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학교의 리얼리티

리틀윙 2017. 2. 26. 22:23

 

다부를 빨리 떠나야겠다.

이 학교에 있으니 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이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일상을 볼 수 없다.

보통의 학교에서 매일 벌어지는 교육현상으로,

페이퍼워크에 신음하는 교사의 한숨, 절대권력자인 학교장의 폭정에 고통 받는 힘없는 백성으로서의 교사 모습을 볼 수 없다. 치맛바람도 진상 학부모도 없다.

그리고 배구에 미쳐 아자아자하거나 과열된 친목회 분위기 속에서 으샤으샤 하는 교육노가다의 풍경도 볼 수 없다.

한마디로 이 학교는 대한민국 초등학교의 리얼리티와 동떨어져 있다. 교육작가로서 교직사회의 전형과 멀어져 있으니 학교교육의 리얼리즘과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흔히 현상과 본질은 다르다고 한다. 당연한 말인데, “눈에 보이는 무엇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 말을 쓰면 좋지만, “현상은 무의미하다거나 현상은 본질과 다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엉터리다.

현상과 본질은 다르지만, 우리가 본질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현상이다. 본질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무엇(=현상)을 매개로 본질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부에서는 우리 초등교직사회의 전형적인 현상들을 볼 수 없으니 요즘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알 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속해 있는 이런저런 공부모임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을 통해 학교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이러한 귀동냥이 한계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가보고 싶은 것이다. (더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다. 올해가 마지막이니)

 

최근에 쓴 초등교직사회에 만연한 이상한 배구 신드롬이야기는 이 학교 오기 이전의 학교일상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우리 군에선 오늘 교직원배구대회가 열리는데, 우리는 참석하지 않고 친목여행을 간다. 아이들을 일찍 하교시키고 길을 나서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우리 학교에 급식을 제공하는 면 중심학교가 급식을 하지 않으니... 괜히 우리 학교 때문에 급식소 직원들을 고생시키기가 뭐 하고 또 스승의 날을 맞아 모처럼 학교일상을 떠나 바람 쇠고 오는 것도 더 나은 학교교육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

교육청 주관으로 열리는 큰 잔치에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교사인 사람은 알 것이다. 다부는 이런 곳이다. 그리고 육상대회를 비롯한 모든 학생대회에 아이들 안 내보낸다.

 

그저께 쓴 배구 이야기 밑에 내 페친도 아닌 몇몇 선생님들이 달아주신 댓글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품었다. “맞아, 이게 학교 모습이지!” 하는 생각.

 

페이퍼워크, 배구, 승진 이야기 나오면 나는 흥분을 한다. 사실 흥분 안 할 수 없다. 이것과 관계있는 모든 학교일상은 죄다 미친~~’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나의 이런 거친 표현은 입장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정서로 다가갈 것이다. 교실을 벗어나 있는 관리자들이나 승진을 앞두고 있는 교사들에겐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반대로, 평교사인 사람, 특히 남성중심의 과도한 친목문화나 배구신드롬에 염증을 느끼는 여선생님들은 내 말에 크게 호응할 것이다. 이 분들이 (이를테면 전교조교사로서) 특별히 전투적인 비판정신의 소유자라서 그렇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가부장 교직사회에서 힘없는 젊은 여교사로서 이건 아닌데하면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 오신 온순한 분들일 것이라 본다.

 

내 아무리 흥분을 가라앉히고 절제된 정서로 글을 쓴다고 해도 학교가 보여주는 이러한 작태들은 미친 짓이라는 표현밖에 달리 구사할 언어가 없다. 이건 수사법의 한계가 아니라 현실의 한계다.

.

.

며칠 전, 원정배구(삼성라이온즈는 원정도박 가고 명품경북교사들은 원정배구 간다)로 다른 학교에서 배구 붙어서 깨진 뒤에 교장이 비상직원회의를 소집해서 교시를 하달 하시는 바,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오후에 맹 훈련체제로 들어간다는 거였단다.

나는 그 교장이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 군의 큰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육현상이다.

 

맞다. 학교란 이런 곳이다. 다부라는 청정구역에 고립되어 있으면서 미친 짓으로 점철되어 가는 대한민국 학교의 리얼리티를 잠시 잊었다.

 

2016. 5.13.

'다부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0) 2017.02.26
차이는 축복이다  (0) 2017.02.26
우유곽 문제  (0) 2017.02.26
다부 꼼뮨  (0) 2017.02.26
교직사회의 회의문화  (0)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