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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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윙 2018. 1. 26. 15:49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다.

이때 '사람의 속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그 무난한 답으로 본심, 의중 등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떤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이라 할 수 없다. 누구나 그때 그때 전략적 입장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진정한 속은 어떤 일관되고 통일적인 속성이어야 하는데, 흔히 정체성이라 일컫는 것이다. 정체성으로서 어떤 사람의 속은 그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즉 세계관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의 세계관을 알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조선일보 독자와 경향신문 독자, 연합뉴스 시청자와 JTBC 시청자의 세계관은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복잡다기한 법이어서 영역별로 이슈별로 사람들의 세계관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뒤죽박죽 혼선을 빚어 나타난다.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젠더 문제나 노동 문제에선 남녀별로 계층별로 서로 다른 관점을 품는다.

 

그 결과, 같은 진보 진영 내에서 갈등과 반목이 빚어지기도 한다. 어제까지 의기투합한 동지가 갑자기 낯선 이방인으로 서로의 마음에서 멀어져 간다. 심지어 적보다 더 경멸스러운 원수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저 사람이 내가 예전에 알았던 그 사람이 맞나?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하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인간심리가 아닌 세계관으로서 사람의 속은 그리 복잡하지도 분열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어떤 식이든 내적으로 통일된 형태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한 길 물 속을 알기는 어려워도 열 길 사람 속은 알기 쉽다고 생각한다. 물은 속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은 속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 속을 드러낸다. 그 사람의 속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보면 된다. 입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말이다. 말은 뱉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글은 남기 때문에 관찰과 분석이 쉽다. 말은 그의 이웃이 아니면 못 듣지만, 글은 그를 만나지 않아도 그의 속을 읽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이 모든 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인간학 교실이다. 한때 남다른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던 사람이 어느 날 내게서 멀어지거나 혹은 내가 그를 멀리 하게 되면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려움을 실감하며 씁쓸한 상념에 젖게 된 불편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것이다. 그럴 때 페이스북 내 그의 타임라인에 들어가 그가 쓴 글을 쭉 읽어 보면, 그의 속을 이해할 수 있다. 그간 내가 몰랐던 그가 보일 것이다. 그의 이율배반을 성토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물론, 이해가 곧 사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를 덜 미워할 수 있게 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온라인에서 깊이 맺은 인연이 한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지기 쉬운 것은 기본적으로 생활 속에서의 원초적인 접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는 이웃의 담벼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다. 타임라인에 들어가 그의 삶을 구경하라. 관음이 아닌 관심으로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간 식어가던 애정이 약간은 되살아날 수도 있다.

 

물론, 멀어져간(혹은 멀리한)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하고 포용할 수는 없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런 이유 때문에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런 이유 때문에 안 된다면,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이 몇 되겠는가? 그렇게 해서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완전한 세상은 없다. 예전보다 덜 추한 세상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덜 나쁜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완전한 세상이 없듯이 완전한 이웃도 없다. 완전한 나는 더더욱.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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