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영화 이야기

남과 여

리틀윙 2017. 2. 26. 05:58

전도연 주연의 [남과 여]를 봤다.

혼외연애(이른바 불륜’)를 주제로 한 영화 가운데 내가 본 것 중 최악이다. 사실, 혼외연애는 한 쌍의 남과 여가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저급한 행동양식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가장 숭고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혼외연애를 다룬 문학예술작품 가운데 수작이 많다.

 

.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를 둔 두 남녀가 핀란드 특수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나 하룻밤 사랑을 불태우는데 귀국 후에 우연히 다시 만나 혼외 연애 행각을 이어가지만 결국 존재 조건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경에 이른다는 스토리이다.

영화의 한계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각각 건실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선량한 두 남녀가 어찌 그런 모험의 세계로 뛰어 드는가 하는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이다. 그 필연성에 대한 철학적 배경이 빈곤하니 남녀의 애정행각은 그저 발정 난 돼지들의 몸부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나마 이 영화가 매력을 끄는 요소는 핀란드의 시원한 설경이 간간히 배치되는 점이다.

 

그 중 마지막 한 장면은 참 멋있다.

전도연이 애인(공유)의 소재를 근근히 파악하여 핀란드로 향하는데, 공유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선 황망한 마음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혼자 흐느끼는 장면이다.

택시 안에서 마구 울어댄다. 설움을 토해 낸다.

 

이 뒤에 멋있는 한 장면이 나오는데, 여성 택시 기사가 전도연을 배려해 실컷 울게 하기 위해 차를 멈추고선 자신은 바깥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한국의 택시기사라면?)

 

순간, 공유가 운전하는 SUV가 지나간다. 전도연이 우는 장면과 교차편집으로 카메라는 공유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공유 아내의 멘트가 들려온다.

고마워요!”

"뭐가?”

그냥 고마워요!”

 

아내도 공유와 전도연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고맙다는 게 뭘 뜻하겠나?

 

.

 

이런 유치한 혼외연애 관계에서, 대개 작업을 먼저 거는 쪽은 남성이다. 핀란드에선 얼떨결에 그랬더래도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전도연은 사실 별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았다. 순전히 남성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연을 이어 간 것이다. 그런데 그 종착지점에서 망가지는 것은 전도연이다.

 

영화 제목을 왜 남과 여라 했는지, 이 화두로부터 감독이 말하고자 한 것이 뭔지 모르지만......

그런 관계가 남과 여인 것이다.

 

혼외연애에서 남성 동물은 상황을 종료시키고 가정으로 돌아가면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여성은 모든 걸 잃는다. (물론, 영화 속의 전도연도 돌아갈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주 이례적인 시추에이션일 뿐이다.)

 

 

 

이 허접한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은.... 좀 전에 말한 핀란드 여성 택시기사가 등장하는 부분인데...

차 안에서 실컷 운 다음, 전도연은 택시 기사를 향해 다가간다.

 

여성인 기사가 여성인 손님에게 담배를 권한다.

- Do you want one? 한 대 하실래요?

- Yes, please! . 주세요.

 

전도연 선수 담배를 건네받고 기사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준다.

두 사람은 먼 산을 보고 시원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담배 참 맛있겠다.

 

(담배 끊은지 7년이 돼 가는데, 이런 모습 볼 때 담배를 다시 싶어진다. 백해무익한 담배가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바로 이런 점이다.

배려와 연대의 매개체!)

 

설원 속의 두 여성이 너무 멋있다.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적어도 여성의 입장에선 '남과 여보다 여와 여가 훨 낫다.

 

2016.8.1.

'필인의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홍진 감독의 영화  (0) 2017.02.26
아키라 앤 더 비  (0) 2017.02.26
영화 '곡성' 평론  (0) 2016.05.17
영화 [땡큐, 마스터 킴] 감상평  (0) 2015.08.08
쎄시봉  (0) 2015.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