. 16. 11:33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한때 록 마니아였던 내가 이 영화를 놓칠 수 없다. 더구나 유주얼 서스펙트엑스멘을 연출한 명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작품이어서 기대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이 영화는 영국의 록 그룹 퀸Queen의 리더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퀸의 음악이 워낙 훌륭하고 또 프레디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프레디는 자신은 퀸의 리더가 아니라 그저 리더 싱어일 뿐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는 리더 이상이다. 그룹 퀸을 대표하는 곡들이 대부분 프레디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퀸을 상징하는 명곡 중의 명곡이 이 영화의 제목인 [Bohemian Rhapsody]이다.

 

보헤미아는 체코공화국의 2/3를 차지하는 지역 이름이다. 중세 보헤미아에서 집시들이 다수 거주했는데, ‘보헤미안은 집시처럼 가난하지만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Bohemian’이 이태리어로는 ‘Bohème’이 되는데, 푸치니의 오페라 제목 라 보엠은 세속적인 습속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뜻한다.

 

그룹 퀸의 집시들도 처음에는 푸치니의 라보엠에 나오는 예술가들처럼 가난했다. 영화에서는 이들이 타고 다니던 사구려 밴이 고장을 일으켜 길가에 차를 세워 고치는 장면으로 이러한 형편을 묘사한다. 그러다가 이들은 [보헤미안 랩소디]로 대박을 터뜨린다.

 

프레디는 작곡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멜로디를 치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피아노를 두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프레디가 누운 상태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트로 아르페지오 도솔도미라솔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레드 제플린의 음악들과 함께 록음악 세계의 격조를 높인 불후의 명곡의 맹아가 태동한 역사적인 순간이라 하겠다.

 

이 걸출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겪은 산통이 예사롭지 않다. 이 한 곡을 위해 4개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3주 동안 작업을 했으며, 이 곡의 백미인 아카펠라 합창 파트 녹음에만 70시간이 걸렸다. 이 부분은 200인조 합창단원 효과를 내기 위해 퀸 멤버들의 목소리를 180차례 오버더빙하였는데 녹음테이프가 닳아 헤질 정도였다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퀸의 4집 앨범 타이틀이 ‘오페라가 있는 밤A Night at the Opera’이다. 프레디는 아마도 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에서 영감을 얻은 듯 곡명을 '보헤미아광시곡'으로 지었는데, 웅장한 오페라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러닝타임이 6분 넘는 대곡을 만들었다. 음반회사(EMI)에서는 곡이 너무 길면 라디오방송국에서 틀어주지 않아 대중에게 알려지기 어렵다며 세 부분으로 나눠서 발표하기를 강권했지만 이들 자유로운 보헤미안들은 소신을 밀어붙였다. 이 곡 발표 후 평론가들은 혹평을 퍼부었지만 팬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영국 본토를 넘어 미국, 브라질, 일본 등의 순회공연을 하면서 퀸은 전 세계의 록음악 팬들을 사로잡았다.


 

영화 제목이자 퀸을 대표하는 곡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페라적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 영화는 곳곳에 오페라 아리아를 배치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 이 영화에서 그런 부분이 세 번 나온다. 그 중 두 곡은 푸치니의 아리아로서 프레디가 메리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장면에서 흐른다. 메리에게 반지를 건네며 구혼하는 장면에서 나비부인의 [어느 갠 날], 또 다른 중요한 장면에서는 투란도트의 아리아가 흐른다. 마지막 하나는 좀 전에 언급한 음반회사와 이 곡 발표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나오는데, 비제의 카르멘의 유명한 아리아 [사랑은 자유로운 새]이다. 퀸 멤버들의 보헤미안적 정서를 잘 대변하는 곡 선정으로 보인다.

     

 


 

 

인물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이 영화는 시종 프레디의 감정선을 쫓는다.  

프레디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이다. Bulsara라는 이름에서 보듯 프레디의 혈통은 백인이 아닌 인도계이다. 프레디는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프레디의 아버지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어서 아들의 보헤미안적 기질을 못마땅해 했다. 프레디가 패밀리네임()까지 버리고 이름을 통째로 프레디 머큐리로 바꾼 것은 자신의 출생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으로 이해된다.

 



 

 반면, 어머니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고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애정 또한 남달랐다. 영화 도입부에서 프레디가 퀸의 전신 밴드 스마일 공연을 보러 외출할 때 어머니는 다 큰 아들에게 굿바이키스를 요구하며 스킨십을 나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입장하면서 아들과 부딪히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이 두 대조적인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아마도 프레디의 삶 전반에 드리워져 있었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읽을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노랫말에서도 프레디는 수시로 어머니를 찾는다.

    

Mama, just killed a man...

Mama, life had just begun...

Mama, ooh didn't mean to make you cry...

Mama, ooh I don’t want die...

Oh, mama mia, mama mia (Mama mia, let me go.)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프레디의 애착은 메리Mary Austin에게로 전이된다.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흔한 오해 중의 하나가 동성애자라는 것인데, 정확히 말해 그는 양성애자다. 그리고 무대에서 보이는 마초적 이미지와는 달리 프레디는 유약한 심성의 소유자다. 그런 프레디에게 메리는 지친 영혼의 안식처였다. 프레디에게 메리는 단순한 연인 이상인 평생의 반려자였다.

