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영화 이야기

쎄시봉

리틀윙 2015. 2. 22. 09:37

<국제극장>에 이어 7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쎄시봉>을 봤다. 설 연휴를 맞아 극장 한 프로 땡기고픈 마음에서 인터넷 극장가를 서핑하던 중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세간의 평이 너무 형편없어서(평점이 3점대였다) 잠깐 망설임이 일었지만 음악영화이고 하니 무조건 보고 싶었다. 내심 괜찮은 영화로 보이는데 대중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이 영화 너무 괜찮다. 작품성 면에서 국제시장보다 뛰어난 수작으로 평하고 싶다.

 

 

 

 

영화는 음악잡지사 여기자가 가수 이장희씨를 찾아 인터뷰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장희는 7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쎄시봉의 전설을 있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 기자는 모종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은퇴한 가수를 어렵사리 찾았다. 쎄시봉을 상징하는 뮤지션 트윈폴리오가 원래는 듀엣이 아니라 트리오였다는데, 그 한 사람이 누구며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으로 이 영화의 흥미있는 이야기보따리가 전개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첫 장면은 강력한 사운드와 함께 시작된다. 진정한 한국 대중문화의 산실 서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무대에서 라이브 공연판이 벌어지고 있다. “~ ~ ~ 딜라일라...” 극중 인물 조영남이 원작 가수 톰 존스 못지 않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딜라일라를 부르는데 정말 감동이다. 여기서 살짝 사족성 안티를 걸자면, 이런 고급스러운 사운드는 당시 음향장비 수준에선 불가능했다. , 이건 리얼리즘이란 차원에서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것일까? 이런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극중 인물들의 음악적 재능들도 하나같이 출중한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음악적 요소를 빼면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딜라일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덧붙일 필요를 느낀다. Delilah는 보통 콩글리쉬로 데릴라로 일컫는다. '삼손과 데릴라' 할 때 그 데릴라 말이다. 구약성경 사사기에서 영웅 삼손을 파멸로 이끈 사악한 여인 딜라일라라는 이름에 부여된 시적 상징은 팜므 파탈그 자체다. 음악 <딜라일라>에서도 그러하다. 톰 존스의 원곡이나 조영남의 번안가요나 가사내용이 비슷하다.

 

I saw the light on the night that I passed by her window

I saw the flickering shadows of love on her blind

She was my woman

As she deceived me I watched and went out of my mind

그 날 밤 그녀의 집을 지나칠 때 창문 사이로 흘러나온 불빛을 봤어

사랑의 그림자가 커튼 위로 아른거리는 것을 봤어

(shadows가 복수임을 눈여겨보라. 그리고 blind는 블라인드-커튼의 뜻이지만, 동시에 눈 먼 마음이란 의미의 중이법으로 보인다. 이런 문장은 우리말로 못 옮긴다.)

그녀는 나의 여자였건만

두 눈 뜨고 그녀가 날 배신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미칠 것만 같았어.

 

아래는 조영남의 번안곡 가사

 

밤깊은 골목길 그대 창문앞 지났네

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

그댄 내 여인 날두고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나

오 나의 딜라일라

왜 날 버리는가

애타는 이 가슴 달랠 길 없어 복수에 불타는 마음만 가득찼네.

 

음악영화 쎄시봉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음악이 왜 하필 딜라일라일까? 오페라에서 서곡이 오페라의 전체 줄거리를 암시하듯이, <딜라일라>는 이 영화의 플롯에 대한 암시이자 극적 효과를 위한 상징물로 중간 중간에 배치된다.

 

조영남의 오프닝 공연이 끝나면 쎄시봉이 자랑하는 메인 프로 '전국대학생 노래경연대회'가 펼쳐지는데 연세대 의대생으로 미모와 스펙을 자랑하는 윤형주(강하늘)7주째 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때 윤형주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송창식(조복래)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둘은 캐릭터와 음악 성향 면에서 완전 대조적이다. 윤형주가 남자치곤 너무 곱상한 엄친아 형인데 반해 송창식은 벙거지 차림의 터프가이이다. 송창식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유명한 아리아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러 관중을 압도한다. 결과는 송창식의 승리.

