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노무현입니다

리틀윙 2017. 5. 29. 08:27

 

 

 

 

 

[노무현입니다]를 봤다.

 

동일한 인물을 조명한 영화지만, [변호인]과 이 영화는 결이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로, [변호인]에는 송강호가 나오고 [노무현입니다]에는 노무현이 나온다. [변호인]에는 플롯과 연기가 있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다큐영화이기 때문이다.

각색된 부분이 없어도 이 영화는 스펙터클하다. 인물의 삶 자체가 스펙터클하기 때문이다. 지지율 2퍼센트에서 출발하여 민주당 경선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이 문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이 영화를 통해 노무현과 노사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온건한 진보주의자이지만 나와 비슷한 부류들과 달리 노무현에 대해 깊은 신뢰나 호감을 품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이른바 노사모들이 그를 숭배하는 듯한 에토스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아마 노무현과 노사모에 대한 나의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로 정립이 되었을 것이다. 4부로 구성된 이 영화의 4분지 3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은 인간 노무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수식어가 된 바보의 우직한 행보가 기적을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여정으로 점철된다.

 

 

 

 

  

2002년 대선에서 바보 노무현에게 최악의 난적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라 같은 민주당 내의 이인제였다. 이인제가 저질 정치인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지만, 이 영화 속에서 그가 토해내는 모든 연설이 역겹기만 하다. 유념할 것은 영화 속의 그의 언행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저질 행각의 극치를 이루는 장면이 노무현의 장인, 즉 권양숙 여사 부친의 빨치산 전력을 폭로하며 민주당 선거인단을 향해 빨갱이의 사위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겠냐?”고 외치는 대목이다. 실로 이 한심한 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경쟁자에게 가공할 타격을 가한 것이었는데, 인간 노무현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이 위기를 멋지게 돌파해낸다.

 

제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고 저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내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잘 키우고 잘 살아 왔습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이런 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버리지 않으면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

 

!

대한민국 역사에 이렇게 멋진 정치인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송강호도 오달수도 안 나온다. 주인공 노무현을 받쳐 주는 조연들은 노무현의 사람들이라 하겠는데, 이들의 증언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들에 때론 희열을 때론 눈물을 자아낸다.

 

인간 노무현의 멋진 모습 가운데 하나가, 변호사시절부터 함께 해온 운전기사 노수현씨의 결혼식날 신랑신부를 자신의 자가용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이 직접 운전하며 경주까지 신혼여행을 시켜주는 대목이다. 노룩패스의 김 모 정치인과 비교되는 인품이라 하겠다. 영화 속 조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주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스스로를 노무현중독자라 일컫는다.

    


 

 

 

노무현 중독에 걸린 사람은 영화 속 조연들이 다가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노무현 중독의 신드롬이 일기 시작했으니, '노사모 활동'이라는 현상이다.

 

당내의 쓰레기 경쟁자는 바보 노무현에게 시종 색깔론의 공세를 퍼부었다. 강원도 경선대회에서는 길거리마다 노무현 빨갱이라는 벽보가 붙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노사모들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밤새도록 벽보를 제거하며 노무현을 보위했다.

 

 

 

 

 

바보 노무현을 돕는 노사모들도 똑같은 바보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들 바보들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들이 온몸으로 노무현을 도와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 낼 당시 나는 노무현을 위해 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전교조 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 후원자들이었고 대부분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 내 기억으로 선거당일까지도 노무현이 이회창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우리는 어차피 이회창이 될 것 같으니 먼 장래를 바라보고 진보후보를 밀어주자는 입장이었다.

