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프레이리

인간화의 길

리틀윙 2011. 7. 18. 23:31

  

인간화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존재론적 가능성만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기도 한 비인간화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한53-1-2, ☞ 한글판 53쪽 첫째문단 둘째문장)

   

이 문장도 쉽게 의미가 와 닿지 않을 겁니다. 원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쉽네요. 알아듣기 쉽게 번역문을 고쳐보겠습니다. “인간화에 대한 관심은 곧바로 비인간화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는데, 이(비인간화)는 존재론적 가능성인 동시에 역사적 현실이기도 하다.”

 

이 문장에서는 ‘존재론적’이란 말이 부담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존재론적 가능성’ 운운하는 것은 “비인간화라는 것이 우리의 머릿속에 개념으로 정립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생생한 현실로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화에 대한 관심이 곧바로 비인간화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예컨대 우리가 ‘행복’이란 개념을 생각할 때 자연스레 ‘불행’이란 낱말을 떠올리는 이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존재론적 ontological’이란 표현은 앞 문장의 ‘가치론적 axiological’과 댓구를 이루고 있어, 저자가 어떤 수사적 기교를 부리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현학적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감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두 문장을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은 프레이리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비인간화의 정도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인간화가 과연 가능성으로 존립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53-1-3)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지각할(perceive) 때 누구나 인간화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로 옮기면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원문에서 ‘존립’이란 표현이 없는데 이번에는 번역자가 또 현학적 허세를 부리네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생각하면, 인간화와 비인간화는 둘 다 자신의 미완성을 의식하고 있는 미완성의 인간을 위한 가능성이다.(53-1-4)

 

(incompletion은 ‘미완성’보다는 ‘불완전성’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 여기서 프레이리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존재론적 규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둘째 문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화와 비인간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생각될 성질의 것입니다. 즉, 인간화를 추구하는 것은 비인간화의 문제성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것과 짝을 이루는데 이 둘은 인간이란 존재의 불완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완전한 존재라면 비인간적인 무엇이 자행될 리가 없겠죠. 또한 인간화를 염원하고 추구하는 자체로 인간이 미완의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프레이리가 이 문장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강조점은 “인간의 가능성”에 놓여 있습니다. 즉,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인간’ 밖에 없다는 사실을 프레이리는 ‘가능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이러한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이 바로 앞의 글에서 논한 ‘인간중심주의’입니다.

 

그러나 인간화와 비인간화 모두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인간화만이 민중의 소명이다. (한54-1-1)

 

‘현실적인 대안’이란 말이 조금 어렵죠? 이 문장을 “그러나 인간화와 비인간화 모두 현실적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로 고쳐보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현실적인 real’이란 말은 실제의 삶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추상적인 도덕률로는 비인간화가 대안일 수 없죠. 아이들이 도덕 시험지에서 선택하는 삶과 실제의 실천적인 삶이 다르지 않습니까? “교문 앞에 휴지가 떨어져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주워서 휴지통에 버린다”라고 말하지 않는 학생 잘 없지만, 실제 삶에서 그렇게 하는 아이 또한 잘 없는 것이 ‘현실적인 real’ 것입니다.

인생은 주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대학교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등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모두 선택의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프레이리에 의하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크게 인간화의 길과 비인간화의 길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억압자는 물론 피억압 민중의 삶 또한 인간화와 비인간화 둘 다를 선택할 수 있는데 무릇 진정한 민중의 삶은 인간화의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화만이 민중의 소명”이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의 한 구절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발전의 주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프레이리의 억압자/피억압자 개념은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 계급과 일맥상통하며 그의 해방론은 마르크스의 해방론과 많은 부분 닮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둘 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모티프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이리와 마르크스의 연관성이나 헤겔 변증법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주 논의될 것입니다.

 

이 소명은 끊임없이 부정되면서도 바로 그 부정에 의해 긍정된다. (한54-1-2)

 

지배계급은 민중이 인간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그걸 방치했다가는 자신의 존립이 위태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수적으로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민중의 인간화를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될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말을 패러디하면 “억압하지 않으면 억압당하는” 겁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이러한 관계는 헤겔이 ‘생사를 건 투쟁’이라 표현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인간화’가 뭐길래 억압자가 그토록 부정하는 것일까요?

20여년 전 교사들에게 거주이동의 자유가 ‘부정’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카바레나 룸살롱으로 향하는 ‘이동의 자유’는 부정되지 않지만, 토요일 서울로 향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이동의 자유’는 철저히 부정되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토요일 오후에 퇴근도 안하시고 전교조에 소속되었을 법한 젊은 교사(그때 전교조 활동은 독립운동 하듯이 몰래 했죠)를 강제로 억류시킵니다. 숙직실에 붙들어 두고 대낮부터 술을 실컷 먹여 서울로 향하는 버스 시간을 놓치게 한다거나 아니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주치는 자기 학교 교사들을 붙잡는 것입니다.

도대체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그것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의 일본 앞잡이 순사를 방불케 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육관료들의 이러한 행태가 ‘비인간화’입니다. 반면,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을 외치는” 전교조 교사의 의지가 인간화인 것입니다. 물론 집회에 참가한다고 해서 인간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맹목적이고 관성적인 실천은 인간화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현재의 전교조 활동가들 가운데 이런 분들 많습니다. 그러나 전교조교사라는 자체로 부과되는 엄청난 고통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굳이 올곧은 스승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는 그 자체로 프레이리가 말하는 ‘인간화’의 전형이라 하겠습니다.

 

억압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피억압자가 인간화의 길을 향하는 것을 방해하는데, 방해하면 방해할수록 심리적 측면에서 반발심도 더욱 강해지며, 인식론적 측면에서도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혀주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인간화의 초기단계에서는 누구나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실천에 있어서도 멈칫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걸 저지하려 할 때, 앞의 경우를 보듯 그 방해책동이 대부분 치졸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의롭지 않다는 것쯤은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의롭지 않은 이들이 나의 길을 방해하려 하니 논리적으로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는 결론이 서게 되는 것이죠.

인간화의 소명은 끊임없이 부정되면서도 바로 그 부정에 의해 긍정된다! 적잖은 떨림을 주는 이 역설의 변증이 프레이리 철학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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