 

 

 

 

극 중에서 윤형주는 노래 잘 하는 것과 여학생들에게 인기 폭발인 점을 빼곤 한마디로 싸가지다. 그리고 송창식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국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실은 이렇게 불편한 해후였다는 것도 흥미를 끈다. (영화에서 쎄시봉의 사회자가 송창식을 홍익대 학생으로 소개하지만, 실제로 송창식은 대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송창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그 무대에 서기 위해 대학생을 사칭했다고 했으니)

그러나 플롯의 전개상 윤형주-송창식 두 사람이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우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쎄시봉 사장(권해효)은 성격 면에서나 음악적 컬러 면에서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을 중화시킬 수 제 3의 인물을 넣어 트리오를 만들 것을 구상한다. 그 인물을 물색하는 미션을 맡은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스토리 메이커인 이장희이다. 이장희가 데려온 대학생 오근태는 통영 촌놈으로 기타도 칠 줄 모르고 노래만 부를 줄 아는 순진한 청년이다. 그러나, 윤형주-송창식에 비해 존재감이 한참 떨어지는 이 풋풋한 남자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자 자랑이다. 오근태는 극중 시대적 배경인 순수의 시대의 상징이다.

 

 

 

 

쎄시봉은 당대 청년들의 사교클럽이기도 했다. 중세 프랑스의 베르사유 마냥 타락한 부르주아들을 위한 사교클럽이 아니라 선남선녀가 만나 먼발치에서 서로에 대한 흠모의 정을 키워가는 공간이었다. 바로 그 공간에서 세 사람 앞에 어느 날 민자영이 나타난다. 모두가 한 눈에 반한 이 여신의 이름은 비너스가 아니라 뮤즈다. 주인공들이 음악에 더욱 열심히 몰입하게 된 이유가 된 여인인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세 사람이 이 여신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하는 것은 없다. 스토리 전개상 까칠한 형주와 터프한 창식은 조기 탈락하고 최종 남은 사람은 근태였다. 그러나 근태가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근태와 자영이 짝으로 맺으져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얼마나 영화가 시시하겠는가? 모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비극미가 생명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뮤즈는 딜라일라가 돼야 한다.

 

(쎄시봉에서 결성된 트윈폴리오가 원래 3인조 트리오로 출발한 것은 맞다. 윤형주, 송창식 외에 이익균이라는 분이 함께 했는데 이 분이 군에 입대하면서 듀엣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김효근 기자에 따르면, 영화 속 인물 오근태는 이 이익균을 모티브로 각색한 것이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062/17168062.html?ctg=17

한편, 민자영은 실제 인물 윤여정일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알다시피 윤여정은 쎄시봉의 왕 형님 조영남 씨와 짝을 맺는다. 영화 속에서 민자영은 오근태를 버리고 당시 잘 나가던 영화감독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결혼을 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혼을 하여 혼자되는 점에서 윤여정과 살짝 닮아 있다. 이처럼 현실세계와 픽션와 닮을 듯 닮지 않은 애매한 경계설정 또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흥밋거리가 아닌가 싶다.)

   

 

 

어느 비오는 날 근태의 우산 속으로 자영이 들어 왔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자영이 근태 마음으로 훌쩍 다가온 것이다. 자영이 근태더러 미도파백화점까지 우산 좀 씌워 달라고 했는데, 맙소사 미도파백화점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때 영화는 초자연적 능력(판타지 기법)을 발휘해 미도파백화점을 먼 곳으로 옮겨 버린다. 두 사람은 다정스레 '빗속을 둘이서' 걷는다. 그 뒤로 무지개가 비친다. 아, 환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이런 허접한 사진들은 글쓴이가 영화관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다. 마침 제일 뒷좌석 SWEETBOX를 예약했던 터라 관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자영이 고무신 바꿔 신는 날부터 근태는 세상으로부터 숨는다. 근태 없이 창식과 형주는 트윈폴리오라는 이름으로 방송국에도 출연하며 한국가요계의 총아로 성장해간다. 그러나 세상사 호사다마라, 대마초 파동으로 팀은 와해되고 쎄시봉도 몰락해간다. 안타까운 것은 쎄시봉 가족들이 대마초 피웠다는 것을 경찰에 까발린 배신자로 사람들이 근태를 의심하는 점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근태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 것은 그가 연기처럼 잠적한 탓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 가련한 우리의 주인공이여!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나고 영화의 무대도 미국 라스베가스로 옮아간다. 또한, 주인공 근태와 자영, 장희를 맡은 배우도 바뀐다. 대딩에서 중년으로. 그리고 이 영화, 지금부터가 더 재밌어 진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장희 씨는 대마초 파동 이후 국내에서 활동을 접고 미국 LA에서 교민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되려면, 여기서 우리의 병태와 영자의 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혼 뒤 40대 자영의 역할은 김희애씨가 맡았다. 김희애가 친구와 함께 라스베가스 카지노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흘러나오는 <웨딩케익>을 감상하고 있다.

