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교육적 가치(Educational Value)

리틀윙 2017. 2. 15. 20:56

존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 읽기에 관심 가지시는 분이 많이 계셔서 저희 세미나 뒤에 후기를 남기기로 합니다.

어제 18. 교육적 가치(Educational Value)를 공부했습니다.

다른 모든 챕터와 마찬가지로 이 장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이 장에서 듀이는 교육 미학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 그가 말하는 교육적 가치란 교육의 미학적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교과를 공부하면 그저 지식의 뭉치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 희열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방금 제가 표현한 지식의 뭉치라는 것을 듀이는 상징적 매체라 했고, ‘심미적 희열에 해당하는 용어가 ‘appreciation’인데, 역자인 이홍우씨는 이 말을 직접적 인식이라 옮깁니다. 제가 볼 때 이 번역은 완전히 난센스입니다.

(이 책을 우리가 어렵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원 책이 난해한 측면도 있지만, 이런 식의 제멋대로식 번역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교육학자인 이홍우씨가 학문적으로나 번역작가로서의 역량은 인정할 만합니다만, 지나칠 정도로 자의적 번역을 남발하는 점은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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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원서와 달리 번역서에는 모든 문단 앞에 번호를 매겨 놨습니다. 2절이라 함은 둘째 문단을 뜻합니다.)의 제목을 영어로 병기할 필요를 느낍니다.

1. 실감과 직접적 인식(The Nature of Realization or Appreciation)

영어와 한글을 대조해 보면 번역이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제가 이 문구를 옮긴다면, “실물적 인식 또는 음미의 의의라 적겠습니다.

- nature(본질, 속성)에 대한 번역을 생략한 것은 이해가 갑니다.

- 이 문구에 해당하는 영어를 역자 주로 "realization and appreciation"라 표기되어 있는데, 제 책에는 ‘and'가 아닌 'or'로 되어 있습니다. 문맥상으로 또는이 맞습니다. , ‘실물적 인식을 다른 말로 어프레시에이션이라 일컬을 수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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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프레시에이션이란 낱말에서 역자가 많이 고심하였을 겁니다. 고심 끝에 역자는 직접적 인식이라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감상이라 적는데, 그냥 감상이 아니라 [직접적 인식 또는 감상]이라 적기도 합니다만(11절 밑에서 일곱째 줄), 원문에서는 밑줄 친 [ ]부분이 그냥 어프레시에이션입니다. "A 또는 B"라는 식의 표기는 전혀 아님에 유의바랍니다.

어프레시에이션이란 낱말에는 직접적이란 의미가 전혀 없는데 왜 역자는 이 표현을 썼을까요?

2절에서 그 단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체의 언어, 일체의 상징은 간접경험의 보조수단이다. 이러한 보조수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경험은 매개된(mediated) 경험이다. 그것은 [“매개되지 않은직접경험]과 대비되는데, 직접 경험이라는 것은 상징적 매체의 개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생하게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말한다.>>

- 여기서 매체(media)란 번역도 일종의 심각한오역입니다. 여기서 미디어는 매스미디어 할 때의 미디어가 아니기 때문에 매체가 아닌 매개체로 옮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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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차이가 아니냐? 너무 깐깐하게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 하실지 모르지만,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닙니다. 비고츠키를 공부하신 분은 아실 겁니다.

매개체는 비고츠키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입니다. 비고츠키는 유인원과 인간의 차이를 매개체의 활용 여부로 평가합니다. 비고츠키는 쾰러(통찰설)의 말의 빌려, 유인원은 시각장의 노예 the slave of its own visual field”로 표현합니다.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에 이 말이 나오는데......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의 고갱이가 이 매개체라 일컫습니다. 비고츠키는 다소 장엄한 어조로 매개체의 중요성을 고대 페루 사람들이 묶어 놓은 매듭 이야기를 하죠. 고대인의 매듭이 문자의 단초라는 겁니다.

따라서!

매개된(mediated) 무엇은 직접적인(immediate) 무엇에 비해 교육적으로나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바람직한 것이죠. 사실, (비고츠키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면에서 존 듀이 철학의 한계가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존 듀이의 생활중심 혹은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현실 교육 사태에서 그 적용의 한계가 있습니다. 시쳇말로, 경험을 중시하다 보면 교과서 진도 전혀 못 나갑니다. 현실성이 없는 이론이란 말입니다.

(이 언설에 대한 반발이 예상됩니다. 반론 주시면 댓글 드리겠습니다. 저의 테제(=비고츠키)와 이에 대한 안티테제 , 이 두 대립물이... 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일 것이며, 이 둘에 대한 진테제가 혁신학교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생적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에 와서 내가 가장 크게 반감을 품은 것이 쓸데없이 많은 현장체험학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체험의 장에 던져 놓는다(=직접적 인식)고 해서 실감나고 생생한 학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학습의 허구성에 대해선 비고츠키언 포이어스타인에 관한 제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facebook.com/sungwoo.lee.5623/posts/98326724837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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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듀이 선생도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같은 문단 속에서 말예요. 2절 맨 마지막 문장 =

<<그만큼 우리는 효과적인 상징적 또는 간접적 경험을 하는 데에 있어서 문자의 힘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문단에서 듀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직접적 immediate”이란 말보다 실감나는, 생생한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직접적이란 표현은 이 문단에서 그칩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프레시에이션이란 말이 계속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역자는 그 후 계속해서 어프레시에이션을 직접적 인식이라 일컫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중대한 오역 때문에 독자들이 존 듀이가 이 장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듀이가 말하는 어프레시에이션이 뭘 말하는지 알기 위해 우선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봅시다.

