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내가 다부초로 향하는 이유

리틀윙 2014. 2. 1. 19:40

- 작년 이맘 때 쓴 글 -

 

5년간 머문 약목을 떠난다. 다음 정착지는 다부다.
다부초는 교장/교감의 무덤으로 불리는 험악한(?) 곳이다. 교사들도 대부분 1년 만에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어떤 교사들에게 이곳은 가능성과 희망의 학교다. 전교조교사라 불리는 선생들이다.

다부초의 유명세는 학부모 집단의 특별한 성향에 기인한다. 교장/교감이나 기존 낡은 제도권 교육체제에 익숙해 있는 교사들에게 이 학부모들은 무례하고 별나기만 한 ‘훼방꾼’이지만,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추구하는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일궈내려는 혁신적인 교사들에겐 깨어있는 ‘동반자’이자 든든한 지지자들이다.

학부모님들과 기존에 진지를 지키고 있던 동지들은 나의 전입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나 또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내가 이 학교에 얼마만큼의 힘이 될지 모르겠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마음을 잘 맞추면 ‘한국의 섬머힐’을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반대로 교장/교감선생님들과는 물론 학부모들과 심지어 동지적 관계에 있는 교사들과도 불편한 동거로 일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고 극복하기 힘든 법이다. 지금 봐서는 내가 이걸 헤쳐 나갈 자신이 있다만, 삶은 항상 걸어 가봐야 안다. 그러나 역경과 보람은 항상 비례하는 법이니... 섣부른 낙관도 섣부른 비관도 지금은 생각할 바 아니다. 그저 다부초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 그리고 유능한 교사가 되는 것만 신경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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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피하는 학교를, 거주지와도 멀어 출퇴근도 힘든 학교를 왜 가려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개인적 포부도 없지 않지만, 교사라는 존재론적 이유로도 이 학교는 내게 딱 맞는 곳이라 생각한다.

10여 년 전 어떤 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했다. 지금처럼 2월에 아이들을 5학년으로 올려 보냈을 때의 일이다. 우리 반 반장 엄마가 인사를 하러 와서 하는 말이, “우리 애가 선생님을 만나고서 학업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지적으로나 행동 면에서 불쑥 성장한 것 같다.” 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호하기도 하고 또 ‘지적으로 성장했는데 학업 능력이 떨어졌다는 게 앞뒤 맞지 않다’는 생각에 별로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있는 학교에 와...서 4학년 담임을 하면서 그 학부모의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실감한다.
현 학교의 학부모들은 ‘지적 성장’이니 ‘성숙’이니 하는 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시험 점수가 얼마나 올랐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부모들이 이러니 아이들도 그렇다. 똑같은 4학년인데, 예전에는 ‘인기 짱’이라며 아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던 내 특별한 학급경영 프로그램들 잘 먹혀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 때의 아이들과 달리 지금 이곳의 아이들은 학원공부로 심신이 지쳐 있다. 문제집 풀이만 잘 할 뿐 깊이 있는 사고를 요하는 활동에는 집중을 안 한다. 그러니 나의 ‘철학 강의(물론 초딩용)’가 신통치 않다.

둘째, 요즘 학교교육과정은 무슨 쓸데없는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교과 외 활동 시간을 지나치게 세분화하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담임교사가 창의적으로 운신할 여백이 매우 협소하다. 그러니까 창의적 체험활동이 반(反)창의적인 강제성으로 담임교사의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불량 교육과정은 과감하게 무시해야 신명나는 교수활동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혁신적인 학교에서만 가능하다.

셋째, 방금 말했듯이, 오직 시험 점수에만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의 바람을 무시할 수는 없는 형편이어서, 성적 올리기에도 신경 쓰면서 내가 기존에 실천했던 ‘나만의 특별 교육과정 – 전문적인 용어로 <교실교육과정>’을 돌리니까 결과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실패작이 돼버리고 마는 것을 목도하고선 심각한 자괴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요즘 교과서는 ‘강남스타일’로 어렵게 구성되어 시골 아이들에겐 진도 나가기조차 버겁다. 그러니 <사회> 시간에 사회학이나 철학으로 접근하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다.

이명박 이후, 앞으로는 ‘창의 인성’을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오로지 성적으로 학교를 평가하는 이 정신분열 교육시스템 속에서 초등학교현장도 ‘묻지마 교육’으로 오염되고 있다. 문제는 내가 늘 강변하듯이, 성적위주의 교육은 개인은 물론 국가경쟁력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자살행위일 뿐이다. 이 정신분열 교육체제에서, 최소한 초등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선생의 가치는 아이들을 얼마나 인간답게 성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전부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선생은 아이들에게 깊이 있는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삶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않다. 이론적으로도 잠재적 교육과정이 표면적 교육과정보다 더 위력적이다 하지 않던가. 가장 강력한 교육은 ‘학급경영’이다. 때문에 교육은 주로 ‘철학’의 문제이다. 교사의 자질은 철학적 자질과 지적 역량이 전부이다.

내게 이 자질이 준비되어 있다면, 내가 있을 곳은 이 학교가 최선이다. 실로 이런 학부모들이라면, 내가 늙어도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을 신명나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내가 다부초로 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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