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음악이야기

Bye Bye Blackbird

리틀윙 2014. 6. 1. 21:32

Bye Bye Blackbird

이 곡은 1926년에 작곡되어 같은 해 진 오스틴Gene Austin에 의해 불리어진 뒤 수많은 재즈 뮤지션과 팝 음악가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오고 있다. 그 중 내가 제일 선호하는 버전은 패트리샤 바버Patricia Barber의 음악이다. 패트리샤 특유의 중후한 피아노 연주와 보컬이 이 곡이 안고 있는 스산한 정서를 잘 대변하기 때문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qIaBzdfl_rw

 

 

 

내 모든 근심걱정을 싸가지고

지금 떠나렵니다. 낮게 노래를 읊조리면서요.

블랙버드여 안녕

Pack up all my care and woe

Here I go, singing low

Bye bye blackbird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그 곳

설탕처럼 달콤한 우리 엄마가 계시는 곳

블랙버드여 안녕

Where somebody waits for me

Sugar's sweet, so is she

Bye bye blackbird

 

이곳에선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요.

, 그들 모두 내게 얼마나 심한 악운을 안겨다 줬던지.

제 침대를 챙겨서 불 밝혀주세요.

오늘밤 늦게 도착할 거예요.

블랙버드여 안녕.

No one here can love or understand me

Oh, what hard luck stories they all hand me

Make my bed and light the light

I'll be home late tonight

Blackbird, bye bye

 

 

뭔가 안 좋은 곳에서 불운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 현재의 삶을 청산하고 그곳을 떠나 부모님 계시는 고향집으로 향한다는 스토리인데, 그 안 좋은 곳이란 사창가를 뜻한다. , 노랫말의 주인공은 매춘을 업으로 하는 사람인 것이다. ‘블랙버드란 표현은 주인공 자신의 삶에 대한 메타포로서 이 노래는 가수가 자기 자신에게 독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뮤지션에 따라 이 곡의 음악적 분위기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점이 흥미롭다. 이 음악을 재즈 명곡으로 격상시킨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나 키쓰 자렛Keith Jarrett의 경우는 스윙감을 만끽하는 하드밥hard bop 스타일로 연주한다. 키쓰 자렛은 1991년 마일즈 데이비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추모하는 헌정앨범 [Bye Bye Blackbird] 속에 이 곡을 담았는데이 타이틀은 위대한 블랙 뮤지션에게 이별을 고하는 의미로 쓰여 지고 있다. 이 곡의 오리지널로서 1926년 진 오스틴의 음악도 금관악기만 없을 뿐 딕실랜드 스타일의 경쾌한 분위기이다. 초기 재즈 시대에 만들어진 탓에 이 곡은 브래스 밴드로 배치된 전형적인 딕실랜드 풍이나 딘 마틴Dean Martin의 경우처럼 스윙재즈 형식으로 노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y45rCNSZulI

http://www.youtube.com/watch?v=rKAuODZjRsw

 

 

 

 

노랫말에 담긴 무거운 정서와 달리 이 노래가 축제 분위기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재즈음악이 가무를 위한 딴따라 음악으로 복무하던 시대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음악이 담고 있는 노랫말에 충실하여 진지한 성찰적 분위기로 표현하는 곡들이 많이 나왔다. 주로 여성보컬리스트들의 음악이 그러한데 지금 소개하고 있는 패트리샤 바버의 음악과 함께 니나 시몬Nina Simone과 페기 리Peggy Lee,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의 곡이 그러하다. 다이애나 크롤의 음악은 조니 뎁 주연의 괜찮은 갱스터 영화 [퍼블릭 에너미]의 배경음악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진 오스틴의 원곡에선 블랙버드와 대조를 이루어 밝은 앞날을 뜻하는 은유법인 블루버드가 등장하지만, 이들의 음악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어두운 분위기 일색으로 노래되는 것이 특징이다.

 

 

 

 

.............................................

 

뮤지션에 따라 같은 곡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거듭 재창조해가는 것은 재즈음악의 위대한 가능성이다. 또한, 음악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든 젊은이가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살겠다는 결의는 축복할 일이다. 그러나 이 음악과는 정반대로 사창가를 떠난 여성(남성)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노래가 있다. 예전에 통기타 배울 때 슬로우 록 주법의 연습곡으로 많이 연주한 그 노래 [House of Rising Sun]이다.

