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음악이야기

I Love You Much Too Much / Santana

리틀윙 2016. 7. 3. 21:41

산타나(Carlos Santana : 1947~)는 멕시코 출신의 기타리스트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화려한 데뷔를 했다. 당시, 신예 산타나 밴드의 연주는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를 이루었고 산타나는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찬사를 받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산타나 밴드는 콜룸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어 [Santana : 1집], [Abraxas : 2집], [The Third Album : 3집] 이후 지금까지 2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롱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산타나와 더불어 멕시코가 자랑하는 대중 예술가로서 로드리게즈 Robert Rodriguez가 있다. 산타나는 로드리게즈가 만든 멋진 영화 [데스페라도 Desperado]에서 사운드 트랙의 일부를 맡았는데,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여주인공의 열정적인 러브씬에서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바로 카를로스 산타나의 솜씨이다. 이 영화는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다는 것 - 사실, 이는 매우 심각한 이슈이다. ‘폭력의 미학’ 어쩌고 하지만, ‘폭력’과 ‘미학’이란 두 낱말은 서로 어울릴 여지가 없다. 단순논리일까? 하지만 나는 로드리게즈나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의 영화가 달갑지 않다. 화려한 영상과 박진감 넘치는 구성은 일품이나 그 속엔 ‘사색’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 외엔 흠잡을 데가 없는 훌륭한 작품이다. 지금 언급하는 이 러브씬의 영상에서도 로드리게즈 특유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엿보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두 남녀가 원초적 교감을 나누는 행위를 이토록 아름답게 찍은 영화를 보기는 드물 것이다. 로드리게즈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그리고 산타나, 이 세 사람의 캐릭터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정열'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라틴’의 피를 지니고 있다. 라틴은 정열, 정열은 관능, 관능은 예술로 연결된다.





[I Love You Much Too Much]에서도 산타나는 블루스 기타 특유의 끈적한 톤칼러로 라틴민족의 색채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다. 사랑을 고백하는 열정의 강도를 배가시켜(much too much) 전하려는 듯한 파워 피킹은 라틴의 정열을 잘 대변해 준다.


산타나는 이 곡 외에도 [Samba Pati], [Europa] 등의 훌륭한 기타 인스트루멘털을 남겼다. 산타나의 곡들은 거의가 처음엔 멋진 블루스 형식으로 흐르다가 후반부에선 복잡한 라틴 리듬으로 달음질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산타나는 태고의 생동감이 살아 숨쉬는 라틴 리듬에 록을 접목시켜 이른바 라틴 록(Latin rock)을 창조하였다. 라틴 록이 다소 지겹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8비트 리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산타나의 민족문화창달 정신에 경의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남의 문화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차원에서 그의 연주곡을 끝까지 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도 산타나가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한국 록음악의 대부, 이 화려한 수식어구의 주인공으로 신중현 외에 별다른 인물을 생각할 순 없을 것이다.
신중현은 1938년 1월 4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49년, 신중현의 부친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여 가족을 데리고 충청도로 이주했다. 이때 신중현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화목한 가정이었으나 한국전쟁이후 부친께서 몸져누워 가족들 모두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만 했다. 부모님을 여의고 소년가장이 된 신중현은 어린 여동생을 친적 집에 맡기고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여동생에게 출세해서 돌아오겠다고 눈물로 다짐하였건만, 타고난 예술가의 감수성은 그를 돈 안 되는 ‘가인(歌人)’의 길로 인도했다. 신중현은 고된 공장 일을 통해 손에 쥔 몇 푼을 악기 사는데 틀어넣었다. 처음에는 바이올린을 배우려 했으나 어디 배울 데가 없어 포기하고 독학이 가능한 기타를 익히기로 했다.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신중현의 음악 편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순수한 독학으로 익힌 실력이었지만 신중현의 기타는 이미 최고로 소문나 있었다. 1957년, 신중현은 기타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중, 자신에게 기타를 배우러 온 미 8군 무용수의 추천으로 미 8군 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미 8군의 쇼무대는 연예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 시절엔 TV는커녕 라디오조차 잘 보급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미, 한명숙, 최희준, 김상국, 서수남 등 이름만 들어도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우리들의 우상들이 모두 미 8군 쇼무대 출신의 연예인들이다. 독자들은 60~70년대를 풍미했던 거의 모든 스타들이 ‘라디오 시대’와 ‘TV시대’에 우리들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기 이전, ‘미 8군 쇼 시대’에 주한미군들 앞에서 ‘재롱’ 떨었던 인물이었음을 알고 있었던가? 몰랐다면, 이는 마치 청초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네 가슴을 설레게 한 이웃집 아가씨가 늦은 밤 중년 남자의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목격할 때의 것과 같은 충격이리라. 펄 시스터즈, 바니걸즈, 위키 리, 패티 킴 등 국적불명의 예명들부터가 초기 한국 대중음악의 매판성을 적나라하게 반증해준다. 이들 가수가 불렀던 멜로디들은 우리 정서의 토양을 이루고 있을 것이므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모두 ‘헐리우드의 키드’이다 -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본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 그러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신중현은 미 8군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중현의 진가를 알아준 유일한 팬이 미 8군 군인들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당시 이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한국에서 싸이키델릭을 연주한들, 어떤 관객이 이해하고 감탄했겠는가를.


