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눈 오는 날 –1

리틀윙 2012. 12. 28. 16:09

  종업식 날이기도 하고 눈이 많이 와서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일찍 퇴근했다. 버스 타고 집 근처에 내려 아파트에 들어서니 웬 아주머니가 제설도구를 들고 눈을 치우고 계신다. 오지랖이 넓어 힘든 일 하는 사람 곁을 그냥 잘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잠깐 거들어주겠다고 도구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어쩐지 순순히 건네는 모습이 약간 이상하다 싶었는데 근방에서 일하는 소장님 말씀으론 그 분도 아파트 주민이란다. 여자 분이 한 두 시간 동안 계속 이 일을 하셨다고 한다. 세상엔 좋은 분들이 많다. 아마 박근혜 찍으셨겠지만 그래도 착한 이웃이 있다는 게 좋은 일이다.

  나도 착한 이웃 흉내 내려고 한 사오십 분 동안 열심히 눈 치웠다. 나의 수고로 이웃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길을 터고 나니 흐뭇하다. 낯선 주민들은 나의 이런 모습에 저 사람 시의원 출마할라 카나?’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싶다. 나 시의원 출마할 마음 추호도 없다고, 나는 전교조교사라고, 전교조 교사는 교단을 분열시키는 불순세력이 아니라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궂은 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맨날 머리만 쓰다가 오랜 만에 몸 써 봤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지만, 나는 그 정도로 수양이 된 사람은 아니다. 전교조 교사가 이웃을 위해 이렇게 몸 쓸 때 좀 많은 주민들이 지나가주면 좋으련만 시간이 어중간해서인지 인적이 뜸하다. 나는 여가 선용 차원에서 착한 일 했답시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지만, 이런 힘든 일을 매일 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 세상엔 머리 쓰는 사람과 몸 쓰는 사람 그리고 머리 굴리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가 있을 것 같다. 머리 쓰는 사람 때문에 세상이 발전하지만, 몸 쓰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 굴리는 사람은 세상을 뒤로 돌아가게 한다.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머리 쓰는 사람과 몸 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머리 쓰기와 몸 쓰기 그리고 마음 쓰기를 병행하는 것이다. 농부도 공장 근로자도 오전에 일 하고 오후엔 낚시를 즐기고 저녁엔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하거나 시를 짓고 문학작품에 대해 토론을 하고 하는 사회, 이게 내가 꿈꾸는 이상사회다.

가능하겠냐고?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몸 쓰는 사람들이 머리 굴리는 인간들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안 뽑아 주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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