속칭 슬로우 록slow rock’이란 리듬&블루스 음악과 관계있다. R&B의 개념은 최근에 와서 소울soul과 가스펠gospel, 펑크funk을 아우르는 폭넓은 장르로 인식되고 있으나, 초기의 R&B는 느린 블루스 음악에 템포와 리듬감을 가미한 음악으로 우리가 슬로우 록이라 일컫는 리듬 형식을 띠고 있었다. [House of Rising Sun]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64년에 영국 그룹 애니멀즈The Animals를 통해서인데, 애니멀즈의 [House of Rising Sun]이 전형적인 초기 R&B 형식의 곡이라 하겠다. 이 곡은 원래 미국 민요로 구전되어 오다가 로맥스Alan Lomax라는 민속음악학자에 의해 발굴되어 1937년에 포크블루스 형식으로 레코딩 되었다. 로맥스는 이 곡의 제목을 [The Rising Sun Blues]라 이름 붙였다.

영어가 익숙지 않았던 70~80년대에 이 곡은 [해뜨는 집]이라는 한글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비범한 제목과 함께 통기타 연주자들에겐 이 곡의 특이한 코드 진행도 인상적이었다. (Am-C-D-F-Am-C-E-E7, Am-C-D-F-Am-E7-Am)2박 단위로 코드가 바뀌면서 일정한 코드 진행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특이하다 싶었던 기억이 있다그 때는 몰랐지만, 이 곡은 8마디 블루스 형식의 곡이다. 블루스형식은 보통 12마디 진행이지만, 초기의 포크블루스는 8마디 진행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작자 미상의 곡으로 루이 암스트롱에 의해 유명해진 블루스 [St. James Infirmary]이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 이 곡이 뉴올리언즈의 사창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거기서 망가져가는 젊은이의 초상을 노래하고 있는 팩트이다.

 

 

 

 

뉴올리언즈에 어떤 집이 있어요.

사람들이 해뜨는집이라 일컫는 곳이죠.

그곳에서 수많은 가련한 소녀들이 망가져갔고

, 저도 그 중 하나랍니다.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girl

And God, I know I'm one

 

나의 어머니는 재봉사였어요.

내게 청바지를 만들어주곤 하셨죠.

아버지는 노름꾼이었고

뉴올리언즈에서 살다시피 했죠

My mother was a tailor

Sewed my new blue jeans

My father was a gamblin' man

Down in New Orleans

 

노름꾼이 필요로 하는 유일한 것은

트렁크 속의 돈가방이겠죠

그가 만족해하는 유일한 시간은

술에 쩔어 있을 때죠.

Now the only thing a gambler needs

Is a suitcase in the trunk

And the only time he's satisfied

Is when he's on a drunk

 

내 어린 여동생에게 말해주세요.

내가 한 짓을 절대 하지 말라고요.

뉴올리언즈의 그 집을 피하라고 하세요.

사람들이 해뜨는집이라 부르는 그곳을요.

Go tell my baby sister

Never do what I have done

Shun that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it the rising sun

 

지금 나의 한 쪽 발은 플랫폼에

다른 한 쪽 발은 기차에 걸쳐 있어요.

나는 뉴올리언즈로 돌아갈 거예요.

족쇄를 다시 차러 가는 거예요.

Well, I got one foot on the platform

The other foot on the train

I'm goin' back to New Orleans

To wear that ball and chain

 

뉴올리언즈에 어떤 집이 있어요.

사람들이 해뜨는집이라 일컫는 곳이죠.

그곳에서 수많은 가련한 소녀들이 망가져갔고

, 저도 그 중 하나랍니다.

