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다부초 아닌 학교에서 살아가기

리틀윙 2017. 4. 3. 10:08

32일 목요일, 새 학교에서 새 아이들을 맞이한 지 세 번째 일요일을 맞고 있다. 앞 두 번의 일요일엔 내일 학교 가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할 만하다 싶다. 2주일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나 사이에 서로서로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가는 듯하다.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말했듯이, 관계를 맺는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3월에 아이들이 내게 길들여지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이끌었다.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그게 옳다고도 생각했다. 늦으나마 지금 깨닫고 고백하노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의 이 그릇된 생각의 기저엔 내가 나름 유능한 교사라는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컨대, “나는 다른 교사보다 지적으로 다소 우월하여 영어를 비롯한 교과 공부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줄 것이니, 너희는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교사의 권위는 지적 역량과 도덕적 확신(이를테면,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거나 사회적 약자로서 학생들을 따뜻하고 공평무사하게 품는다는)에서 온다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자질만 갖고 있으면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하고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나의 이런 판단은 많은 학생, 학부모들에게 주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엔 교사가 아이들을 함부로 대해도 공부만 잘 가르쳐주면 그만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고쳐먹게 된 것은 4년 전 다부초로 가고 나서였다. 이 학교는 교사가 아이들을 강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지켜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교사를 잘 따랐다. 사실, 다른 학교에선 잘 볼 수 없는 이 두 가지 다부의 놀라운 특성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 학교를 떠날 때 쯤 알게 되었다. , 교사가 아이들을 존중해 주면 아이들도 교사를 따르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교사가 아이들을 존중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다부초와 다른 시스템, 즉 이런저런 강압과 불합리한 처우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자율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야성이 강한 몇몇 아이들은 맹목적인 반발심으로 삐뚤어져 있거나 심각한 정서적 장애를 겪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일당백이라 할 이런 아이들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장악하지 않고 원만한 학급경영을 꾸려가기는 어렵다.

 

내 경험으로 대한민국에는 두 종류의 학교가 존재한다: 다부초 같은 학교와 다부초 아닌 학교.

다부초 아닌 학교로 옮기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 다부초 아닌 곳에서 다부초와 다른 방식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다부초에서의 방식을 그대로 지켜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를 시험하는 것인지, 다부초 아닌 학교에서 처음으로 만난 3학년 아이들은 하필 그 학교에서 제일 심한 말썽꾸러기들의 학년이라 한다. 다부초 아닌 학교답게 쓸데없이 제출해내라는 것은 왜 그리도 많은지, 무슨 놈의 안내장은 매일 그리도 많은지, 업무에 신경을 쓰다 보면 꾸러기들의 준동이 기승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쏟으면 업무가 마비되어 인터폰과 쪽지가 쇄도한다. 초임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항상 나의 편이다. 첫째 둘째 주가 흐르면서 그간 쇄도해 오던 업무 독촉도 많이 줄어들고 또 아이들과 전투 치르는 빈도수도 줄어들고 있다. 아이들도 살짝 내게로 끌려오는 느낌이다. 넘버원과 넘버투에 이어 넘버쓰리와 넘버포까지 내게로 넘어 왔다. 이 도미노 현상에 편승해 넘버5와 넘버6도 전향을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그간의 학급경영 방식과 달리 내가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동하지 않은 채 온화한 리더십으로 말썽꾸러기들을 품은 점이다. 학부모상담에서 넘버원의 어머니의 말씀으로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 우리 선생님 얼마나 좋으신 줄 알아?”라고 했단다. 넘버쓰리의 어머니도 이 비슷한 말씀을 전하셨다. 어제 저녁엔 넘버쓰리가 내게 자기 폰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선생님 주말 잘 보내시라고... 말귀가 안 통해 힘든 3학년 아이들이 이런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참 좋다. 이런 애교는 다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흥미다. 아니 진정으로 흥미로운 것은, 다부 아닌 곳에서 다부의 방식을 지키면서 교실살이를 해갈 수 있겠다는 전망이다.


2017.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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