신중현이 위대한 것은 비단 기타를 잘 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진면목은 기타 실력보다는 뮤지션으로서의 음악성에 있다. 그는 시대의 국민적 정서를 때로는 맛깔나게, 때로는 세련되고 품위 있게 표현하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억압적인 사회에서 민중은 대중문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고자 하는 법이다. [미련], [마른 잎], [저무는 바닷가], [봄비], [빗속의 여인],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님은 먼 곳에], [커피 한잔], [거짓말이야], [미인], [아름다운 우리 강산] 등 신중현이 만든 수많은 곡들은 지금까지 한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책갈피 속의 ‘마른 잎’처럼 빛은 바랬으되 여전히 추억으로 살아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곡들은 현재 노래방에서도 애창되는 것들도 있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처럼 ‘위대한 대중가요’로 위업을 인정받는 곡도 있다.


내가 특히 사랑하는 신중현의 곡은 [미인]과 [떠나야 할 그 사람]이다. 이 둘은 신중현이 왜 위대한 기타리스트인가를 잘 설명해 준다. [미인]에서는 ‘지미 헨드릭스’와 우리 고유의 ‘장타령’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신중현의 특출한 기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리듬과 록 리듬이 ‘펜터토닉(pentatonic) 영어의 접두어 ‘penta-'는 숫자로 ’5‘를 의미한다. ’오각형‘은 영어로 ’pentagon'인데, 미국방성을 ‘펜타곤’이라 부르는 것은 건물 모양이 오각형이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펜터토닉 스케일’ 혹은 간단히 ‘펜터토닉’은 ‘5음계 스케일’을 말한다. 으뜸음(tonic)을 중심으로 5개의 음을 배열하면 4종류의 펜터토닉 음계가 가능하다. 우리 나라의 5음계는 ‘도레미솔라(궁상각치우)’의 음계이며, 스코틀랜드의 민요도 펜터토닉 음계를 쓴다. 유명한 [올드 랭 사인]을 대금이나 단소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음계와 스코틀랜드 음계가 모두 ‘펜터토닉’이기 때문이다. 한편, 록 기타리스트 중 지미 헨드릭스는 특히 블루 노트 펜터토닉(blue note pentatonic)을 잘 구사하기로 유명하다.

’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용해되어 멋진 새로운 록이 창출된 것이다. 내가 신중현을 ‘한국의 산타나’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위대한 곡을 “가사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니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다 죽는 날까지 저속한 짓거리는 저 혼자 다 해놓고선 선량한 예술인들을 포르노업자로 몰아 부치다니. 이 가당찮은 자가 신중현에게 향한 광기는 비단 [미인] 뿐만이 아니었다. [바람], [어떻게 해]외 무려 20여 곡의 힛트송에 금지의 수갑을 채웠다. 민주 사회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센서(sensor)’ 자체가 용납될 수 없지만, 박정권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신중현이 애국하는 마음에서 [뭉치자]를 만들었건만, 이것이 무슨 데모할 때, “뭉치자”인 것으로 해석하여 국민의 단결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는가 하면, 김추자가 불러 힛트친 [거짓말이야]는 국민들이 저보고 “거짓말이야” 하는 줄 알고 금지시켰다 한다. 도둑놈 제 발 저린 꼴이라 하겠다. 어떤 면에서, 국민들이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중현의 이런 노래들을 환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정권이 유독 신중현에게 가혹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신이후,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반발심을 희석시킬 목적으로 탁월한 작곡 능력을 가진 신중현에게 정권을 옹호하는 ‘국민응원가’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했는데 신중현이 이를 거절했다. 당연히 공권력을 동원한 대탄압이 뒤따랐고 일개 음악인이 폭력정권을 상대로 저항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신중현은 청와대의 요구에 응했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다. 이 노래가 전두환 시절 정○○가 부른 [아, 대한민국]과 질적으로 다른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응원가도 대가(大家)가 만들면 대곡(大曲)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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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그 사람]은 펄 시스터즈와 인순이가 각기 다른 맛으로 불렀지만, 뮤직파워 시절 신중현이 부른 곡이 가장 좋다. 신중현의 보이스에는 그가 겪었던 시대의 우수와 고뇌가 물씬 풍기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의 백미는 단연 기타 애들립이다. 애들립에서 풍기는 기타의 톤 칼러(음색)는 서양의 어떤 기타리스트들도 범접하지 못할 신중현 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절묘한 하모닉스도 일품이다.
오늘날 한국에도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기타의 대가들이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테크니션일 뿐 뮤지션은 못된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색깔’이다. 진정한 뮤지션이라면 자기정체성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정체성은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무엇보다 사색을 통해 체화되는 것이다. 모두들 ‘한국적 록의 토착화’를 위해 혼신을 다했던 신중현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일본의 어떤 언더그라운드 밴드는 신중현을 추종하여 클럽에서 신중현 곡만을 연주한다고 한다. 일본 음악 수준이 한국보다 몇 수위임을 생각할 때, 그들의 안목에 신중현이 최고로 비춰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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