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교사와 학생 사이

리틀윙 2012. 3. 12. 21:09

 

 

청소 마치고 걸상을 내리지 않고 그냥 간다.

공동체 무엇을 지향하는 내 교육철학과 맞지 않기에 청소 당번이 모든 아이들의 걸상을 내려주는 것으로 하자고 했더니, 힘들다고 3학년 때 모두 이렇게 했다고 데모하길래 좋다. 일단 이렇게 해보자라고 잠정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생각해보니, 요즘 아이들은 학원이나 방과 후 수업 때문에 청소를 오래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책걸상이 견고하게 만들어져서 아이들 힘으로 다루기에 버거워 보인다. 때문에 저 방식이 맞는가 싶으면서도... 그래도 저건 아니다 싶다.

그래서 아이들의 입장과 내 학급경영관과의 접점을 모색하다가 다음날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를 내렸다.

 

우리 반 급훈이 함께 나아가자인데, 자기 걸상을 자기가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일종의 개인주의이다. 그러나 소수의 청소당번이 전체 걸상을 내리는 것은 힘들다고 하니...... 아침에 먼저 오는 사람이 짝꿍 것이나 모둠 친구들의 걸상을 내려주기로 하자.

 

 

 

 

 

오늘은 웬일로 D가 일찍 왔다. 이 녀석이 저 혼자서 반 친구들 걸상을 다 내려주려고 애쓰고 있다. 이 아이는 이른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해당자이다. 주의력이 결핍된 아이가 교사가 강조한 바를 가장 집요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를 따른다.

내가 흥미있게 읽은 책 이야기를 해주면 다음 주에 그 책이 아이들 손에 들려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 듣는다. 초등 아이들이 교사의 동기부여 없이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할 일이 없다.

그리고 교사가 소중히 품는 가치관을 아이들이 그대로 따른다. 이성적으로 이해를 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따라 온다. 우리 선생님이 옳다고 믿는 것이니까 또 직관적으로 그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따라 온다.

 

어떨 때는 거꾸정한 내 걸음걸이도 따라 한다.

이럴 때는 정말 아찔하다.

7차교육과정이고 뭐고 필요 없다.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등아이들에겐 가장 위력적인 교육과정이다. 전문적 용어로 잠재적 교육과정(lateral curriculum)’이라 하는 것이다.

교사는 이 교육과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들이 나의 나쁜 본을 안 보도록 늘 자신의 언행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아이들이 무비판적으로 맹종하지 않도록 그와 대응지점에 있는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하여 아이들이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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