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음악이야기

푸치니의 토스카 감상문

리틀윙 2014. 9. 1. 13:16

나는 음악 감수성이 풍부해서 어릴 때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회경제적 여건상 내가 가까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음악은 ROCK이 전부였다. 나이 40에 접어들어 재즈를 가까이 하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에 쇼팽의 야상곡을 처음 들었다. 학창시절 내가 쇼팽에 관해 안 것은 피아노의 시인이니 야상곡이니 하는 이름뿐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왜 그 많은 음악수업시간에조차 클래식 음악을 잘 듣지 못했나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 50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오페라에 빠져 본다. 오페라에 관한 나의 레퍼토리라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비제의 카르멘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이번 여름에 갑자기 오페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해서 책을 제법 읽고 유명한 아리아들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 세계가 너무 재미있다. 이렇게 훌륭한 인류 문화의 보물창고를 왜 내가 이때껏 멀리 하고 살았던가 후회가 밀려든다. 하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인간에게 너무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 나중에 성장의 원리 #5’에서 적겠지만, 인간을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흥미. 흥미와 열정만 있으면 나이는 중요치 않다. 오히려 나이 들어서 어떤 대상에 흥미를 갖게 되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20편의 오페라를 탐구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오페라들이 공통적으로 삼고 있는 소재는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요약된다. 그렇다고 모든 오페라들이 다 그게 그거라는 말은 아니다. 서양인들의 정신세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거시적으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지 그 비슷한 틀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저마다 형형색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 다 다르니 그 많고 많은 오페라들은 백인백색의 흥미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본질을 카타르시스로 생각하여 인간의 심성을 정화시키는 최고 형태의 예술을 비극으로 상정했다. 인간 삶에서 비극의 가장 극적인 형태는 단연 죽음이다. 그래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와 같은 그리스 비극 속에서는 죽음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 즉 부모와 자식, 연인 사이에서 죽음이 빚어진다. 소크라테스 시대에 그리스 비극이 있었다면, 중세에서 근세까지의 유럽에는 오페라가 있었다. 그리스비극과 마찬가지로 오페라는 죽음의 미학이다.

오페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보통 1607년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최초의 오페라 작품으로 꼽는다. 그러나 짧은 내 식견으론 널리 알려진 유명한 오페라들은 아무래도 모차르트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모차르트에서 시작하여 푸치니까지 유명한 오페라작곡가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 로시니(1792~1868), 도니제티(1797~1848), 벨리니(1801~1835), 바그너(1813~1883), 베르디(1813~1901), 구노(1818~1893), 비제(1838~1875), 레온카발로(1857~1919), 푸치니(1858~1924)

 

종합예술로서 오페라는 음악적 요소 외에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에 음악 문외한도 흥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공부한 오페라 가운데 한 편을 추천하라면, 푸치니의 토스카를 꼽겠다. 토스카에는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주옥같은 아리아들 외에 진보적 관점으로 포착할 수 있는 훌륭한 메시지가 있다.

 

 

 

 

이야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용솟음치던 1800년 격동의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혁명세력은 구체제(앙시앵레짐)를 지키려는 영국, 오스트리아 등의 연합세력과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나폴레옹군은 로마를 점령한 뒤 로마를 공화국으로 선포하고 안젤로티를 공화국 집정관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전세가 역전되어 프랑스군에 밀려 달아난 페르디난트 4세가 다시 반격해와 이 공화국을 무너뜨린다. 이탈리아의 혁명파들은 일단 몸을 숨겨 재반격의 기회를 노리는데 그 중심인물 안젤로티는 우리의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가 있는 성당으로 잠입한다. 토스카의 비극이 여기서 시작되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으리라.

