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영어마을에서 ‘종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찾아 든다. 학교종 소리야 여느 학교에서도 늘 듣던 바지만, 다부로 온 뒤로 3년 동안 듣지 못했던 소음(?)을 갑자기 들으니 문득 모종의 교육학적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여기선 종소리 대신 시그널 음악으로 영어동요가 흘러나온다. 종소리든 시그널 음악이든 ‘학교종’은 학생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신호(signal)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통제’라는 수사법이 과격하게 느껴지는가? ‘통제’라기보다는 ‘안내’라 하면 어떨까 하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종이라는 신호에 대해 학생들이 취할 수 있는 반응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안내’라는 유순한 수사법은 교육의 리얼리티를 호도할 가능성이 많다.
학교 종이 땡땡 치면 왜 아이들은 교실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 교육적으로 이 신호와 반응 사이에 어떠한 필연성도 있을 수 없다. 모래사장에서 1학년 꼬맹이가 흙 만지며 노작활동을 벌이는 것은 공부가 아닌가? 심지어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이도 종소리 울리면 읽던 책 덮고 교실로 뛰어가야 한다면 이게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일까? 존 듀이에 따르면, 교육은 “흥미를 위한 흥미에 의한 흥미의” 교육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동의 자발성에 터해 활활 타오른 흥미에 찬물을 끼얹는 학교종이 어찌 교육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건 반교육적 폐단일 뿐이다.
누구를 위하여 학교종은 울리나?
이 같은 물음에, “모두를 위해서!”라고 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노작활동과 독서에 한참 몰입하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듀이가 강변하듯이,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도 교육에서 ‘흥미’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모래밭이나 도서관에서 활활 타오른 아이의 흥미가 종소리 이후 교실활동에서 전이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그 아이의 입장에선 그냥 하던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최선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교육과정은 궁극적으로 ‘개별화의 형태’로 입안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소인수의 특수학급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Let It Be!”의 기조만 유지해도 좋을 것이다. 북유럽 학교 탐방 때 그런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다른 아이들이 교실에서 교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을 때 어떤 아이는 옆에 있는 놀이방 비슷한 곳에서 레고를 만지며 놀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동네 교육자들은 아이의 이런 행동을 일탈로 보지 않고 ‘개별화 교육과정의 구현’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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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에서 듣지 못하던 학교종 소리를 들으면서 새삼 다부교육 시스템의 탁월성에 대한 각성이 찾아든다.
처음에 다부 와서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생활상이 이해하기 힘들었고 때론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 글에서 논했듯이, 이곳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이나 급우들 간에 분쟁이나 학생 공동체 내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해 가는 ‘자기 정화 역량’이 뛰어나다. 나는 다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특유의 교육 역량이 ‘학교종 없애기’와 관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일반 학교에서 학교종을 울리는 명분은 정해진 일과 시간대로 학생 행동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들어 갈 종소리에 들어가고 나올 종소리엔 나오라는 뜻이다. 그런데, 다부에서는 학교종을 울리지 않아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온다. 간혹 점심시간에 ‘놀이 삼매경’에 빠져 5교시 수업에 약간 늦을 때도 있지만, 말 그대로 “약간” 그러할 뿐이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이런 행동에 별 문제의식을 품지 않는다.
다부의 경우를 보듯, 학교종이라는 신호체계가 없어도 아이들의 공동체 생활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학교종이라는 신호에 의해 조건화 되지 않은 다부 아이들의 성숙한 생활 모습은 교육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한다.
누구를 위하여 학교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school bell tolls?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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