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문화교실

리틀윙 2014. 6. 16. 17:08

 

 

 

 

우리 반 아침활동 일정표입니다.

노래교실은 음악교과서 외의 노래(Rock음악을 포함해서???)를 배우는 것이고 문화교실은 명화를 감상하는 시간입니다.

문화교실이란 이름은 우리 386세대의 아련한 추억에서 따온 겁니다. 영화 [친구]에도 나오지만 비디오도 잘 없었던 그 시절엔 학교에서 단체로 극장 구경을 가곤 했는데, 이 교육프로그램을 문화교실이라 일컬었죠.

 

주중 5일간의 프로그램 가운데 야생마 같은 다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깥활동이고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문화교실입니다.

 

학교에서 선생의 손에 의해 아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엄연한 교육과정입니다. 제가 계획한 문화교실은 정규수업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활동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영화만 틀어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중간 중간에 화면을 정지시켜 놓고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인물의 심경 따위에 대한 주석을 달아줍니다. 교사의 이러한 설명 없이 아이들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쿵푸팬더]라면 몰라도 교사가 교육적인 안목에 입각하여 투입한 교육자료로서의 영화는 당연히 교사의 비평이 곁들여져야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훌륭한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런닝타임이 3시간18분에 이르는 대작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내심으론 감당하기 힘듭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유혈이 낭자한 장면도 몇 군데 나오기 때문에 교사가 조절을 해가야 합니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봐도 됩니다. 고전영화가 좋은 점은 자극적인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것)

 

저도 이 영화를 아주 오랜 만에 다시 봤습니다. 다시 봐도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많이 나와서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원래 감성이 아주 예민한 편인데, 나이를 먹으면 여성호르몬이 더 많아진다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은 조금만 감동을 받아도 이물질이 눈에 고이곤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쪽팔리기도하지만, 이렇게 망가지는 것도 하나의 의미있는 교육행위라 생각합니다. 교사의 몸뚱아리가 교육과정입니다. 교사의 삶 자체가,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장 위력적인 교육과정입니다.

 

마침내 지난 () 이 영화 감상을 끝냈습니다. 후속 조치(?)로 주말을 맞아 감상문을 써오라고 했더니 기대이상으로 아이들이 꽤 내용 있는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감상문이라 함은 느낀 바를 글로 쓰는 것인데, 느낌의 원천인 원작 자체가 아이들에게 울림을 많이 주었던 모양입니다. 

 

 

 

몇몇 아이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다부 아이들이 흥미로운 것은, 맞춤법은 엉망인데 자기감정을 아이다운 필체로 진솔하게 잘 표현해내는 점입니다. 오늘 글짓기 과제 결과물은 매우 흡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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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감상문)

- 중략 -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군들과 로마군대의 마지막 싸움이 버러졌다(벌어졌다). 치열한 전투 끝에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군들은 패배를 하게 된다. 이 패배로 인해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한 반란군들이 포로로 잡이게(잡히게) 된다. 있때(이때) 로마군사들을 지휘하는 사람(크라수스)이 말했다. “너희들을 살려주겠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스파르타쿠스가 누구인지 지목해라.” 그러자 2,3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1, 2, 3...() 전부다 일어나 “I'm Spartacus!"라고 외친다.

나는 이 장면이 정말로 감동적이고 스파르타쿠스의 부하들의 의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총사령관은 스파르타쿠스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갖지 못하는 부하들의 의리를 스파트타쿠스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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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밑줄 친 부분은 초등학교 4학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죠. 하지만, 저 어려운 말을 아이가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비평이 큰 울림으로 다가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교사가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슴과 머리에 담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저 흉내내기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이 아이는 분명히 저의 말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했습니다. 저의 이성과 감성을 아이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작동하여 받아들였습니다.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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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FKCmyiljKo0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한 장면이 유튜브에 있네요.

스파르타쿠스 반란군을 진압한 로마의 장군은 마르쿠스 크라수스인데 이 사람은 줄리어스 시저, 폼페이우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이끈 인물입니다. 

이 장면에서 크라수스는 포로들을 향해 "누가 스파르타쿠스인지 말해주면 모두 살려주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십자가 처형을 시킨다"고 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망설임 끝에 자수하러 일어서는 순간 부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I'm Spartacus!"라고 커밍아웃 합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할지언정 우리의 훌륭한 대장과 함께 죽겠다는 거죠.

스파르타쿠스보다 50년 정도 늦게 오신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당시 로마 지배자들이 가장 잔인한 형벌로 취급했던 것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목 말라 하시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이 형벌은 신체적 고통보다 갈증으로 인한 고통이 더 견디기 어렵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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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아이는 제가 전혀 언급하지 않은, 다시 말해 제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비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정말 반항심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노예였을 때도 난 짐승이 아니야!”라고 반항하고 마지막에 반란이 끝나고 로마장군이 앞에서 물어 봤는데도 반항스러운 눈빛으로 보면서 대답을 하지 않아서 한 대 맞았다.

 

 

이 글을 쓴 이는 여학생이지만 남자아이보다 운동을 더 잘 하는가 하면 기질도 있어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할 자질이 엿보이는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관점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반항적인 기질과 품성에 포커스를 두고 감상을 한 겁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반의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에 스파르타쿠스가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아이들이 [로마 이야기]라는 학급문고에 관심을 가지며 요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까지 흥미있게 읽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의 성장에서 매개(mediation)가 중요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열중할 만한 가치있는 매개물을 제공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사는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이 학교의 학부모님들은 수준이 있어서 왜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저런 걸 아이들에게 가르치냐?”라는 민원을 신경 쓰지 않고 제 소신껏 교육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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