갑돌이와 갑순이가 그러하듯, 카바라도시와 토스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토스카는 로마에서 잘 나가는 오페라 가수로서 국가의 중요행사 때마다 독창자로 무대에 오를 정도의 실력과 미모의 소유자로 뭇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라 하겠다. 이에 반해 카바라도시의 스펙은 상대적으로 빈곤하다만얼굴이 너무 잘 생겨서 토스카가 반한 것일까? 카바라도시 또한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성당의 벽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이 선남선녀의 행복이 기구한 운명의 장난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하필 카바라도시가 작업하고 있는 성당으로 문제의 인물이 몸을 숨기러 들어오다가 서로 마주친 것에서 시작된다. 안젤로티는 카바라도시의 옛 친구였다. 카바라도시가 외면하면 이 1급 요주의인물이 경찰에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카바라도시는 망설임없이 안젤로티를 자기 집으로 피신시키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배치되어야 할 악인이 등장하니 그 이름은 스카르피아.

 

 

 

 

스카르피아는 왕당파의 앞잡이이자 경찰서장이라는 권력자이다. 반동의 시기에 절대권력을 쥔 악질들이 으레 그러하듯 돈과 여자를 밝힌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친일경찰로서 산으로 올라간 빨치산의 예쁜 아내를 능욕하는 그 놈을 연상하면 되겠다. 이 호색한이 우리의 청순한 여주인공 토스카를 눈독 들이고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던 찰나, 토스카의 남친이 정치범과 내통하고 있는 걸 포착했으니 이건 그야말로 꿩 먹고 알까지 먹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일급정치범을 체포하여 공도 올리고 또 그를 도운 카바라도시를 죽임으로써 토스카를 차지하려는 게 스카르피아의 속셈이었다. 푸치니는 1막에서 제일 뛰어난 아리아를 스카르피아의 추한 입으로 부르게 하는데, 그 노랫말이 걸작이다.

 

두 가지가 목적이다

정치범 처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오만한 여자의 눈빛이

욕정으로 허물어지는 것을 보는 것!

하나는 사형대로,

다른 하나는 내 품으로!

 

 

 

카바라도시는 스카르피아의 부하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고, 토스카는 스카르피아에게 애원한다. 평소 뇌물 밝히기로 로마에서 악명이 난 인물이니, 단도직입적으로 얼마면 되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남자는 돈은 필요 없다고 한다. 카바라도시의 몸값으로 토스카의 몸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사형집행 하는 총 속에 공포탄을 장착하여 죽이는 시늉만 하고 두 남녀가 안전하게 도피하도록 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진퇴양난에 처한 우리의 작은 새는 그 처절한 피눈물이 북받쳐 오르는 심정을 노래로 쏟아내니 이게 그 유명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이다. 어떤 해설집에는 노래 대신 예술로 해석되어 있는데 ‘arte’란 말은 영어의 art이니 예술로 옮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면서

누구에게도 나쁜 일 안했건만,

불행에 빠진 사람들

남몰래 도와왔건만,

언제나 깊은 신앙심으로

제단에 꽃을 바쳤건만

이 고통의 시간에

, 왜 주님은

이렇게 갚으시나요?

 

http://www.youtube.com/watch?v=pAqZ6TgW8AA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마리아 칼라스의 소름끼치는 고음이 인상적이었던 이 노래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난 진정 몰랐다. 조수미의 동명의 자서전 제목을 접하면서 이 노래는 그저 한 여가수가 자신의 음악 인생을 노래한 ‘My Way’인 줄 알았다. 푸치니에게 미안하고 토스카에게 미안하다. 그 비상한 아픔을 모르고 이 노래를 엉뚱하게 즐겼으니!

 

이 아리아가 끝난 뒤 토스카는 자신을 안으려는 스카르피아에게 칼을 안겨준다. 그 징그러운 악당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오면서 2막이 끝난다.

죽었구나, 죽었으니 이제 널 용서한다.”

 

 

3막은 감옥이다. 카바라도시가 죽음을 앞두고 간수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맨입엔 안 될 것이고 반지를 줘서 연필과 종이를 건네 받아 구구절절 토스카를 향한 사랑의 유언을 써내려가는데... 바로 이 장면에서 <토스카>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 불려진다. http://www.youtube.com/watch?v=WHGB618Bpi8

 

별들은 빛났고

대지는 향기로웠던 밤,

정원의 몸이 삐걱 열리고

들길을 걷는 발소리 들려왔지

그녀가 들어서면서

내 품안에 몸을 던졌지

, 달콤한 입맞춤, 나른했던 애무......

