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민들레처럼...

리틀윙 2009. 4. 30. 22:26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왔습니다.

May-Day인 내일 우리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립니다. 운동회를 앞두고 며칠전부터 연습을 열심히 하는데 그 풍경이 20년 전 제 초임 때와 비슷했습니다. 이 동네는 모든 면에서 20년 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왜 저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을 위해 여는 잔치인데 왜 저토록 아이들을 혹사시키는지...


그러나 나의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힘든 상황을 묵묵히 잘 견뎌낼뿐더러 어떤 아이들은 그것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저는 아이들이란 생명,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목격하면서 종종 놀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초등학교만큼 여름철에 덥고 겨울철에 추운 공간이 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위와 추위를 못 견뎌 하는 쪽은 연약한 그들이 아니라 성인인 교사들입니다. ‘추위’라는 장애를 두고, 교사가 고민하는 것은 “체육을 밖에서 안 했으면” 하는 것이지만, 이들은 교사가 그런 고민을 할까봐 걱정합니다. 아무리 추워도 축구공 하나 던져주면 서로 부딪어가며 잘도 놉니다. 반대로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더위에 한껏 지칠 때까지 열심히 공을 찹니다. 간혹 “핸들링이다 아니다”라는 식의 쟁점사항이 발생하지만, 심판이라는 중재자 없이도 자기네끼리 잘도 해결해갑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른보다 강할뿐더러 어른보다 합리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저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고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아이들만이 희망이다” 할 것입니다. 민들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짐과 아울러 그 홀씨를 널리 퍼뜨려 더불어 살아가려는 아이들의 본성이야말로 암울한 우리 시대의 마지막 희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네, 오늘 편지의 제목은 ‘민들레처럼’으로 짓고 싶습니다.


.....................


올해로 제 교직경력이 22년째 접어드는데, 1995년 이래로 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룹사운드 음악을 지도해오고 있습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제가 지도하는 아이들의 그룹 이름을 늘 '민들레'라고 짓습니다. 이를테면 ㅇㅇ초등학교 그룹사운드 민들레로 이름 붙이는 것입니다.


'민들레'란 말 속에는 제 소박한 '교육철학'이 묻어 있습니다.

꽃이 아름답기로는 '장미'가 으뜸이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민들레처럼"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저 혼자만 예쁘고 사람들 손에 길들여져 사무실 꽃병에서 열흘을 버티다가(花無十日紅) 쓰레기통으로 폐기되는 '장미꽃'보다는, 대지에서 찬바람 맞으며 강인한 생명력을 스스로 키워가는 '민들레'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들레의 삶은 자신의 가치를 이웃에 널리널리 나눠주는 '더불어 삶'이라는 점에서 우리 전교조의 염원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표상합니다. '무한경쟁'이니 '명품교육'이니 하는 천박한 담론이 우리 교육계를 질식시키는 이 각박한 현실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상징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민들레'로 남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음악소리가 민들레홀씨 되어 이 마을 저 마을로 번져 사랑이 메마른 이 세상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웠으면 합니다.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

연결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 블로그에 구미사곡초등에서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의 연주 모습을 링크해 봅니다.

아이들의 소박한 연주를 감상하시면서 일상의 피로를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



존경하는 조합원선생님들, 힘냅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또 아이들을 통해 희망의 싹을 틔워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아이들이란 생명은 매우 강인합니다. “기차길옆 텃밭의 옥수수처럼”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이들은 잘도 커갑니다.


교육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씨앗이라 하겠습니다. 꽃병에 갇혀 길들여진 예쁨을 자랑하는 백합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 사이를 뚫고 나와 넓은 대지를 향해 생명을 널리 나누는 민들레 홀씨라 하겠습니다.


너무 쓸쓸한 밤 아주 먼 길을 가야할 때나, 사랑은 오직 운이 좋거나 강한 자만의 몫이라는 생각이 찾아들 때, 기억할지라, 겨우내 차디찬 눈 속 깊숙한 곳에서도 해님의 사랑을 받아 민들레로 자랄 꽃씨 하나가 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When the night has been too lonely and the road has been too long, and you think that love is only for the lucky and the strong,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s, lies a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 Bette Midler, 「The Rose」



 

'이성과 감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성과 감성  (0) 2011.07.07
찜질방으로부터의 사색  (0) 2011.06.28
펠리스 나비다, Happy Christmas  (0) 2010.12.24
예술가와 광기  (0) 2010.03.09
이성과 감성  (0) 2009.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