Well,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the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girl

And God, I know I'm one

 

[Bye Bye Blackbird]와 마찬가지로 이 곡에서도 노래하는 이가 남자인 경우 노랫말에 등장하는 비운의 주인공은 소녀girl가 아닌 소년boy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순전히 가수를 위한 음악적 편의를 쫓다 보면 '리얼리즘'과 거리가 멀어지는 폐단이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사창가에서 망가지는 청춘의 절대 다수는 여성의 몫일 것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의 핵심은 전형성이다. 특정 시공간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시기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인물로 배치되어야 사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창가에서 망가져 가는 청춘의 대표성으로 소녀가 아닌 소년을 포커스에 맞추는 순간 이 노래가 전하는 사실성과 감동은 반감되고 만다.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이 노래가 뿜어내는 감동의 절정은 한 쪽 발은 플랫폼에 다른 한 쪽 발은 기차에 올려 놓고서 결국 갈 수밖에 없다는 대목이다. 그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을 알기에 기차를 탈까 말까 망설이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는 여성의 그 딱한 심정이 우리들 폐부를 찌른다.

 

 

 

 

최근 세월호에서 보듯 온갖 부조리와 비합리적 작태가 횡행하는 이 나라에서 그나마 자긍심을 갖는 한 가지는 성매매를 금지한 것이라 생각한다. 10여년 전 당시 집장촌의 여성들이 업주들과 함께 광장에 나와 관련법 폐지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이 매정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그녀들이 악덕 포주들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 노래의 주인공이 기차를 탈까 말까 망설이면서 결국 그 지옥 같은 곳을 향해 몸을 싣게 되는 그 운명과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당시 성매매특별법을 놓고 진보진영에서도 엇갈린 입장으로 혼란스러웠다. 진보좌파 일각에서는 성노동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집장촌 여성들의 편에 섰다. 이들에 따르면 그녀들을 창녀라는 낙인에서 구해준 것은 탈성매매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자각이었다고 한다.

 

 

 

 

글쎄다. 성매매를 바라보는 이러한 급진적 시각이 매춘은 사회적 필요악이라 떠드는 남근중심적 사고와 뭐가 다를까? 매춘이 정당한 노동이라거나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성매매의 불가피성을 거론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해 보기 바란다.

당신의 누이나 아내가 성매매를 해도 좋은가? 그것을 정당한 노동이라며 권장할 것인가?

 

 

 

 

지상에 유배된 천사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에게 슬픔(sorrow)이라는 단어에 대해 천재적인 개념규정을 남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임신한 창녀라는 것이다.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잉태했을 때 점점 불러 오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떤 상념에 잠길까? 그녀가 안게 될 엄청난 실존적 고민과 현실적 불이익에 아랑곳없이 남성이라는 족속들은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고 욕망을 구매해 배설해대는 짓거리가 이 위대한 자유시장경제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빚어지는 그렇고 그런 상거래행위와 다르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의 중년 남자치고 해뜨는 집을 한 번도 드나들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고백컨대, 나도 그 한 사람이다! 철은 없고 혈기는 왕성한 젊은 시절 친구들과 술 마시고서 또래집단 특유의 군중심리에 편승해 그 어둠의 골목으로 향했던 적이 있다. 그 동네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색감은 검은색과 붉은색의 단 두 색깔밖에 없었다. 온 사방이 어둡고 사람들의 영혼이 어둡다. 그 음울한 어둠 속에 붉은 빛이 내리비친다. 이 싸구려 핑크빛 조명은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배치이겠으나 그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방바닥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볼 때 나의 몸은 전율한다. 나의 이드(‘성욕을 의미하는 프로이드의 용어 id는 라틴어로서 영어의 ‘it’ 우리말로는 거시기를 뜻한다)가 전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한 마음으로 전율하는 것이다. 여성의 삶은 슬픔그 자체이다. 그 처참한 여성의 신체 앞에서 용맹정진하고선 어둠의 골목을 빠져나와 밝은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해 가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그늘진 곳에서 몸을 파는 여성이 단 한 명이라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우리에겐 행복을 논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면 너무 극단적인 발상일까?


'필인의 음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치니의 토스카 감상문  (0) 2014.09.01
'레어버드'의 불편한 음악 <Sympathy>  (0) 2014.08.16
POP ESSENCE 해설  (0) 2014.01.14
Honeydrippers, [Sea of Love]  (0) 2014.01.14
Lakota, to Walk the Red Road  (0) 2013.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