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일제고사 치는 날

리틀윙 2011. 7. 12. 14:56

초등학교에서 예전의 시험이 경기(game)였다면 지금의 시험은 경주(race)이다.

게임에도 치열한 승부욕은 있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쉽게 털어버린다. 참가자들은 게임 자체를 즐길 뿐 스코어가 얼마다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레이스에선 다르다.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해 남을 제쳐야 한다. 나보다 앞서 가는 이가 넘어지면 쾌재를 부른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순위로 모든 것을 말한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죄다 우울해진다. 하위권은 하위권대로 불행하고 2등한 아이는 1등을 못해서 불행하다. 그리고 1등도 불안하다, 자기자리를 빼앗길까봐. 결국 모두가 불행한 것이다. 무한경쟁의 한국교육에선 비상구가 없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복도 감독 - 실로 초등학교에서 이런 이름이 예전엔 없었다 - 이란 임무를 부여받아 복도를 지키던 중(무슨 외적이 쳐들어 오는 것도 아닌데 왜 복도를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다만), 정적이 감도는 교실에서 헉헉 거리며 문제 푸는 아이들 보면서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험 시작 전에 교장/교감 선생님이 교실을 돌면서 아이들보고 시험 잘 치라고 독려하신다. 사실 이분들이야말로 이 쿨한 레이스의 주주들이다. 아이들은 경주마이고 6학년 교사들은 기수다. 왜 달려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야 한다. 경마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달리는 말의 눈 주위를 가린다고 한다. 주변 경치나 또래 말들에게 관심을 갖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의 신세가 저 경주마와 뭐가 다른가 생각해본다.

 

 

시험 마치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이상한 폼으로 앉아 있으니 다가와 묻는다. “선생님, 여기서 뭐 해요? 왜 여기 계셔요?”

어떤 녀석은 전시상황을 방불케 하는 이 중요한 날에 개념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체육선생님, 다음 체육 시간에 뭐 해요?” 애들이 평소에 나를 만나면 인사처럼 건네던 그 질문이다. 지금껏 시험공부 하느라 고생 많았던 6학년들을 위해 다음 체육수업은 스트레스 풀게 축구를 할까 뭘 할까 생각해본다. 개념 없다고는 했지만 시험보다 다음 체육시간에 뭐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쏟는 아이들을 보면서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일제고사란 괴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무기력하기만한 우리들 모습에 화가 나고 슬퍼기도 하지만 아이들이란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기찻길옆 옥수수는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혼탁해도 잘도 커간다.

어쨌거나 시간이 흘러간다. 내일은 진정한 교육이 재개되는 시점이다. 신나는 방학도 다가온다. 모두들 힘내자!

 

이 더운 날씨에도 축구만 시켜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깁스한 팔로 뛰다가 넘어지면 큰일난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