트윈폴리오를 표상하는 쓰리핑거 기타주법의 아름다운 음악 웨딩케익은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배치되고 있다. 영화를 한 번 밖에 안 본 내가 기억하는 웨딩케익만 해도 무려 여섯 번이나 된다. 이 허접한 감상문은 지금부터 이 음악을 중심으로 풀면서 마무리 할 것이다.

 

1) 자영의 카셋트

 

영화 속에서 이 음악을 쎄시봉 친구들에게 전해준 장본인은 여주인공 민자영이다. 자영이 이 음악을 인상 깊게 듣고선 소니 카셋트와 함께 근태에게 건네는 것이다. ‘웨딩케익과 무관하게 카세트 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장면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통영으로 내려온 자영이 근태와 밤을 보내는 장면은 흡사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친을 두고 코 골며 자다니... 등신 같은 놈^^) 자영은 카세트에 자신의 심정을 담은 메시지를 녹음해서 남기지만, 그 내용은 근태가 떠난 뒤 장희를 통해 발견됨으로써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걸 보면 자영도 그리 나쁜 여자, 즉 팜므 파탈로서의 딜라일라는 아니다. 하긴 뇌살적인 미모의 소유자인 삼손의 데릴라도 자기 부족 남성의 협박으로 삼손을 등졌을 뿐 인간성이 그리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2) 라스베가스

 

앞서 말한 라스베가스 공연장에서 이 음악이 연주될 때 중년이 된 자영이 남다른 심정으로 이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자기 친구에게 건네는 장면이다. 묘하게도 같은 공간에서 자신의 옛 남친 근태도 그 노래에 얽힌 비슷한 이야기를 자기 회사 후배에게 전하는 것이다. 좁디좁은 한국 땅에서 20년 동안 못 만나던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넓은 땅 미국 내의 같은 건물 안에서 같이 있는 줄도 모른 채 비슷한 이야기를 파트너에게 전하고 있으니... C’est la vie!

 

자영이 친구에게 말한다.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익 원곡이 저 곡이야!”

오리지널 웨딩케익은 코니 프란시스의 곡이다. 코니는 형주와 창식보다 약간 누나뻘 되는 여가수로서 영화배우 뺨치는 미모로 60년대의 팝계를 주름잡은 컨츄리 싱어이다. 이 곡은 전형적인 컨츄리 리듬의 경쾌한 음악으로 가사 내용 또한 우리가 아는 칙칙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3) LA 교민 방송국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자영과 근태는 같은 건물 속에 있으면서도 서로 마주치지 못했지만 근태와 장희는 반가운 재회를 가진다. 그리고 장희가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에 근태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여 두 사람이 라이브로 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 끝에 장희의 의미있는 멘트.

트윈폴리오가 될 뻔 했던 남자 김근태씨를 초대 손님으로 모시고...”

이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운전하던 자영이 마침내 그 멘트를 운명처럼 접속하여... 차를 돌려 방송국으로 향한다. 안내원에게 이장희 씨 만나러 왔는데 방송 끝날 때 까지 기다리면 되냐고 한다. 아뿔사, 그러나 이 방송은 녹음방송이었기에 이장희씨도 함께 출연한 게스트도 떠나고 없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질은 우리 관객들을 감질 맛나게 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운명 같은 해후를 허락한다. 이 장면을...... 이 영화는 정말 너무 멋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근태와 자영은 각각 국내선과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 내의 흡연실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극적으로 상봉한다. 흡연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자영은 안에서 밖을 향해 보고 있고 근태는 밖에서 안을 향하는데...... 카메라는 유리문을 희미하게 블러(blur) 처리함으로써 이 극적인 장면의 감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이 멋있는 장면을 나의 허접한 문체로는 실감나게 표현하지 못하겠다. 영화를 꼭 보기 바란다.