옷이 떨어지며 내 앞에 드러나던 그녀의 몸

날 떨게 했지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시간은 지나

절망 속에 나는 죽네

목숨을 이토록 사랑한 적이 없는데......

 

이때 뜻밖에 토스카가 달려온다. 더구나 스카르피아가 발급해준 자유여행증명서를 들고 오니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않은가. 두 사람은 노래한다. “Senti, l'ora e vivina”라는 아리아인데,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는지 모르겠다. 이 노래가 이 장면에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동영상을 통해 알았다. 이중창인데 토스카의 노래가 끝난 뒤 이어지는 카바라도시의 노랫말이 리베리(자유)’라고 하는 것을 보니 확실하다. 아무튼 이 아리아도 참 아름답다.

http://www.youtube.com/watch?v=WhGlzd0_aoI

 

 

 

 

그러나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거기까지였다. 공포탄은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다. 스카르피아가 토스카를 기만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토스카는 죽은 카바라도시에게 달려가 자기 정말 연기 잘 하네. 실제로 죽은 것처럼 말이야...”라고 하는데 몸에서 진짜 피가 흐르고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보면서 토스카의 분노는 극에 이른다. 이미 자기 손에 죽은 스카르피아를 저주한다. 성벽 위에 올라가 그가 있을 하늘을 향해 외친다.

스카르피아, 하늘에서 보자!”

 

아까는 용서한다고 했는데, 이젠 도저히 용서 못한다는 서슬 시퍼런 적개심을 표출하고선 자신도 몸을 날려 성벽 아래로 떨어져버린다. 그리고 막이 내린다.

자신의 몸을 요구하는 악한을 단칼에 죽여버리는 것도 그렇고 토스카란 여인 성격 참 대단하다 싶다. 이런 점에서 똑같은 푸치니의 작품에 나오는 그 등신 같은 나비부인과 비교된다 하겠다.

 

 

 

 

<토스카>를 보면서 떠오르는 문학작품이 있다. 고미카와 준페이라는 일본 작가가 쓴 <인간의 조건>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 가지가 카바라도시와 닮은꼴이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사회 모순에 대한 거창한 혁명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실천가는 아니지만, 눈앞의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의로움을 쫓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의 조건>의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한 가운데의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가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신혼의 달콤한 행복 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전쟁터에 가지 않기 위해 대체복무로 전쟁무기 공급에 필요한 철강재를 생산하기 위해 광산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본군들이 현지인과 중국인 포로에게 가하는 만행을 지켜보다 못해 약자의 편에 서다가 아내와 생이별하는 등의 불이익 처분을 받게 되면서 결국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눈 내리는 길에서 던 길에 객사하고 만다. 며칠을 굶고 눈이 내리는 먼 길을 걸어가다가 지쳐 쓰러져간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건네줄 만두 - 만두집에서 두들겨 맞아 가며 억지로 손에 넣은 만두다 - 를 손에 쥔 채 쓰러진 그의 주검 위로 눈이 하염없이 내려 무덤을 만들었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이 책 정말 재밌는데, 인터넷 서점에 조회해보니 6권 한 세트에 7만원이다. 가격이 부담이 되겠다. 20년 전에 내가 본 책은 세 권짜리였는데...

 

인간은 시대의 인간이다. 사회적 모순, 시대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바라도시나 가지는 특별히 혁명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시대의 모순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다 보니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토스카>의 주인공 토스카의 경우도 그렇다.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뱀 같은 스카르피아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이 비참한 상황에서 토스카가 신을 향해 던졌던 화두는...... “예술과 사랑을 위해 살았을 뿐 누구에게도 몹쓸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내게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시대의 인간, 사회적 상황 속의 인간이다. 비단 토스카나 가지가 처한 극단의 시기가 아니더라도, 시대의 아픔과 불행 그리고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2014년 한국사회에서 세월호의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운 한국인은 없다. 모순 상황에서 중립적인 입장이라는 건 없다. 저 훌륭한 프란체스카 교황의 말씀처럼,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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