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시골할머니와 서울할머니

리틀윙 2015. 11. 26. 11:36

나는 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오늘도 아내랑 찜질방 갔다가 저녁 먹으러 국수집에 왔다. 사진에서 보듯이 국수집은 대개 마음이 넉넉하다. 이 집은 양의 대소와 무관하게 잔치국수 값으로 2,900원만 받는다. 이렇게 받아서 남는 게 있을까 싶지 않다.

 

 

 

전임지인 약목초 근처에 유명한 국수집이 있다. 연세가 70 가까이 되는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인데 국수 맛이 그만이다. 이 집에서 국수를 먹으려면 줄을 서야 한다. 맛도 맛이지만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싸다. 그릇 가득 담은 국수의 양은 그대로 할머니의 넘치는 정을 대변해준다.

이 집에서 국수를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좋은 음식 솜씨에 힘입어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바, 약간만 머리를 쓰면 ‘대박’이 날텐데 왜 이 할머니는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수값을 500원이나 1000원 정도 더 올리거나, 가격 올리기가 뭐 하면 양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다른 식당과 비슷한 양의 국수를 제공하고 대신 ‘곱배기’ 제도를 도입하여 추가 요금을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손님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겐 ‘수요와 공급의 법칙’ 따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냥 돈 욕심이 없으신 거다.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도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같은 할머니라도 인심이 전혀 다르다. 국수집이든 비빔밥집이든 식사 도중에 김치라도 좀 더 달라고 부탁할 것 같으면 싸늘한 눈초리가 돌아온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할머니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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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이 자명한 상식처럼 통한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 덕분이라 한다. 그러나 약목 할머니를 보라. 이 분이 설정한 국수 가격에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는가? 이 분의 심성 속엔 자비심도 이기심도 없다. 그냥 할머니답게 살아가실 뿐이다.

나는 이 분이 특별히 선량한 경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네 평범한 어머니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 분들에겐 4학년 사회교과서 경제파트에서 회자되는, “무한한 욕망” 따위를 엿볼 수 없다. 우리 어머니에게 명품 핸드백이 무슨 의미로 다가가겠는가? 당장 몇 억이 수중에 들어온다면 기뻐하시겠지만 한편으로 겁도 내실 것이다. 반대로, 가진 게 빈한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형편 어려운 이웃이 손을 내밀면 쉽게 거절 못하실 분들이다.

약목 할머니와 서울 할머니의 차이는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고 많이 묻고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적 동물로서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은 인간 고유의 본성이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특정 사회구성체 속에서 “학습된” 속성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공동체적 삶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다. 관계적 삶에선 ‘나’ 이전에 ‘우리’가 먼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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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디언 추장 씨팅불은 백인과의 협상 이후 백인세계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래서 흥행업자 윌리엄 코디는 씨팅불을 ‘와일드 웨스트 쇼’에 출연시키려고 했고 노추장은 인디언의 입장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수락했다. 씨팅불은 어딜 가나 졸졸 따라다니는 백인 아이들에게 자기가 번 돈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백인들이 어째서 가난한 동족들을 방치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백인들은 뭐든 잘 만들어낸다. 그러나 나눌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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