다음 씬은 공항 내의 커피숍. 어색한 침묵을 깨고 자영이 근태에게 말을 건넨다.

자영: 애들은?

근태: 유치원 다니는 딸 하나 있어.

자영: (뜻밖이라는 듯이 웃으며) 결혼을 늦게 한 거니, 애를 늦게 가진 거니?

이 물음에 근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유심히 보라. 근태는 네 소식은 여성지 같은 데서 본 적이 있다.”는 엉뚱한 멘트로 화답한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말하지 않음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이 절제의 미학을 통해 이 영화는 빛을 발한다. 이 말해지지 않은 대사에서 관객은 인물의 특별한 심정을 읽어내야 한다. 근태가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다음 장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을 통해 유추해 낼 수 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두 남녀는 각자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이별한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임박해서 그러하겠지만 우리 삶에서 연인끼리의 만남 또한 이 찰나적 만남에 이은 오랜 헤어짐과 뭐가 다를까? 그러나 만남은 순간일지언정, 아름다운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은 영원하다. 속으론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나만 겉으론 쿨하게 헤어지는 근태, 그러나 한참 가다 뒤를 돌아본다. 바로 그 순간 잔잔한 배경음악이 짧게 흐르다가 멈추면서 씬이 바뀐다. 자영은 공중전화로 장희에게 전화를 걸어 근태와의 만남을 전한다. 장희와 자영의 대화장면에서 장희가 세도나의 바위 위에서 명상하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장희는 이 명상을 통해 이 영화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대마초파동 때 수많은 연예인들이 엮어 들어갈 때 왜 민자영만 빠졌냐는 것이다.

여기서 1)번 웨딩케익 장면을 다시 보도록 하자. 거기엔 자영이 근태에게 , 나를 위해 뭘 해 줄 수 있니?”라고 묻는다. 이 뜬금없는 물음에 근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노래로 대답한다. 근태의 절친 이장희가 만든 유명한 노래로 이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발라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다. 그렇다. 근태는 사랑하는 여인 자영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순정남이다.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와의 의리를 저버리면서 자영을 보호한 것이다. (행간을 읽지 못하는 분은 반드시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이 대목에서 글쓴이는 Percy Sledge의 아름다운 R&B 음악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When a Man Loves a Woman>의 노랫말을 떠올렸다.

 

When a man loves a woman

Can't keep his mind on nothin' else

He'd trade the world

For a good thing he's found

If she is bad, he can't see it

She can do no wrong

Turn his back on his best friend

If he puts her down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그의 마음속엔 그 여자 외에 아무 것도 자리하지 않아요

그는 기꺼이 세상과 거래할 겁니다

자신이 발견한 그 소중한 대상을 위해서라면 말예요

설령 그녀가 나쁜 사람이래도 그는 그것을 보지 못해요

(자신에게) 그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녀를 붙들어 두기 위해서라면 그는

심지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도 등질 수 있을 겁니다

 

장희의 멘트가 끝난 다음 장면은 수화기가 허공에서 흔들흔들 하는 공중전화 씬이다. 자영이 극도로 어수선한 마음에 수화기도 바로 내려놓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자영이 급히 향한 곳은 말할 것도 없이 근태가 있을 어디이다. 자영이 캐리어를 끌고 공항의 이곳저곳을 헤매며 근태를 찾을 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흘러나온다. 절박한 마음에서 근태를 찾아 헤매는 자영의 얼굴과 이 노래가 겹쳐지는 이 장면은 자영이 이제야 비로소 근태의 사랑, 그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주는 그 헌신적인 사랑을 깨달았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느려터진 그 노래가 끝날 무렵에 드디어 자영이 근태를 발견하고선 아름다운 사내의 이름을 부른다. 흐느낀 목소리로... 오근태! 근태는 뒤를 돌아보며 아무 말이 없다. 아니 침묵으로 많은 것을 말한다.

자영: . ...... , 나 때문에 그랬던 거니? ...... 나 살리려고 친구들 팔았던 거야?

