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내 요즘 이래 산다

리틀윙 2014. 4. 28. 20:20

교대를 졸업하고 1988년 경북 의성의 오지 학교에 첫 발령 받았을 때 아이들 열심히 가르쳤다. 학교가 직행버스에서 내려 30분이나 걸어가야 하는 골짜기에 있어서 어떤 주말에는 집에 내려가지도 않고 학교 사택에 머물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즉, 주말에도 학교에 아이들을 불러서 글자 모르는 애 붙들어 가르치곤 했다. 나와 초임 발령을 같이 받은 전라도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 두 총각 선생은 그 동네에서 보물 취급 받았더랬다.

 

때론 아이들 회초리로 매질해가면서 그저 열심히 가르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정말 빛나는 ‘교육혼’이었다. 그 타오르는 교육열정이 중요할 뿐, 총각선생이 아이들을 쥐어박는 것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칭찬하면 칭찬하지 요즘처럼 ‘폭력교사’ 따위의 비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 학부모가 있다면 지역 공동체사회에서 왕따로 몰렸을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총각선생 시절에 버금가는 교육혼을 이곳 다부에서 불사르고 있다. 울 학교 아이들 가운데 약 80%는 대구 칠곡에서 통학을 하고 나머지 20%는 다부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다. 전자는 대부분 중산층의 안정된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후자는 농촌지역 아이들이 그러하듯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몇 있다. 시골 학교 아이들이 교육적으로 불우한 처지인 것은 무엇보다 인적·물리적 환경이 열악해서 아이들이 문화적인 자극을 받지 못하는 점이다. 쉽게 말해, 아이들이 학교 일과를 마치고 어디 갈 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골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뒷건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 이오덕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다부 지역에 사는 한 남자아이가 있다. 작년 그 녀석과 마찬가지로 꼴통과에 속한다. 수학 곱셈/나눗셈 문제도 제대로 못 풀어 수업시간에 도무지 낙을 못 붙이는 아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그 아이나 이 녀석이나 둘 다 음악에 흥이 있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이 두 녀석을 데리고 퇴근 후 30분씩 음악을 가르친다. 녀석들이 내가 퇴근하기 전인 오후 4시쯤에 오면 좋으련만, 그 시간대에는 녀석들이 신나게 놀아야 하는지라 내 퇴근시간인 4시30분이 돼서야 악기실로 터벅터벅 입장한다. 드럼 기본 주법을 가르치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 처음엔 ‘이거 되겠나’ 싶었는데 어느덧 그럴듯하게 드럼 두들기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가르치는 흥이 난다.

 

내 요즘 이래 산다!

내 나이에 동기들 중 많은 이들이 장학사나 교감으로 승진해 있다. 울 학교 교감도 내 동기다. 주위에 많은 분들이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승진 안 하냐”고 “박사학위 있으니 전문직 시험 치면 대번에 될 건데” 하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나는 이래 산다!

 

20대에나 50대에나 나는 아이들 가르치는 게 재밌다. 특히 꼴통 같은 녀석들이 내가 기울이는 정성만큼 성장할 때 희열을 느낀다. 건강한 자에겐 의원이 필요없나니!

"이거 이래 한데이, 알겠제?"....... "그래, 바로 그거야!" 이럴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선생이다. 임재범은 가수고 나는 선생이다!

나는 내 세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능력자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승진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승진을 안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승진하는 친구들을 속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 나이가 들고 나니 승진에 몰입하는 분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람들은 내가 현재의 위치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 한다. 아깝다고 한다. 이 말 자체는 기분 좋은 말이다. 나를 아껴주는 분들이 고맙다. 그러나 내가 현재 있어야 할 위치라는 게 뭔지 모르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교육청이 아니라 대학강단이 아닐까 싶다. 즉, 나는 한 때 강단에 서는 걸 꿈 꿨다. 하지만 그렇게 못 된 것에 대해 조금도 한탄해 본 적이 없다. 나도 한 때 외래강사로 대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내가 대학교수가 아닌 초등학교 선생인 것이 참 다행이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대학같은 대학이 몇 개나 있을까? 한국의 대학생 가운데 진지하게 학문 탐구에 힘쓰는 부류가 얼마나 될지 나는 회의한다. 내 강의 시간에 내가 펼치는 (재밌는?) 강의에는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질 해대는 대학세계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나는 이 나라에서 진정한 교육자는 초등학교 선생이 전부가 아닐까 하는 “오만한” 생각을 품었다. 내가 강의하러 간 그 대학에 나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이 초등교사 하다가 오매불망 교수가 되어 그 대학에 자리 잡은 한 사람을 보았다. 이름만 대면 특히 초등 전교조교사들이 다 아는 교수다. 그러나 나는 햇빛도 잘 안 드는 어두컴컴한 교수연구실에서 책을 보는 그가 부럽기는커녕 측은해 보였다.

 

한 인간의 삶의 가치는 그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리고 보람있게 자기 혼을 불사르는가에 있지 않을까?

 

나라 같지 않은 나라, 이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초등학교 교사보다 더 값진 존재양식이 없을 것이다.

 

나의 이 넋두리가 프로이트의 개념 ‘합리화’에 지나지 않은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

 

공부 못 하는 녀석들이 의리는 더 많다.

녀석이 딴에는 내가 고마운지 오늘 아침에 교실 문 열고 들어서면 내게 껌 하나를 건넨다.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 먹지 않고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다.

이 맛에 선생한다!

 

 

 

 

'교실살이-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제지간의 존경과 애정의 유통기한  (0) 2016.10.11
공개수업  (0) 2015.09.24
교사와 학생 사이  (0) 2012.03.12
펌) 우리반 태우를 지키고 싶다  (0) 2011.09.23
꿀떡: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0) 201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