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의식

상부구조-하부구조

리틀윙 2009. 8. 23. 01:42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한 개인에 대해서도 적용되지만, 사회현상이나 인간 역사 등의 거시적 차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구조(=사회구성체)에서 존재와 의식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와 조응합니다. 그래서 개인적 차원에서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상부구조-하부구조와 관련하여 주의할 점은 자칫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 반대라는 점입니다. 위상(上)-아래(下)라는 한자어의 일반적인 의미에 입각하여 예컨대 일상 속에서 하급자와 상급자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그런 오해가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피라미드 그림에서 보듯이 상부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하부구조인데, 둘 가운데 보다 중요한 것은 하부구조입니다. 역학관계상 상부구조의 운명은 하부구조에 달려 있습니다. 하부구조가 무너지면 상부구조도 무너지지만 그 역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부구조를 다른 말로 ‘토대’라고도 일컫습니다.

하부구조는 ‘생산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한 사회의 경제 구조를 말합니다. 그리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경제적 토대) 위에서 발생한 관계 및 현상들의 총체인데, 하부구조의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이 이에 해당합니다. 상부구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됩니다.

1) 법적/정치적 상부구조 : 국가, 사법부

2)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 교회, 학교, 예술, 문화, 사회적 감정들, 도덕, 유행... 

 

 

앞글에서는 한 인간의 의식이 그가 처해 있는 물질적 조건에 따라 규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경우는 사람에 따라 예외성을 간과할 수 없기에 이 명제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서는 안되며 다만 "선차성의 문제"로 '존재조건'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개별 인간들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회적 현상들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이라는 정식이 절대적으로 맞아 떨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사회문제나 역사를 공부할 때 이러한 유물론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보다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조(trend)나 유행(mode)이 변화할 때, 인간의 의지나 흥미(=의식)가 변해서 그렇게 바뀐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중요한 것은 왜 하필 그 시점에서 그리고 왜 그런 방향으로 바뀌는가 하는 점은 간과합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물질적 요인(=존재)"이며, 후자가 전자를 규정하지 거꾸로 전자가 후자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물론적인 관점입니다.

 

 

앞으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짓는 많은 예들을 흥미있게 엮어보겠습니다. 아직도 ‘하부구조’란 개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일상적 의미에서의 ‘하부구조’란 쉽게 말해 ‘먹고 사는 문제’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김정은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잘 살아보세]를 보셨나요. 삼사십대인 분들은 기억할 겁니다. 예전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를 귀에 딱지 않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그 영화가 과장되게 그리고 있긴 하지만 그 시절에는 아이 많이 낳는 사람을 죄인 취급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사람은 반대로 애국자로 떠받듭니다.

 

 

경제적 조건(=하부구조)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상부구조)이 정반대로 오락가락 하는 또 다른 예로서 외제 상품에 대한 인식을 들 수 있겠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특히 박정희 시대에는 양담배 판매상을 구속하는가 하면, 양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50만원(지금 화폐 가치로 1천만원 가까이 됨) 벌금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6년 미국의 압력으로 양담배 수입을 개방하면서 국민들이 양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해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국내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산품 수출과 양담배의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양담배에 대한 국민 정서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