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리틀윙 2018. 1. 26. 12:50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지난주가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그 며칠 전에 안내장을 보내고 상담을 희망하는 학부모님들로부터 상담주간 (~) 중 원하는 상담 날짜와 시간 그리고 상담 유형(면담, 전화상담)을 피드백 받는다.

 

우리 반 27명 중 열여섯 분이 신청하셨는데 면담이 다섯 분이고 나머지는 전화상담이다. 금요일, 신청하신 모든 분들과 상담을 마치고 나머지 분들께도 전화를 돌렸다. 아니, 전화 돌리기에 앞서 학급 밴드(학부모-교사 소통을 위해 내가 만든 네이버 밴드)에 글을 올렸다.

 

>> 상담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상담은 계속 됩니다. 학부모 상담은 특정 기간 내의 한 주 동안 하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하는 겁니다. 상담 요청을 하지 않으신 분께도 제가 전화를 드릴테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혹 담임교사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혹 우리 아이가 뭘 잘못 했나?’하고 놀라시는 분이 계십니다 ㅎㅎ <<

 

사실을 말하면, 간혹 그런 분이 계시는 게 아니라 대부분 놀라신다.

 

제가 이제 마쳤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오후에 전화를 드렸는데 통화가 안 됐다. 1020, 늦은 시각이어서 전화를 주시기 뭐해 문자로 응답하신다. 말썽쟁이 아이가 아니다. 최근에 어머니께서 너무 늦게 들어오셔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기가 힘드니 일을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부탁하는 글을 쓴, 그림 잘 그리는 그 아이의 어머니다. 1020이 이 분이 일을 마치는 시각이다. 이때까지 아이가 집에서 혼자 기다린다.

 

전화를 드렸다. 상담도 상담이지만, “아이는 별 문제가 없으니 걱정 말라는 답을 드리기 위해서다.

 

, 그런가요? 선생님,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학구 내의 가정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편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고 생업에 허덕이다 보니 자녀교육에 신경을 못 쓰신다. 그렇다고 자녀의 미래나 학교생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 자식 맡겨 놓고 이렇다 할 마음을 못 쓰는 입장이니 담임교사에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시는 것뿐이다.

 

이런 부모님들께 담임교사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예상치도 않은 선물처럼 신선한 충격이다. 처음에 놀라다가 나의 소박한 뜻을 피력하면 굉장히 고마워한다. 학부모님들의 이러한 반응에 나는 한편으로 어떤 소심한 생각도 품는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런 짓(?)을 안 하는데 내가 혼자 너무 튀는 건 아닌지?’

 

교직이든 뭐든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불문율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보기와 달리 소심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우리 세계의 이런 표준을 지키려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교직사회 문화를 바꾸기 위한 운동적 차원에서 어떤 이슈에 대해선 과감하게 실천을 한다. 학부모 상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그 하나다. 교사가 전화 걸면 학부모께서 무슨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을 품는 교육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교사에게 학부모상담주간은 넘어야 할 산이다. 단언컨대, 이걸 즐기는 교사는 없다. 그러나, 가르치는 일을 고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학부모상담 또한 고역일 수 없다. 왜냐하면,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의 부모와 잘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소통을 잘 하는 교사는 학생과도 그러할 것이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생과 잘 소통해서 아이가 집에 와서 선생님 자랑을 늘어놓을 때 그 부모가 교사를 싫어할 일이 없을 것이다.

 

고백컨대, 나도 예전엔 학부모와 소통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 내가 지금 이런 마인드를 품게 된 것은 다부초에서 단련된 결과다. 그 학교에선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다모임이란 걸 열어 교사가 함께 하는 식의 교사-학부모 만남이 일상화 되어 있다. 나도 처음엔 이런 문화가 어색했고 또 아빠들과 늦도록 술을 마시고 하는 문화에 대해선 비판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4년간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배운 것은, “교사가 학부모에게 마음을 열면 교육이 나아진다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학부모상담은 성가신 일일 수 있다. 전화 통화에서 평균적으로 10분의 시간동안 자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10분을 들여 공문 처리 작업하는 것에 비해 이 시간 쓰기가 교육적으로 유용한 실천임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단순히 외교적인 conversation이 아닌 진솔한 교육적 dialogue를 나누는 상담이라면 서로 얻는 것이 많다.

 

첫째, 나도 자식을 키우지만, 교사인 사람조차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모습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학부모는 귀한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모습인지 굉장히 궁금해 하시고 교사는 그 기대에 부응할 책무가 있다. 그리고 교사 또한 아이에 대한 학부모의 이해를 도움으로써 아이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체제를 꾀할 수 있다.

 

둘째, 30년째 선생하면서 해마다 새삼 각성을 하는 바이지만, 학부모상담을 해보면 교실에서 내 눈엔 밉상스러운 아이들도 그 아이의 부모 입장에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컨대, 학부모상담을 하고 나면 아이를 덜 미워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교실이라는 왕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자기 존재에 대한 겸허한 성찰 시간을 갖게 된다.

 

셋째, 상담신청도 하지 않았는데도 교사가 성의를 보이며 상담 전화를 드리면, 학부모께서 감동하신다. 이런 노력으로 학부모의 신뢰를 확보하면, 이를테면 유사시에 화를 피할 수 있다. 설령 이런 나의 지극정성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 별난 학부모로부터 고초를 겪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다른 선량한 학부모들이 나의 방패가 되어 준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진정성 있게 학부모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사실, 학생교육을 치열하게 하다 보면 저절로 학부모에게 노크를 하게 된다. 학생교육에 대한 적극성과 대()학부모 소통의 적극성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용기를 내어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면 학부모는 괴물이 아니라 교육 파트너라는 인식을 품게 될 것이다.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는 교사는 학부모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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