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프레이리

인간중심주의

리틀윙 2011. 7. 16. 12:26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교육명저 <페다고지>를 천천히 음미해보기로 합시다. 미리 고백하건대 제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만한 지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아니합니다. 저 또한 이 책을 다시 꼼꼼히 읽으며 새로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일에 착수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제가 인용하는 원문은 한글판으로 남경태 역(2002, 그린비)2003년판 영어판 <Pedagogy of the Oppressed>입니다.

 

1장 첫 문장부터 막힙니다.

 

가치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화의 문제는 늘 인류의 핵심적인 문제였지만, 지금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53-1 ; 43-1 한글판 53쪽 첫째 문단>

 

(미리 말씀 드리지만, 1장의 한 핵심 키워드가 인간화(humanization)’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술합니다.)

 

번역이 약간 불만스럽네요. - <페다고지>가 여러 사람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어 왔는데, 개인적으로 남경태의 것이 가장 신뢰가 갑니다. 역자의 역량을 폄하할 생각을 전혀 없다는 사족을 남깁니다. -

핵심적인 central’중심또는 주된으로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inescapable’회피할 수 없는으로 옮기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독자들이 문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문장은 현재완료형 구문으로서 인간화의 문제가 늘 인류에게 중심 문제로 여겨져 왔지만, 근자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는 뜻로 풀이됩니다. 그러니까 최근까지는 비인간적인 만행이 여기저기에서 버젓이 벌어져도 모르는 채 하며 은근슬쩍 회피해 왔는데 지금은 이 문제가 분명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각주를 통해 부연하고 있는데 이 각주가 또 난해하네요. 프레이리 선생시작부터 독자들 기죽이고 있네요.^^ 하지만 프레이리의 이러한 문체에 빨리 적응을 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저항운동, 특히 젊은 세대의 저항운동은......(53, 각주)

 

앞서 제가 맨 처음에 쓴 글에서 <페다고지>가 쓰여진 때가 프레이리가 첫 망명지 칠레에 머무를 때라 했습니다. 정확히 1968년에 완성해서 1970년 영문판으로 출간되어 일약 세계적인 학자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각주 첫 문장에서 젊은 세대의 저항운동에서 젊은 세대라 함은 ‘1968년 세대를 말하는 겁니다. ‘68 세대가 뭔지에 대해 맑시스트 학자 크리스 하먼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해 봅니다.

 

때때로 한 세대 전체를 마법에 빠뜨리는 특별한 해가 있다. 이런 시기는 나중에 그 해를 단순히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수많은 상념이 떠오르게 한다. 1968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크리스 하먼이 지은 [세계를 뒤흔든 1968, 책갈피, 2004]에서 발췌했는데, 이 책은 1960년대말 유럽 청년의 저항사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학생운동은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서 시작하여 독일과 이탈리아 등의 유럽은 물론 태평양 너머 미국에까지 전해졌는데, 프레이리의 책을 읽으니 당시 라틴 아메리카 특히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던 칠레에서도 한창 일고 있었네요. 68세대 운동은 미국에서 히피즘으로 청년문화사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며 거듭나는데 신중현과 한대수 그리고 세시봉으로 대표되는 한국 대중가요도 이 영향을 받습니다. 흥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 제 블로그의 글을 링크해둡니다. http://blog.daum.net/liveas1/6498584

 

각주의 맨 마지막 문장이 머리가 아프긴 해도 중요한 언표를 담고 있기에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문장 속에 프레이리 사상의 중심축과 정체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 이 모든 운동은 인간중심적이 아니라 인류학적인 우리 시대의 풍조를 반영한다.

 

이 난해한 각주 글 전체에서 마지막 이 문장에 방점이 놓여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중심적 anthropocentric’이란 개념과 그것이 인류학적 anthropological’이란 것과 어떤 의미 차이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프레이리 사상의 근간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저자의 입장이 이 두 개념 가운데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며 따라서 뜻을 정반대로 해석할 소지마저 있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주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중심되고 지엄한 존재라고 보는 사상체계입니다. 인간중심주의는 기독교 신학에서 유래했는데 창세기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물을 지배하도록(dominion) 했다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빚어 만드셨다는 두 구절을 근거로 삼습니다. 이 두 구절 가운데 어느 것에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인간중심주의의 스펙트럼이 보수와 진보의 양극으로 나뉩니다. 지고의 존재(supremacy)로서 인간의 만물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개신교)에게서 보편화된 경향성인데, 이는 결국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과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와 개발로 연결되어 오늘날 동물애호가들과 환경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많은 성서학자들 특히 로마가톨릭주의자들을 비롯한 비개신교 신자들은 만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한 발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이들은 인류가 지구와 이 세계에 사는 생명체들을 배려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신이 인간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듯이 인간 또한 다른 생명체와 지구 생태계를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주인공 프레이리의 사상이 두 입장 가운데 이것과 관계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는 프레이리 사상, 특히 초기 사상의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격주의(personalism)과 연결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자 이젠 최소한 각주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인간중심적인류학적인가운데 프레이리가 선호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선 파악이 되었죠. 그러니까 프레이리는 이 문장을 통해 요즘 청년들이 저항운동을 가열차게 잘 펼쳐나가는 것은 좋은데, ~ 인간중심적이 아닌 점은 조금 유감이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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