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펌) 우리반 태우를 지키고 싶다

리틀윙 2011. 9. 23. 08:19

서울의 어느 중학교에 근무하는 권ㅇㅇ선생님이 쓰신 글입니다.

경쟁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왜 교육혁신을 해야 하는지,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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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32명의 학생 중에 이혼 및 별거 중인 부모의 아이들이 이미 8명이다.

며칠전 태우(가명)가 침울한 얼굴로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며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전부터 부모님 간의 불화가 심하고 여동생의 탈선 정도가 너무 커서 고민이 많던 녀석이다. 최근 부모 간의 다툼이 극에 달했고 급기야 별거 상태에서 이혼 얘기가 오간단다. 아빠가 의처증이 심해 폭력이 잦았고 엄마가 집을 나간 후로는 자신에게도 종종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한단다. 엊그제는 학교를 오지 않았다. 아빠를 피해 친구네집에 머물렀다고 했다.

 

태우의 어려움에 어깨를 두드리며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아침밥은 챙겨먹었냐고 물어주고, ‘인생엔 누구나 큰 시련을 몇 차례 겪게 마련인데 너에겐 시련이 조금 일찍 온 것뿐이니 잘 이겨내자’는 격려의 말 몇 마디를 나눠주는 일 외에 담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무기력하다.

오늘 아침 태우의 자리가 비어 있다. 전화를 하려니 문자메시지가 두차례나 와 있었다.

 

“항상 애들 앞에서 웃고 떠들며 재밌게 학교생활하는데 이젠 그것마저 힘들어요, 어떻게하죠?”

 

“살아있어서 좋은게 뭘까요, 힘내고 씩씩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고 견디는게 힘드네요 죽어버리면 어떨지 생각도 되네요 저오늘 학교 늦을수도 있어요.”

 

몇차례 녀석에게 전화를 해봐도 통화가 안된다. “나에게 꼭 전화해줘~”라는 문자를 남겼더니, 다행히 한참 후에 전화가 왔고 학교앞이란다. 2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보니 녀석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아이들과 장난질이다. 어린 저 마음 속에 얼마나 큰 불안과 절망이 담겨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방과후엔 짜장면이라도 함께 먹으며 아이의 불안을 함께 느껴야겠다.

 

어제는 저녁 늦게까지 학교폭력대책지치위원회(폭자)를 열었다. 나는 생활지도부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학교폭력과 관련된 사안은 학부모,외부인사(지역경찰서, 변호사)와 함께 구성한 ‘폭자’에서 다루어야 한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 2,3학년 학생 6명이 1학년 학생 11명을 불러 금품상납을 요구하며 심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금품요구와 폭력이 일회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지난 수개월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아이들은 다른 학교 아이들, 고등학생들, 동네 형들과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이 사건의 가해자들도 동네 형들과의 관계에서는 피해자다. 피해자인 1학년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에겐 고약한 가해자들이다. 실제로 피해 아이들이 형들에게 상납한 돈의 대부분은 다른 아이들 또는 인근 초등학생들에게 상납을 받은 것이다.

 

또 다른 사안으로 이번 피해자중의 한 아이는 같은 반의 약간 어리숙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한번 사준 후 그 돈에 이자에 이자를 붙여가며 계속 갚으라고 요구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이자에 이자를 계속 붙이다 보니 과자 한봉지가 12만원까지 올라갔단다. 그 친구에게 책가방을 들것을 강요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집에서 성(性)적인 행위까지 강요했단다. 어떻게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정도이다. 어려서부터 힘에 의한 서열화와 양육강식이 소름끼치게 작동하는 삶의 현장이다.

 

우리반 태우는 그래도 담임에게 마음을 터놓기라도 하는 아주 양호한 경우이다. 어제 ‘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논의한 아이들 한명 한명을 보면 대부분이 지독한 가정환경에서 정서불안 등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다. 학교에서 담임의 위로와 격려, 상담부의 심리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 생활지도부의 ‘폭자’ 등등의 대책 등이 이 아이들이 처한 환경과 아이들의 상태 앞에서는 너무 무력하고 초라하다. 교육의 근본적 철학과 성찰, 교육에 대한 투자 방향의 재조정, 학교의 기능과 역할 및 구조와 시스템 등의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는 현실은 참으로 잔인하다.

 

그래도 나는 한 줌의 희망을 갖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바꾸고 학교를 혁신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잔인한 사회구조를 고착화하고 강화하면서 교육은 ‘경쟁’이고 ‘선발’이라고 외치는 거대 권력에 대항하며 애쓰는 사람들을 알기 때문이다. 교육은 ‘배움을 통한 성장’이고 ‘돌봄을 통한 안정과 통합’이며, 그 과정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아니라 기쁨과 보람의 과정임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거대한 물결을 알기 때문이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꽃들이 곳곳에 피어난다. 들불처럼 번지는 혁신학교를 통해 학교를 혁신하려는 노력이 그렇고, 교육복지를 확대하여 소외와 차별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그렇고, 수업을 혁신하여 참여와 협력의 배움과 가르침의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그렇고, 학생과 교사들의 인권을 존중함으로써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그렇다. 우리반 태우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들의 소외와 차별과 절망과 고통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배려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 또한 그렇다.

 

지난 며칠 곽노현 교육감 사태로 인해 온 나라가 뒤숭숭했다. 이젠 그의 사퇴 논쟁을 넘어 진실 게임으로 국면이 전환되는 느낌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가 믿어야 하는 진실은 하나다. 그것은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개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곽노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곽노현을 중심으로 추진해오던 각종 서울교육 혁신사업은 우리반 태우를 비롯한 수십만 아이들의 희망이기에, 곽노현 개인의 거취와 진실공방을 넘어 어떻게 그것을 지속해 추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이해타산에 근거한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반 태우와 수십만 아이들의 눈 즉, 교육적 관점에서 힘을 합하여 이 난국을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영화 ‘활’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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