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프레이리

페다고지 4) 비인간화

리틀윙 2011. 7. 21. 13:13

비인간화는 인간성을 박탈당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인간성을 박탈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며, 보다 충실한 인간적 삶을 살고자 하는 소명의 왜곡이다. 이 왜곡은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만 역사적 소명은 아니다. (44-2-1)

 

지금부터는 영문판의 원문을 제 나름의 번역문으로 바로 적겠습니다. 역자의 번역문에서 유감스런 부분이 너무 많고 그게 뭐가 문제인지를 지적하는데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소모적이며 또 읽는 분들도 불편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비인간화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모두를 비인간화시킵니다. 비인간화의 기제 속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교실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물론 이지메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학생들이나 심지어 침묵을 지키는 학생들도 비인간화를 경험하며 영혼이 망가져갑니다.

소명이라는 낱말은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표현인데 영어로 vocation입니다. 라틴어 voc-‘voice’‘vocal'에서 보듯이 소리란 뜻입니다. 이 낱말은 서구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정신과 관계가 있는데, ‘소리신의 음성이란 뜻합니다. 그래서 소명이란 신의 명또는 신의 부르심으로 풀이되는 바, 프레이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이 신의 뜻이고 비인간화는 이러한 신의 섭리를 왜곡시키는 기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레이리가 즐겨 쓰는 'vocation'이란 단어를 통해 그의 사상의 기본 바탕이 기독교정신(Christianity)’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인간화가 역사적 소명이 아니다라는 말에서의 소명운명이란 뜻으로 옮겨도 무방합니다. ‘부르심이나 운명이나 비슷한 뜻인데 문맥에 맞게 이렇게 대체하는 것이 좋겠죠. 사실 역사적 소명이란 식의 표현은 보통의 학자들은 잘 쓰지 않는 프레이리 특유의 어법인데, 프레이리는 이 문장을 통해 이러한 점은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의 타겟이 되고 있습니다.

위의 문장은 비인간화가 인간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는 뜻으로서 프레이리가 피억압 민중에게서 만연해 있는 숙명론(fatalism)을 염두에 두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유사 이래 지금까지의 인간 역사는 비인간화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때문에 책가방 끈길이와 무관하게 누구든 비인간화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인간성의 본질을 성악설로 규정하는 학자들이 그러하고 인간세상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소로 규정한 홉스 따위의 사상이 그러합니다. 홉스의 사상은 사회적 다윈주의로 대표되는데 동물의 왕국이 그러하듯 인간세상도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레이리의 생각은 이들과 달리 인간의 노력, 즉 투쟁을 통해 비인간화의 기제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듯 인간 역사를 낙관하는 프레이리의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 유의할 것은 프레이리가 마르크스에는 동의하지만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를 두는 점입니다. (이 문맥에서 마르크스주의란 소비에트 맑시즘을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프레이리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보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프레이리는 투쟁이 가능한 이유로 비인간화라는 것이 인간에게 던져진 운명이 아니라 부당한 사회질서의 소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계속해서 프레이리는 그러한 사회체제가 인간성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피억압자들은 조만간 그것을 만든 억압자들에게 맞서 투쟁하게 된다고 적고 있는데,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조만간 sooner or later’이라는 표현이 유감인데, 프레이리를 비판하는 많은 학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모호한 어법을 문제점으로 지적합니다.

 

(프레이리의 한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주 언급하겠습니다. 일단 다음 글에서 한 차례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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