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강연의 한계

리틀윙 2017. 2. 19. 20:47

모든 강연은 최면이다. ‘스타강사란 강한 최면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사람을 말한다.

스타강사는 늘 청중을 압도해야 한다. 청중을 압도하기 위해선 이론의 여지를 남기지 말 것이며 항상 단언적인 어법을 구사해야 한다.

 

그는 청중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는 것이다. 독사 앞에서 주눅 든 개구리처럼 청중은 강사의 말에 세뇌를 당한다.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스타강사는 히틀러였다. 집단최면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라 하겠다.

 

강연장이 뭘 배우기 위한 강사와 청중의 만남의 장이라면, 그 만남은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향 소통의 형식이어야 한다.

 

배움은 언제나 변증법적으로 일어난다. 테제-안티테제-진테제의 부대낌이 없이 테제만 존재하는 강연에서는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굳이 강연이 필요하다면, 강연 시간의 절반은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채워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강연은 그렇지 않다. 지성인 집단이라는 전교조 강연회에서도 스타 강사들이 혼자 실컷 떠들고 한 10분 남겨 두고서 질문 한 두 차례 받고 기차 시간을 핑계로 황급히 자리를 떤다.

 

변증법(dialectics)과 같은 어원의 개념이 대화(dialogue)’. 대화가 존재하지 않는 강연에서는 교육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고츠키가 말하듯이 교육의 본질은 대화적 교육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독서보다 강연을 선호하는 것은 글말과 입말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문자 매체에 비해 음성 매체가 훨씬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스타강사들이 떠드는 말들을 그대로 글자로 옮겨 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청중이 그의 말에 수긍을 하고 감동을 받는 것은 뭘까? 그것은 아마도 책을 쓴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장감에서 오는 실물적인 관계성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 라이브로 듣는 것이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오듯이 말이다.

 

그러나 지적인 사고체계 즉, 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과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영화를 한 번 보고선 절대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감상에 젖어 냉철한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강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사상가가 있다면 그의 책을 사서 읽어보면 된다. 책보다 더 훌륭한 강연이 어디 있나? 책은 쉬었다 읽어도 되고 또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음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은 최면을 걸지 않는다.

 

20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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