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어떤 관계

리틀윙 2017. 9. 15. 07:29

오늘 집회 현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작년까지 칠곡-구미 교사인문학공부모임에서 함께 한 A선생님이 남편 B선생님과 함께 나오셨다. 이 두 분의 신혼 살림방을 우리 공부방으로 쓸 만큼 A선생님은 학구열이 깊으시고 또 B선생님은 이해심이 많으시다.

 

A선생님은 전교조 교사이시지만 이른바 투쟁성이 강한 선수(?)는 아니다. 초임시절, 여느 젊은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전교조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계셨는데 옆 반의 전교조 활동가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실천에 감흥을 받아 전교조에 가입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전교조 교사가 된 뒤로, 자신 혹은 옆 반 선배 교사와 비슷한 전교조 교사들과 함께 소통하며 참교육에 대한 상을 공유하고 책읽기 모임이나 혁신학교 운동에 함께 하면서 나름의 교직 삶을 경작해 가고 계시는 듯하다.

 

B선생님은 A선생님보다 훨씬 평범한 교사다. 그 연배의 보통 젊은 교사들처럼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자신의 가방에 세월호 뱃지와 고리를 달고 다니는 것이나 이런 투쟁 현장에 아내와 함께 참가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B선생님 같은 분들은 예외 없이 전교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오늘 같은 투쟁현장은 젊은 교사들의 인파로 넘쳐났다. 그러나 나는 젊은 교사대중을 원망하기보다는 젊은 교사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가기는커녕 80년대 고풍스러운 칙칙함으로 애써 그들의 접근을 막는 듯한 전교조 꼰대들을 원망하겠다.

 

교육의 양심이나 진리가 꼭 전교조 편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참교육의 개념을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추구하는 교육으로 정의할 때, 참교육에 저해되는 전교조교사나 참교육에 헌신적인 일반교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전교조 활동가보다 교육청 장학사나 학교장이 훨씬 교육적일 수도 있다.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작년의 촛불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운동판 선수들의 몫이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집회를 주도한 활동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나들이 삼아 광장으로 모인 소시민 가족들과 데이트족들로 인해 가능했다.

 

근본주의스러운 무엇이 세상을 바꾸진 않지만, 이웃의 아픔이나 사회정의에 관심을 끄고서 감각적인 무엇에만 신경을 쏟는 세태도 사람 사는 세상에 도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교육브랜드운운하는 담론을 보며 씁쓸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교사로서 자기 나름의 브랜드만 확보하면 된다는 발상이 어찌 교육적일 수 있을까?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 없는 올바른 교사는 불가능하다. 그런 고민을 비껴가는 유능한 교사는 유능한 교육자가 아니라 유능한 지식기능공일 뿐이다.

 

결혼 후 애기가 들어서지 않아 걱정하다가 뒤늦게 생명을 잉태한 몸으로 입덧을 참아가며 투쟁현장에 함께 한 A,B선생님에게 같은 교육자로서 깊은 동지애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201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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