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공개수업

리틀윙 2015. 9. 24. 08:14

“추석 쇠고 와서 다음 주 금요일 ‘학부모 참여 수업일’이다.”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하는 말.

 

선생님들이 달라지는 날이구나!

 

1교시 수업 시작할 시점에 시간표 확인하고 교과서 찾으면서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놀랍다. 내 시선이 아이들을 정면으로 향해 있지 않았기에 부담을 덜 느껴서인지 한 아이의 위와 같은 말에 다른 아이들도 입을 대기 시작한다.

 

아이2: 맞아! 샘들의 말투가 달라져. 평소와 달리 우리에게 높임말 쓰거나 상냥한 목소리로 말해.
아이3: 옷차림도 달라지지. 평소 안 입던 정장을 빼 입고 와.

위의 세 아이는 모두 여자 아이들이다. 교사의 옷차림에 대해 말하는 아이는 공개수업 때 여자 담임교사가 입는 치마의 길이 변화에 대해서까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충격이다!
세 가지 면에서 놀란다.

 

첫째,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교사의 민낯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교사-학생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 인식되기 때문에 교사는 지적으로 우월하고 학생은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교과서 공부에서는 몰라도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본질적 측면에 대한 아이들의 투시력은 놀라울 정도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매우 유능한 ‘문화인류학자’다. 학급담임이든 방과후 교사든 아이들은 한두 번 ‘간을 보고’ 나서는 금세 상대에 따른 최선의 맞춤형 처신 전략을 강구해 낸다. 초등학생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1년 내내 아이들에 휘둘리는 교사의 오류는 아이들의 이 탁월한 문화인류학적 능력에 대한 무지에 기인할 가능성이 많다.

 

둘째, 공개수업에 대해 이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때껏 내가 가르쳤던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부 아이들이 특별히 지적으로 뛰어나거나 한 것은 없다. 다만 이 학교 시스템의 특수성 탓에 이 아이들은 상대가 누구든 거리낌 없이 자기 할 말을 내뱉는 편이다. 나는 이곳 아이들의 이런 태도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 이를테면 공개수업에 대해 위와 같은 말을 내뱉지 않는 것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할 말 안 할 말을 가릴 줄 알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알 수 없었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은 이곳 아이들을 통해 지금까지의 내 교육실천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소중한 각성을 하곤 한다.

 

셋째, 교사의 수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1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에 특별히 변신해서 수업을 시연하는 교사를 학부모가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까? 교사를 대상으로 한 공개수업도 마찬가지다. 샘플링은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말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신체의 일부분에 대한 세포 조직검사를 통해 인체의 건강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지만, 교사의 교육적 자질이나 역량은 ‘조직검사’가 불가능하다. 특히, 중등교사와 달리 한 과목이 아닌 10개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의 수업역량을 딱 한 과목에 대해 딱 한 시간의 수업 관찰로 평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또한 공개수업이라는 것은 심리적 요인이나 교실분위기와 같은 교육 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공개수업은 교사의 자기발전을 위한 자극으로서 일정한 순기능을 갖지만 교사 평가를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수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역설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도, 연중 한두 시간이 아닌 1년 내내 수업을 받는 이들 외에 교사의 총체적 수업역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평가는 ‘동기유발’이니 ‘발문’이니 하는 것을 적절히 하니 못하니 하는 잡다한 체크리스트 항목이 아닌 그저 “총체적으로” 우리 선생님 수업 쉽고 재미있게 잘 가르치신다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 뿐인 성질의 것이다.

'교실살이-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학교는...  (0) 2017.04.03
사제지간의 존경과 애정의 유통기한  (0) 2016.10.11
내 요즘 이래 산다  (0) 2014.04.28
교사와 학생 사이  (0) 2012.03.12
펌) 우리반 태우를 지키고 싶다  (0) 201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