(김희애 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우리 관객들의 눈물샘도 젖어 든다. 그래도 근태씨는 아무 말이 없다.)

자영: 그랬어. 왜 그랬어? (자영의 오른 팔이 근태의 왼쪽 어깨로 향한다)

이때 칠푼이 같은 미국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자영을 말린다. 자막처리 없는 영문 대사로 “Settle down, Ma’am 부인, 진정하세요어쩌구 해댄다. (한심한 인간, 니 같으면 진정하겠냐? 우리의 주인공이 땅콩 부사장처럼 비행기 돌리려는 시도하는 것도 아닌데 웬 주제넘은 참견?)

근태: , 네가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선 무심하게 등돌리고선 제 갈 길을 간다.)

자영: (큰 소리로) 오근태! ...... 오근태! (그리고 흐느낀다.)

 

 

 

그 다음 장면은 트랩 로비에서의 대각선 구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랑하는 여인의 흐느끼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탑승 레인을 걷던 근태는 마침내 쥐고 있던 옷가지를 떨구고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선율은 피아노와 스트링(현악기 음색)이 주고받는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의 변주곡인 듯싶다.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

 

 

4) 자영의 집 앞

 

 

이 장면은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익>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한 점에서 흡사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한다. 자영의 결혼식을 앞두고 군에서 휴가 나온 근태가 그녀의 집 앞에 웨딩케익을 두고 간 것이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장면이 바뀌어 근태는 귀대하는 기차에 몸을 실고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노랫말처럼 하염없이 흘린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진짜 가수 윤형주와 송창식이 쎄시봉 친구들 공연에서 <웨딩케익>을 노래 부른다. 그리고 객석에서 자영과 근태는 다시 은근한 시선을 교환하는 것으로 재회한다.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라는 것. 이 때는 2014년이니 영화 스토리 전개상 자영과 근태가 LA에서 해후한 다음의 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신경질나게 왜 이렇게 쿨한 것이여?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장희의 주선으로 근태가 형주랑 창식이랑 재회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말이 필요 없다. 흡사 창세기에서 에서(에사우)가 그를 배신한 동생 야곱을 뜨거운 가슴으로 껴안듯이 트윈폴리오 친구들은 근태를 뜨겁게 안아준다. 아마도 장희가 근태의 입장을 대변해줬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친구를 저버린 한 남자의 처절한 입장을.

 

5) 엔딩크레딧

 김희애 씨, 노래 실력은 별로지만 엔딩 씬을 장식하는 노래로 다른 어떤 가수가 불러도 이만큼 아름답지 않을 것 같다.  

 

 

 

쎄시봉!

프랑스어로 “C’est si bon”“It’s so good”이란 뜻이다. 쎄시봉이란 이름은 아마도 당대에 유행했던 앤 마그렛(Ann Margrett)의 노래 <C’est Si Bon>에서 따왔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K0AKUKdNdM

 

돌이켜보니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점심을 굶어도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레코드판이나 카세트 테입만 있으면 배불렀던 시절이다. 극장비보다 약간 싼 돈으로 음악감상실에 입장하여 그 안락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선 꼬깃꼬깃 접은 메모지에 적은 자신의 리퀘스트 음악이 언제 나오나 스피커를 향해 귀를 쫑긋 열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엔 강남스타일이 아니라도 통기타 하나 들고 해변에 가면 예쁜 여자애들 꼬실 수 있었다. 놀라지 마시라. 그때 유행했던 가요들은 지금 초등학교 음악책에 나오는 동요보다 더 풋풋한 음악이었다. 이 영화에도 나오는 <조개껍질 묶어>는 실제로 윤형주가 대천해수욕장에서 같이 간 여대생들을 집에 안 가고 붙들어 두기 위해 즉석에서 작곡한 노래다.

 

그 시절 이 나라의 사회문화 풍속도는 처참했다.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가 청년의 머리카락과 처녀의 치마길이를 단속하던 시절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대마초 파동 또한 당시 저항적 성향의 포크가수들을 길들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법. 쎄시봉으로 상징되는 그 시절의 음악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에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대중음악의 꽃을 피웠다.

 

누구나 자기 추억의 책갈피 속에 오근태, 민자영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 영화는 보석 같은 아니 (윤형주의 노랫말처럼)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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