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프레이리

페다고지 -5) 프레이리와 마르크스

리틀윙 2011. 7. 22. 10:28

 

이 대목에서 잠깐 프레이리와 마르크스를 비교함으로써 프레이리 사상의 취약점에 대해 짚어보기로 합시다. 프레이리의 억압이나 비인간화라는 추상적인 용어에 조응할 만한 마르크스의 개념이 착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인간사회에서 착취가 생겨난 구체적인 이유와 시기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하지만 프레이리는 그저 피억압자의 인간성이 왜곡되니까 분연히 일어나(그것도 조만간’) 투쟁하게 된다고 합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 역사에서 착취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시공산사회를 지나 계급사회가 도래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인데, 프레이리는 억압과 비인간화의 기원에 대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착취가 없었던 까닭에 억압이나 비인간화도 있지 않은 시기, 즉 원시공산사회의 존재는 근대 이후 수많은 인류학적 보고서를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우리가 <아마존의 눈물>에서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존 레넌의 노랫말처럼 모든 것을 나눠 가지는 sharing all the world” 원시공동체사회가 끔찍한 비인간화를 수반하는 계급사회로 옮아가는 것은, 프레이리의 관점에선 비극’ - 어쩌면 이것이 상식적인 관점이겠으나 - 이지만 마르크스의 입장에선 발전입니다. 헤겔 식으로 말하면, 변증법적으로 지양(Aufheben, negation, 부정 - ‘지양에 대해선 나중에 언급합니다)된 거죠. 그런데 이 지양을 촉발하는 에 대해 프레이리는 심리적이고 윤리적인 동인(부당한 체제에 대한 분노 따위)을 언급하지만 마르크스는 생산력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논리체계로 설명합니다.

기실 비인간화의 실체는 윤리적이기보다는 경제적인 것입니다. SK 최철원 회장에게서 빠따 맞은 노동자가 물리적 힘이 없어서 맞았겠습니까? 경제적 힘이 없어서 즉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맞았던 것입니다. 최철원 회장은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 폭력을 행사했을까요? 이 또한 그가 악한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엄청난 재력 앞에서 모두가 알아서 기는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할 때, 그 권력(power)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력을 말합니다. 선의 본질은 공동선이며 정의는 다름 아닌 분배의 정의입니다. 분배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인간화도 피할 수 없습니다. 프레이리가 말하듯이 왜곡된 체제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모두를 비인간화시키는데, SK 회장의 경우에서 보듯 한 쪽은 못 가져서 비인간화되고 다른 한 쪽은 너무 많이 가져서 비인간화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패한(프레이리의 용법으로는 인간성이 왜곡된’) 절대권력자를 안 만들려면 경제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처럼 사회 현상에 대해 접근함에 있어 개인의 인간적 자질보다는 그가 발 딛고 있는 물적 조건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관점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데, 프레이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그런지 유물론적 시각에 대해서는 거의 맹목적인 거부감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해방이론 - <페다고지>가 그런 책입니다 - 에서는 혁명의 윤리학만 있을 뿐 혁명의 정치경제학이 전무합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입장에선 경제학이 배제된 정치학이나 윤리학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들에서 인간해방에 관한 프레이리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에 비해 초라할 따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리의 빛나는 점과 탁월한 점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다루지 않았던 교육 문제, 즉 교육의 모순과 해방에 대한 진보적인 관점을 피력한 보기 드문 사상가라는 점과 무엇보다 그 사상을 치열한 실천을 통해 일궈낸 점입니다. 제 학위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비판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경직된 관점으로 접근해 그의 사상을 폄하했다는 반성이 듭니다. 모든 사물은 단점 바로 이면에 그 단점과 조응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윤리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프레이리의 해방이론(혁명의 윤리학)80년대의 낡은 맑스-레닌주의적 운동론의 한계에 대한 대안적 담론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풍부히 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운동판이 이걸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파울루 프레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 Freire for the Classroom  (0) 2014.12.14
프레이리의 저작물  (0) 2012.02.21
페다고지 4) 비인간화  (0) 2011.07.21
인간화의 길  (0) 2011.07.18
인간중심주의  (0) 201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