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소유와 사랑

리틀윙 2014. 9. 3. 08:01

 

 

 

아침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닥에 벌레 한 마리가 나뒹굴어져 있다. ‘벌레’라는 저급한 용어보다는 ‘곤충’이라 일컬어 마땅한 품위 있는 생명체다.

어제 학교 근처에 사는 한 아이가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를 한 마리씩 포획해서 온 교실이 흥분에 들떴다. 과학실에서 수조를 가져와 톱밥을 깔고 또 적절한 먹이도 공급해주었다. 그물 위에 있는 비닐 막대가 스포이트인데 아이들이 그걸로 먹이를 준다. 곤충들이 먹이를 잘 받아먹는 걸 보고 기뻐하곤 했다. 무슨 애완견 다루듯 하는 것이다.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가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이들에게 최선의 주거환경은 무엇인지, 내게 의존하지 않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탐구를 해가고 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실천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가 마뜩치 않았다.
예전에 우리 집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장수하늘소를 구입하여 아파트에서 기르는데, 낮에는 미동도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이 녀석이 밤만 되면 푸드덕 푸드덕 힘찬 날개 짓으로 우리가 설치해둔 ‘감옥’을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던 기억이 있다. 조용한 밤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가 예민한 내 잠을 깨울 정도로 비상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너무 슬픈 소리였다. 좁은 공간을 벗어나 녹음이 우거진 숲 속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지금 저 녀석도 밤새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울타리를 탈출했건만 운이 없게도 등이 바닥에 닿는 바람에 빠떼루 자세를 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데...  아이들이 올 때까지 저런 상태로 있게 놔둘 생각이다.

 

그러나 신기한 생명체에 대해 우리 반 아이들이 품는 지적 호기심과 자연에 대한 신비감을 꺾어 버릴 수는 없다. 최종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어야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어린 시절 매미나 잠자리를 손에 쥐었을 때 그 흥분되는 기분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 특별한 기분은 어떤 정복감 같은 것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었을 때의 짜릿한 포만감에 가깝다.

다만 나는 그 연약한 생명체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안내해주고 싶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다.
최선의 답은 길을 가보고 부대끼며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소유와 사랑을 구별하는 이성적 역량은 어른들도 갖추기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좋은 학습경험이 될 것이다.


예전에 어느 깨인 초등 선배 교사가 아이들에게 숙제로 “강가에 가서 예쁜 돌 몇 개 주워 오기”를 낸 다음 며칠 뒤 “다시 그 돌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기”를 숙제로 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깨달음은 면벽 수도를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삶의 생생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엇이 바람직한 길인지는 아이들 스스로 길을 가보게 하고 깨닫게 해야 한다.

아무튼, 저 불쌍한 녀석들이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마침 장마가 시작되고 하니 며칠간 인간과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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