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양(羊)의 해를 맞아

리틀윙 2015. 1. 9. 10:41

 

  어제 안동 연구원에서 각급 학교 연구부장들을 모아 놓아 교육과정 연수회를 열었다. 여는 마당에서 연구원장님이 인사말을 하는데, 2015년 양의 해를 맞아 ()’을 화두로 설을 풀어 놓으셨다. 한자어에 자가 들어간 글자는 다 좋은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울 미(), 착할 선(), 옳을 의() 등의 글자가 그러하다.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를 표방하는 , , 이라는 글자에 공통적으로 이 들어가는 이유로 양이 온순하고 좋은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참 좋은 말씀이다. 양의 해를 맞아 누구든 연초 인사말을 이렇게 풀어갈 것이다.

그러나, 고대에 문자가 만들어질 때 왜 양이 인간에게 좋은 동물이었던가 하는 점을 자세히 짚어보면 매우 흥미로울뿐더러 어떤 중요한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

아름다울 미()는 양양()과 큰대()의 두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회의(會意)문자로서 큰 양을 뜻한다. 예부터 중국에서 양은 가장 좋은 동물이었다. 고기는 물론 옷감과 젖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쓸모 있는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인간 정신의 발전사에서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관념이 물질적 조건이 바탕해 생성되었다는 점을 짚고 싶다. , ‘좋은 무엇은 물질적으로 좋은 것()이 관념적으로 좋은 것(, , )을 파생시키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것이 비너스이다. 그런데, 비너스상이 두 종류가 있다. 잘 알려진 것으로 중세에 만들어진 밀로의 비너스(아프로디테)상은 그 수려한 미모와 몸매가 오늘날 미인의 척도와 비슷하지만, 선사 유물로 발굴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은 전혀 다르다. 생산력이 극히 낮은 시대에는 노동력과 전쟁수행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이 시대에서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인상은 아이를 많이 낳는 다산의 자질이었다. 따라서 다산과 육아에 유리한 큰 골반과 가슴을 지닌 여성이 최고의 미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극단적인 비교가 아니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도 날씬한 여성을 보면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운운 하시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인간에 관한 무엇은 철학적 유물론의 관점을 취할 때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세 덕목이 진--미인데, 앞의 와 마찬가지로 선()이나 ()’에도 양()이 들어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은 물론 착하고 옳은 것도 인간 삶의 물적 토대인 의식주와 관계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도덕이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에 중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 양은 좋음의 척도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원조인 아브라함도 양목업자였다. 그의 후손 야곱도 그렇고 많은 양을 소유한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부자였다. 그러니까 양은 부의 척도였다. 화폐가 없었던 당시 경제 활동에서 양은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중국이나 이스라엘과 달리 고대 캄보디아에서는 대신 물고기좋음의 상징이었다. 캄보디아에는 넓은 평원이 없어 목축업은 발달할 수 없었다. 대신 이 땅에는 동양 최고의 호수인 톤레삽이 있다. 이 광할한 호수에서 공급되는 물고기 자원이 캄보디아를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사원인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때 캄보디아 수도 시엠립의 인구는 같은 시기 런던 인구의 10배가 넘었다.

캄보디아인의 젖줄이라 할 톤레삽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 이름이 레알이다. 오늘날에도 캄보디아인들의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한 이 레알은 캄보디아 화폐 단위명과도 같다. , 한국의 영미의 달러일본과 중국은 위안이듯이 캄보디아 돈은 레알인 것이다. 현대인이 가장 소중한 물신으로 섬기는 돈의 이름이 왜 레알일까? 그 인과관계는 방금 논한 인간문화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으로 접근해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인에게 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듯이 캄보디아인에게는 레알이 가장 소중한 대상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 삶의 핵심은 경제생활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빼고 인간 삶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에게는 , 캄보디아인에게는 레알이 그러했듯이, 현대인에게는 좋은 것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의 삶에서 화폐는 마르크스가 말하듯, 단순한 일반적 등가물 이상의 무엇으로 존재하니...... 물신(物神)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옛날 동양인들은 양이나 레알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그 쓸모를 유용하게 썼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돈을 숭배한다. 인간이 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부자 경주 최씨는 자기 재산을 나눌 줄 알았다. 그러나 현대의 부자는 돈 욕심이 끝이 없다. 아무리 가져도 그는 허기를 느낀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가난해 진다. 자기영혼을 소외시킬뿐더러 자신이 너무 많이 가진 탓에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까지 소외시킨다. 부자는 너무 부유해서 빈자는 너무 가난해서 각자 인간다운 삶과 멀어져 간다.

 

 

 

현대인에게 좋음을 상징하는 화폐가 옛날의 양처럼 그리고 의 가치를 실현하는 건강한 척도로 쓰이는 세상을 만들자. 선의 본질은 공동선이며, 정의는 다름 아닌 분배의 정의이다. IMF 이후에 민초들은 일가족 동반 자진을 해가는데 반해, 재벌들은 더욱 큰 부를 확장해간다. 이래서는 아름답고() ()하고 의로운() 세상과 거리가 멀어진다. ()의 본래적 가치가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실현되는 한 해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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