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창밖의 남자

리틀윙 2017. 2. 26. 19:02

오늘은 하루 종일 수업이 없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내 일을, 나보다 두 살 많으신 우리 주무관님은 바깥에서 자기 일을 하고 계신다. 창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두 사람의 정체성은 이렇게 구분 지어진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지난 금요일, 학교 인근에 있는 다부전적기념관에서 6.25를 맞아 무슨 행사를 열었다. 지역의 군부대 주관으로 해마다 열리는데 행사인데, 우리 학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요청을 해온 터였다. 문제는 그 날 마침 비가 많이 와서 운동장이 엉망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군부대 관계자가 사후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준다는 약속을 하며 간절히 요구하던 터라 거절하기가 뭐 했다.

 

그런데 우리 내부자 가운데 딱 한 사람이 극구 반대하였다. 지금 창밖의 남자다.

나는 왜 그 분이 그렇게 반대를 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지역의 중요한 행사인데 학교에서 협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주최 측에서 책임지고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준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어제 오후에 군부대에서 와서 울퉁불퉁 파인 운동장을 깔끔히 정리해 주고 갔다. 그러나, 아무래도 원래 상태보다 더 나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성격이 깔끔하고 워낙 부지런하신 저 분은 뒤처리의 뒤처리를 저렇게 하고 계신다.

 

우리가 볼 때 사후처리가 별 문제 없이 잘 된 것 같지만, 저 분의 안목으로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책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별 문제 의식을 안 느끼고 그냥 지나친다면, 시나브로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나빠져 가서 이를테면 아이들이 뜀박질을 하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하는 불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창밖의 남자는 아이들을 위해 그런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뙤약볕 아래서 저 고생을 하시는 거다.

 

.

군부대의 요청에 유순하게 반응한 우리와 까칠하게 반응한 저 분의 차이는 인간성의 차이가 아니라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땀 흘리는 사람과 그러하지 않는 사람, 시키는 사람과 시킴을 당하는 사람의 차이다.

 

입장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고 마음씨의 여유도 달라진다.

물적 조건상 넉넉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마음씨마저 넉넉할 가능성이 많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서 있는 입장 속에서 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2016.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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