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교사에게

삶과 교육

리틀윙 2014. 11. 24. 17:37

 

 

 

 

2014 브라질 월드컵, 전 세계인들이 축제를 즐길 때 그늘진 곳에서 고통 받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삶과 교육그리고 진보를 생각해봅니다.

 

 

 

 

 

올해 개정된 4학년 수학 교과서 맨 첫 단원 첫 페이지가 사진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단원 제목은 큰 수이고 차시 목표는 만을 알 수 있어요입니다. 그런데 도입단계에서 생각열기로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보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책 한 권을 출판하는 데 나무는 얼마나 필요할까?” 하는 문장이 굵은 글씨로 쓰여 교사와 학생의 눈길을 끕니다. 수업목표를 떠나 이 물음 자체가 비상한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고 어떤 의미 있는 인식론적 성찰을 요청하는 것으로 나는 봤습니다. 해서, 이 날 수업은 수학에서 철학으로 도약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초등교육은 대부분의 수업이 담임교사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년 초의 학급경영이 한 해 교육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교과서의 생각열기에 담긴 성찰적 요소는 나의 교육철학 근간에 닿아 있기 때문에 40분 수업 내내 이 이야기를 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이런 수업이야말로 융합교육과정의 취지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삶과 배움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용적 차원에서도 수학 문제 잘 푸는 아이보다 환경보호 의식을 지닌 아이를 길러내는 게 훨씬 이롭습니다. 바람직하기로는 이 둘을 긴밀히 연결 짓는 것이겠죠. 이를테면, 200장짜리 책 100권을 만들 때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니 우리나라 전체 4학년 학생들이 쓰는 이 수학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선 몇 그루의 나무가 잘렸겠는가를 계산하는 것은 다음 차시에 배울 더 큰 수에 대한 개념을 익히는 데 유용할 겁니다. 아울러, 교과서에 적혀 있는 환경 보호를 위해 재생 종이의 사용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가르침으로 결말을 맺으면 좋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인드를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교사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를테면 교실에 폐휴지를 따로 모으는 재활용통을 비치할 일입니다. 다른 어느 공간보다 학교라는 곳에서는 매일 수많은 종이류가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A4용지와 같은 양질의 폐지는 재활용할 경우 매우 요긴하게 쓰이는 자원인데 교사가 아이들 보는 데서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면, 환경보호니 자원재활용이니 하는 교육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제가 늘 강조하듯, 교사의 실천 양식이 가장 강력한 교육과정입니다. 교사의 삶과 가르침이 일관되어야지만, 학생도 교사에게 배운 대로 삶에서 실천할 겁니다.

 

몇 해 전 Y초에서 같이 근무한 한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교장선생님은 근검절약 정신이 아주 철저하신 분이셨습니다. 얼마나 철저한가 하면, 아무도 없는 교실에 전깃불 끄기를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문 인쇄할 때는 반드시 양면 인쇄를 하게 했습니다. 뒷면이 백지로 되어 있는 공문을 들고 오면 결재를 해주지 않으셔서, 선생님들은 집에서 쓰던 이면지를 학교에 들고 와 재활용하여 결재를 맡곤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교장선생님의 휘하에 있는 교사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 것인지 쉽게 짐작하실 겁니다.

종이 한 장에 벌벌 떠는 지나친 근검절약 정신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 분의 그러한 내핍 정신이 사리사욕으로 연결되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 교장선생님께서 돈 관계가 깨끗한 분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으며, 특히 아이들 위해 써야 할 돈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셨습니다. 수업 종 치고도 교실로 빨리 들어가지 않고 학년연구실에서 잡담 나누기에 바쁜 교사들에겐 눈을 흘기시던 분이,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이 인사를 건네면 활짝 웃는 얼굴로 그래~ 반갑다. 니는 몇 학년이고?” 라며 화답하시던 교장선생님은 그 연세의 다른 교장들에 비해 정말 괜찮은 분이셨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한 때 관리자들을 힘들게 하는 강성적인 전교조 교사로 지역에서 소문이 나 있을 터였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이 교장선생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내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 돈에 눈독 들이지 않는 교장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이 분을 통해 나는 관리자가 교사들에게 깐깐하게 대하면서도 아이들에겐 자상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 자원 재활용이나 전기 절약에 대해 깐깐하게 단속하는 관리자는 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자기규율 의지인데, 안타깝게도 진보를 외치는 분들 가운데도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일상적 실천을 잘 하지 않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됩니다. 혼자 있는 교실에 에어컨 한껏 틀면서 청도와 밀양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입니다. 우리 교사들이 전기절약에 모범을 보이고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 한다면 핵발전소 하나 덜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명(문화)’야만의 어원을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문화라는 뜻의 영단어 ‘culture’‘cultivate(경작하다)’에서 유래합니다. 반대로 야만(savage)의 어원은 을 의미하는 라틴어 ‘silva’에서 생겨났습니다. 태초에 유럽의 자연환경은 오늘날의 것과 아주 달랐습니다. 빽빽한 침엽수림이 지금의 아마존 정글만큼이나 울창한 숲을 이루었는데, 그 속에서 원시유럽인들은 맹수의 밥이 되기 쉬웠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내어야(cultivate) 했습니다. 문명인들은 자신들과는 반대로 인위적으로 숲(silva)을 없애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부류를 야만인(savage)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 곳곳의 오지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야만인들이 있습니다. 그 수가 적지도 않아 아마존에서만 10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명인들의 욕심으로 이들 야만인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목장을 짓기 위해 아마존의 나무가 잘리고 숲이 불태워지고 있습니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의 원시림이 파괴되는 데 우리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학교에서 잡다한 명목의 페이퍼워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종이가 낭비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수학교과서에 적혀 있듯이, A4용지 1만장 만드는데 30년생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집니다.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교육실적물이라는 괴물이 사라지면 아마존의 밀림이 덜 파괴될 겁니다.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자원재활용을 위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원시림에서 자연과 더불어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마존 원주민의 평화로운 삶을 보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는 그리 복잡한 관념체계가 아니라 상식 그 자체여야 합니다. 전교조 교사들이 잘 쓰는 말로, 진보는 실천입니다!

 

학교에서 (나보다)젊은 선생님들이 빈 교실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간 모습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불편한 마음이 더해지는 것은 내가 그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끌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입장입니다. 환경을 지키는 것보다 관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적 교장선생님들이 직원협의회 때 빈 교실 소등문제를 수시로 언급할 때마다 그게 그렇게 듣기 싫은 잔소리로 다가오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덧 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으니 나이 드는 게 나쁘진 않은가 봅니다.

Y초에서 나랑 딱 1년을 근무하고서 정년퇴임을 하셨던 그 교장선생님,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다리가 불편해 늘 지팡이에 의존해 여름날 약간만 걸어도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시던 분, 그러면서도 선생들 수업 똑바로 하는지 관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계단을 오르내리시던 그 분, 오늘따라 그 교장선생님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