동사 appreciate1)감사하다 2)평가하다 3)이해하다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사람, 물건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다, 이해하다, “...의 진가를 알다의 뜻입니다.

보다시피, 여기에 역자가 말하는 직접적이니뭐니 하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이 장의 제목인 교육적 가치와 관련하여 듀이가 말하는 어프레시에이션은 사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음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은 대립물과의 비교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이를테면, 자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짬뽕과 비교하는 게 좋겠죠. 그럼으로써 최소한 자장면엔 국물이 없다는 것, 국물 대신 소스가 있는데 그 소스의 특이성이 자장면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어프레시에이션과 대조를 이루는 것은 실감나게 이해하지realization” 않고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포스팅 한 예로, “우리나라 지형이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다동고서저의 개념을 저는 40년 만에 전라도 익산에서 느꼈다 했습니다. 이렇게 교과서 속의 지식을 머리로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온 몸으로 체득하면서 지적 희열을 느끼는 것이 어프레시에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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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 어프리에이션의 의의로 듀이는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1) 가치판단의 표준(7~9)

이에 대해 듀이는 흥미롭게도 음악의 예를 듭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그저 관념적으로만 배웁니다. 이게 어프레시에이션의 대립지점에 있는 상징적/관념적 이해입니다.

클래식음악의 가치에 대한 어프레시에이션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관념적으로 그 중요성을 강요받으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냐 하면.....

학생들이 관념 속에는 클래식 음악이 좋다고 느끼고, 실 생활 속에서는 뽕짝음악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이홍우 씨의 제멋대로 번역을 또 볼 수 있는데, ‘뽕짝에 해당하는 원어는 ragtime입니다. 랙타임은 위대한 음악 재즈의 효시 격에 해당하는 음악이죠. 재즈라는 레시피를 구성하는 재료로서 아프리카적 요소(블루스, 흑인영가)와 유럽적 요소가 있는데, 후자에 해당하는 중요한 음악이 랙타임입니다. 이 책 민주주의와 교육이 만들어진 1914년의 재즈음악은 랙타임이 유행했습니다. 랙타임을 뽕짝이라 일컬으면 재즈에 대한 엄청난 모독입니다. 랙타임의 황제 스콧 조플린의 유명한 음악으로 영화 [스팅]의 주제곡이기도 한 [the Entertainer]를 뽕짝이라 하면 미친놈이죠!

이 맥락에서 랙타임은 그저 대중음악정도로 옮겼으면 좋았을 겁니다. 재즈가 위대한 음악으로 거듭나는 것은 1940년에 비밥에 이르러서입니다. 이 시기의 재즈음악을 존 듀이가 천시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뽕짝이라 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암튼, 듀이 선생은 가치판단의 표준이 어프레시에이션이 아닌 관념 조작으로 이루어지면, “삶 따로 공부 따로의 분열이 생겨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의 교육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존 듀이가 이 책에서 말하는 거의 대부분의 교육적 폐단이 21세기 우리 교육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우리 시대 교육의 비극입니다. 우리 교사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그 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면 우리의 교육실천은 바뀝니다. 갑갑한 구조 속에서도 교사의 의지와 어프레시에이티브한 관점이 있으면 학교를, 학교를 못 바꾸면 교실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은 주로 철학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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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프레시에이션에서의 상상력의 위치

<<상상력은 모든 분야에서 어프레시에이션의 매개체가 된다. 어떤 활동이 기계적인 것 이상이 되게 하는 것은 상상력의 작용뿐이다.(10:3-4 = 103~4째 문장)>>

이 맥락에서 제가 즐겨 쓰는 생떽쥐베리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바다를 향하려는 아이가 있다면, 그에게 항해술을 가르치거나 배를 만들어 주지 말고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제 책에서 제가 이성과 감성의 문제를 통합적 관점(=변증법적 관점)으로 바라 봐야 한다고 하면서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 반성이 드는 것은 이성에 의한 감성의 발달보다, 감성이 이성의 발달을 이끄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미성숙한 어린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키워 주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때문에 진도가 아무리 늦어도 미술/음악/공작(실과) 수업은 꼭 해야 합니다.

어프레시에이션의 역량은 상상력의 발전에 비례한다는 말을 듀이가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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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육과정에 있어서의 예술의 위치

드디어 듀이 선생이 교육미학의 관점을 피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예술(art)이라는 낱말이 광의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겁니다. 이 문맥에서 듀이는 예술과 기술 둘 다 art로 쓰고 있습니다. 듀이는 예능 교과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의 배움에서 어프레시에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술활동은 평범하고 사소한 경험 안에 들어 있는 넓고 깊은 의미를 드러내어 준다. 말하자면 예술은 안목을 키워 준다... 예술은 교육의 사치품이 아니라, 교육을 가치있게 하는 바로 그것을 강렬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13절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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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을 영어로 ‘esthetics(=aesthetics)’라 하죠. 18세기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창조한 이 말은 감각이란 뜻에서 유래합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듀이는 이 반대의 의미로 ‘anesthetics’에 관해 언급합니다. 감각이 파괴된, 마취된 상태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이 어프레시에이션이 아닌 상징에 의한 관념 조작을 강요하면 마취가 일어납니다.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국민들이 정신 수준이 ‘anesthetics’에 가깝습니다.

어버이들은 못 배워서 마취되어 있고, 배운 젊은이들은 ‘anesthetics’의 교육을 받아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이 마취 공화국에서 한심한 지도자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오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우리 교육자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어프레시에이션을 교육의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장의 요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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