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강의 때 작성한 PPT를 지금 똑같은 강의를 위해 다시 훑어 보니 허술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허점이 지금 새삼 눈에 띄는 것은 왜일까? 그 사이에 나의 지적 역량이나 식견에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글 쓸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딴에는 공들여 쓴 글이지만 며칠 뒤에 다시 읽어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글을 몇 번이고 읽고 교정 작업에 매달릴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허점이 글을 내려놓고 일정한 시일 지난 뒤 원고를 다시 꺼내 읽어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고작 며칠 사이에 식견의 성장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이치를 ‘인터벌(간극)의 효과’라고 이름 붙이고자 한다.
창작활동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는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는 집념으로 열심히 무엇을 하는 것만으로 명작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혼신의 노력으로 만든 것은 2프로가 부족한 미완의 작품이다. 그 미완의 여백을 채워줄 2프로를 발견하기 위해서 작가는 그 치열한 창작활동의 국면을 벗어나야 한다. 말하자면, 기분전환(diversion)을 위한 ‘휴가’를 다녀와야 한다.
휴가(vacation)의 어원 vacatio-는 ‘텅 비움’의 뜻이다. 부족한 2프로를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는 문제를 내려놓고 잠시 휴가를 갔다 와서 다시 문제를 들여다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해결책이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인터벌의 효과’다 휴가의 인터벌은 몇 달일 수도, 며칠일 수도, 몇 시간일 수도 있다.
201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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