 

노무현 대신 권영길을 지지했던 우리의 선택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사모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가는 힘겨운 투쟁을 벌일 때 수수방관한 내가(우리가) 어떤 명분으로든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을 것 같다. 뒤늦으나마 이 영화 덕분에 이런 반성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럼에도, 인간 노무현이 아닌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말의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 20155월 추도식에서 자제분 노건호씨는 권력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발언하였지만, 아무리 악한 정권이지만 이명박이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조장하여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다. 친형부터 그의 부인까지 대통령의 친인척이 저지른 비리가 인간 노무현을 사지로 내몬 것이 팩트다. 그리고 노통의 자진으로 가족들의 비리가 묻혀 졌다. 영화 4부에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측근들의 소회를 조명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인간적인 고뇌와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한다. 모든 정황을 종합하여 조심스레 말하건대, 그가 선택한 죽음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살신성인과는 거리가 멀다. 냉정히 말해, 개인적 도피주의 내지 이기적인 가족주의에 터한 자진에 다름 아닌 것이다.

    

 

 

 

 

4부로 짜여진 기승전결의 마지막 결말에서 참으로 가슴 뭉클한 한 장면이 나온다. 그의 장례기간 중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는데, 조문객들은 몇 킬로미터씩 줄을 서 있었다. 주최 측에서 고민 끝에 노약자와 어린이, 장애인을 동반한 가족들에게 우선순위를 드릴테니 나오라고 했지만...... 놀랍게도 한 사람도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조문객의 입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관속에 누워 계신 당신의 슬픔에 비하면 그깟 비 맞는 고통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마음이었을 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저기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거나 훌쩍이는 모습이 보였지만, “노빠 아님의 긍지로 어렵사리 버텨오던 나도 이 대목에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왜 사람들은 비를 맞고도 그 먼 길을 가서 그를 추모하는 것일까? 노약자는 집에 일찍 돌아갈 수도 있는데 왜 나서지 않았을까? 바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바보들인 것이다.

 

이 영혼 없는 천민자본주의사회, 지독한 학벌중심사회에서 고졸 출신의 바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노사모로 상징되는 바보 지지자들의 눈물겨운 조력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이 바보들을 움직인 것은 노무현의 인간적 자질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통의 묘비에 새겨진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글귀가 클로즈업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통이 자신의 지지자들인 노사모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02년 이후 15년 만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이 땅에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2002년의 기적이 노사모에 힘입은 것이라면, 2017년의 기적은 광화문 촛불시민의 몫이었다. 전세계가 깜짝 놀란 이 위대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기원은 노사모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광화문의 촛불은 노사모에 연유하고 노사모는...... 바보 노무현에 연유한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

이 심오한 불가의 선문답을 노통이 유서에 적어 놓으셨다.

 

노통이 오늘의 이 기적을 예견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말대로, 죽음이 곧 삶이다. 이명박 정권의 모진 탄압에 인간적 자존을 유지하며 견뎌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모진 표현으로 그가 개인적 도피주의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이 자양분 되어 광화문의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는 죽어서 우리에게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처음과 끝이 만나면서 완결된다. 이 영화는 시작은 노무현이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던 80년대 노동자의 애환을 묘사한 슬픈 노래 [사계]로 열지만, 끝은 노짱의 환한 웃음을 배경으로(솔직히, 마지막 씬이 정확히 생각 안 나지만...) 밝은 피아노 경음악으로 마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노짱의 오딧세이를 대변하는 기승전결 구조의 상징적 배치가 아닌가 싶다.

많은 분들은 이 영화를 새드 무비로 평가하지만, 나는 나의 벗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관람하셨으면 한다.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다. 노짱의 파란만장한 삶이 우리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의 외로운 투쟁과 슬픈 죽음이 밑거름 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희망적이다. 지난 장미대선에서 승리는 예견되었다. 이 훌륭한 영화를 만든 분의 셈법도 그러했을 것이다. , 노짱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민대중이 이 영화를 축제 분위기에서 이 영화를 즐기자고 말이다.

 

물론,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샘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걷히고 밝은 조명이 커져 영화관 문을 나설 때는 참담함보다는 가슴 뿌듯함을 안고 나설 수 있다. 노짱을 사랑한 사람들은 그 자부심을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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