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일과 놀이, 프레네

리틀윙 2013. 1. 28. 08:37

<글의 배경>

프랑스 교육철학자 프레네(Freinet, C.)의 저서 [Education through Work]의 일부분입니다.

책 제목에서 보듯이,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일을 통한 교육'으로 요약됩니다. Work를 '노동'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에게 포커스를 두는 프레네 교육철학의 문맥상 '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신성하다거나 거창한 의미의 '노동'이 아니라 그냥 부담없이 행하는 '일'이고 교육학에서 말하는 '노작활동'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 책에서 프레네는 놀이와 일이 따로 있지 아니 하며, 일이 곧 놀이이고 놀이가 곧 일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 이게 '변증법적 관점'입니다.

 

(일=놀이, 놀이=일), 이 등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의 힘들기(강도)나 어려움(난이도)이 적절해야 합니다. 즉, 어린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어야겠죠. 그러나 어린이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프레네의 설명 방식이 흥미로운 것은, 아이들 특유의 성취의욕이나 도전심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상당 수준의 일을 감당해내면서 뿌듯해 하는 아이를 보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사나이'로 성장해간다는 것을, 다름 아닌 자신의 체험을 서술하면서 교육학적 의미를 부여해 갑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골에서 자란 프레네는 시골사람들과 도시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정말 천재적인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Two different views of the pace of life.

삶의 호흡에 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양촌리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강남스타일이라는 겁니다.

 

프레네가 말하는 '삶의 호흡'은 곧 '일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일을 대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도시 사람들에게 일은,

힘든 고역이기 때문에 일을 즐길 줄 모릅니다. 그저 빨리 해치워버리고 쉬는 것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일을 최대한 짧은 시간에 끝내기 위해 일의 강도를 높게 그리고 호흡을 빠르게 가져갑니다.

도시의 일(공장일) 자체가 일 하는 사람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단순노동입니다. 본질적으로 도시일은,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나오는 그런 일이겠죠.

반면 농촌의 일은 너무나 여유롭고 또 흥미진진합니다. 기계를 만지는 일과 자연 속에서 하는 일은 다르겠죠. 그리고 일 하는 사람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리듬과 페이스에 맞춰 일의 호흡을 가져가면, 일은 고역이 아니라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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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당신은 내가 기계처럼 또는 기계의 노예처럼 숨 돌릴 틈도 없이 열심히 풀을 베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는가? 일에 대해 아무런 이해심이나 철학이 없는 도시 사람들이나 그런 생각을 품을 것이다. 그들은 일을 보다 빨리 마치기 위해 쉬지 않고 자르고 톱질하고 풀을 깎기 시작한다. 그들 경험으로는 일이 죽도록 지겹기 때문에 마치 먹기 싫은 약을 눈 찔끔 감고서 단숨에 삼켜버리는 것처럼 가능한 한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잠깐 동안만 용기를 내자. 물론 이러면 일이 훨씬 고되긴 하지만 일 마치자마자 집에 가서 다른 것에 몰두할 수 있다."

다른 것을 하기! 일에서 신경 끄기! 재미 보기! 이러한 것들이 정확히 우리 문명의 모습이다. 일을 삶에서 분리시키고서 수고를 형벌 내지 달갑지 않은 의무로 생각한다. 그 결과 우리는 노고를 줄이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 중략 -

그렇다. 도시인들은 일 끝난 뒤에 기다려; 이야기 좀 하자...”라고 말하곤 한다. 농부들이라면 당신을 들로 데려가서 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삶의 호흡(pace)에 관한 상이한 두 관점이 있다.

우리의 경우, 어떠한 기계의 노예도 아니다. 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삶을 살고 일을 한다. 자연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곳의 일은 즉각적으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성공이나 실패는 실수로부터 얻어지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풀은 서서히 자라고 밀은 다 익은 것처럼 보여 베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그것이 완전히 여물기까지는 몇 주가 더 걸린다.

어느 날 들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고개 한 번 들지도 않고 필사적으로 괭이질을 해댄다. 적당한 속도로 당나귀를 다루는 대신 채찍으로 가혹하게 채근하여 급히 움직이도록 한다. 또는 이쪽 고랑에서 저쪽 고랑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소를 몰고 가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일을 처음 해보는 사람이구만, 도시에서 기계 다루듯이 농촌 일을 터득하려 하다니... 조금 지나면 자기에게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럼, 그 이유를 꼭 알아야만 해!

우리 농부들이 어떤 일꾼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들이 당나귀 뒤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라. 짬을 내어 곡식이 무르익어 가는 과정을 관찰하며 일이 진척되어 가는 것을 꼼꼼히 살펴보는 여유를 보라. 우리가 괭이질을 할 때는 우리 숨길과 조화를 이루며 도구를 다룬다. 가끔씩 우리는 나무 아래에 앉거나 고개를 들어 멋진 하늘을 감탄하거나 혹은 구름을 보며 비가 올 것인지를 계산해본다.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한 꽃을 대할 때 마치 그것이 방금 불현 듯 우리 앞에 나타난 양 그 꽃에 눈길을 멈춘다. 혹은 우리는 지빠귀 소리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 그리고 산비둘기의 날개 짓 소리를 듣고 황급히 몸을 피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일 하러 간다. 하지만 그 같은 호흡으로 우리는 12~15 시간 동안 계속 일 할 수 있다. 반면에 조급한 노동자는 반나절도 못 되어 지치고 만다.

                                                                                                                      (프레네 19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