 

 

  

내 연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왜 메리를 대신할 수 없느냐고 했지만, 다른 이유는 없다. 그건 그냥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프레디 전기문의 글귀를 약간 수정해서 인용 )

 


평생의 반려자를 향한 프레디의 각별한 사랑은 팝 음악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레나데라 할 [Love of My Life]을 탄생시켰다. 이 곡은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4집에 수록되었는데 프레디의 보컬 못지않게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이 곡은 스튜디오 버전과 라이브 버전의 결이 많이 다르다. 스튜디오 버전에서 브라이언은 하프로 연주하는데 라이브에서는 12현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한다. 대개 라이브보다 스튜디오 버전의 음악이 좋은데 이 곡은 예외다. 그 이유는 수십 만 관중들이 프레디의 백 보컬로 동참하여 합창을 하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145초 부분에서 155초 사이에 브라이언과 프레디가 연주를 멈추고 관중들끼리만 Bring it back Bring it back don’t take it away from me 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be... 떼창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보는 우리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프레디의 러브 옵 마이 라이프인 메리에겐 오죽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afaXP6lhvLw



역설적으로, 영화에서 프레디가 [Love of My Life] 라이브를 비디오로 메리에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메리와 프레디는 갈라선다. 프레디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고백하고 메리는 프레디 주변에 너무 많은 러브가 있는 것에 지친 나머지 마침내 이별을 고한다.

  

 메리가 떠난 뒤 프레디는 메리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 맨션으로 옮겨 생활한다. 메리 없는 프레디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메리가 미치도록 그리웠던 어느 날 밤 프레디는 메리에게 전화를 건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투란도트의 아리아 [주인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Signore, ascolta]가 흘러나오고 프레디가 메리에게 말을 건넨다. 메리더러 창가로 와보라고 하고선 랜턴을 껐다 켰다 반복하면서 메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요청한다. 개구쟁이 어린애처럼 천진하고 소박한 프레디 성향과 메리의 사랑을 갈구하는 통절한 마음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장면이었다. 좀 더 밀도 있게 감동적으로 그려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까닭에 흥행을 목적으로 스토리의 상당 부분이 각색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한다. 그 중요한 한 예가 프레디의 연인이자 매니저였던 폴 프렌터Paul Prenter에 관한 부분이다. 영화에서 프렌터는 프레디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나쁜 남자로 나온다. 너무 나쁘게 그려서 영화 보는 내내 저런 식이면 명예훼손감인데하는 우려가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보니 프렌터는 프레디와 같은 해(1991)에 같은 병으로 죽었다. 만약 그가 지금 생존해 있으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프렌터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기획자(봅 겔도프)의 공연 참가 제의를 프레디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나지만, 실제로는 이 행사가 끝난 1년 뒤에 해고되었고 또 해고의 이유도 다르다.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는 프렌터의 심각한 악행이 TV에 출연하여 프레디의 치부를 폭로하는 것인데, 프렌터는 TV에 나간 것이 아니라 영국 일간지 더 선에 프레디에 관한 민감한 정보를 팔아넘겼을 뿐이고 이것 때문에 해고되었다.

 

 

 

프레디의 삶에 파멸이 있었다면 그 원인은 주위 사람들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시각일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흥행을 위해 작품의 컨셉트를 가족 드라마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러자면 프레디의 난잡한 사생활은 축소시키고 악인을 배치하여 프레디를 피해자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폴 프렌터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된 피해자 코스프레라 하겠다. 자서전에서 프레디는 자신의 과도한 성욕에 관해 진술한다.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많은 파트너와 관계를 맺었다. 물론, 성욕이 강하다고 해서 양성애자라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드적으로, 프레디의 왕성한 성욕은 왕성한 창작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퀸의 다른 멤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형은 실제 퀸 멤버들의 아우라와 매우 흡사하다. 사진에서 위쪽(Reel - ‘필름이란 뜻일 듯)은 영화 속 퀸 멤버들이고, 아래 쪽(Real)은 실제 퀸 멤버들이다. 이들 중 프레디 머큐리를 제외한 세 명은 거의 똑같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직접 연주나 노래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만큼은 실제 퀸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다. 특히 프레디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의 동작 하나하나가 프레디 머큐리를 빼다 박았다.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룹 퀸의 중요한 음악들은 대부분 프레디 머큐리의 작품이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음악 역량도 걸출하다. 브라이언 메이는 자신이 직접 기타를 만들어 연주하며 퀸 특유의 기타 사운드를 창조했다. 로저 테일러의 파워풀한 드럼 연주도 일품이다. 퀸의 음악을 들으면 무슨 천둥소리를 듣는 듯한 웅장한 느낌을 받는데 그게 로저 테일러의 역량이다. 퀸의 멤버 가운데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은 존 디콘은 작곡 능력이 뛰어나 [Another one Bites The Dust], [Spread Your Wings], [I Want To Break Free], [You're My Best Friend] 따위의 훌륭한 곡을 만들었다.

 

 



 

흔히 록 음악 하면 시끄럽고 과격한 이미지 때문에 보통의 음악팬들은 기피한다. 하지만, 이들 영국신사들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 록 음악에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도 퀸의 음악에는 흥미를 품으실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영화관을 찾으시기 바란다. 퀸을 좋아하시는 분에겐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없을 것이며, 퀸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통해 이들에게 애정을 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