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이성과 감성

리틀윙 2009. 3. 19. 09:15

에피소드-1)

예전에 시골 학교에 근무할 때 친분을 나누었던 어떤 학부형님이 기억 납니다. 그 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 사람입니다.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관대한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분이 자신의 아내에게는 매우 엄격합니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이라 하겠습니다.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토록 좋은 이가 정작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에겐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내 눈에는 보였습니다.


에피소드-2)

모년모일, 학년부장회의 결과를 전달받았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배구공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본 교장선생님께서 학년에 하나둘씩 나눠준 배구공을 모두 거둬 체육실로 보내라는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런 지시를 한 교장이나 그 자리에 회의하러 앉았던 부장들이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배구공이 배구만을 위한 공이라면 초등학교 1,2년 아이들에게 그 공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더구나 그 공은 LG회사에 다니는 어떤 학부모가 대량으로 기증한 공이었음에도 학교장의 눈엔 '강아지 같은 연약한 발로' 신성한 배구공을 차대는 모습이 일종의 일탈로 보였던가 봅니다.

운동장에서 동네 공터에서 마구 뛰어 놀아야 할 이 나라의 새싹들에게는 놀 공간도 놀 시간도 원천봉쇄되어 있는 잔인한 사회입니다. 방과후 교문 앞에서 대기해 있는 노란색 봉고차에 "실려가는" 이들을 보며 나는 '저게 닭장차와 뭐가 다른가' 생각해봅니다.


..................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우리는 이성과 감성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짓게 하는 이 두 요소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나란히 기능합니다.

에피소드-1)의 주인공이 [여성론]에 관해 온전한 이성을 가졌다면 그는 아내에게도 좋은 남성이 될 것입니다.

에피소드-2)에서 교육관계자들이 어린이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봤더라면 자신의 결정과 동의가 "아이들 스스로 찾아낸 자그마한 행복"을 차단하는 무지막지한 처사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일상 속의 작은 현상에 대해 도무지 뭘 느낄 줄 모르면 '참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성 못지 않게 감성이 소중한 이유입니다.

이성과 더불어 우리는 부단히 감성을 단련해가야 합니다.

볼세비키 혁명의 화신 레닌이 베토벤의 '합창'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죠. 파렴치한 학교장이나 교육관료들을 향해 우리의 분노를 표출할 때, 그 분노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성적으로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의 출발은 물론 아이사랑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투쟁은 사랑입니다.

교장선생님께 타격을 가하는 것이 학생은 물론 교장선생님 자신을 위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에(마키아벨리), 파쇼 교장일수록 퇴임 후에 찾아오는 선생들이 드물 것입니다. 그 분의 불행을 교육공동체 전체 불행의 범주 속에 넣고 투쟁해가야 합니다.

그 사랑이 맹목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냉철한 이성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성이 기계적으로 매몰되지 않기 위해 감성의 작용을 필요로 합니다. 요컨대, 이성과 감성은 끊임없이 서로서로를 뒷받침하고 이끌어줘야 합니다.

 

 

신영복은 이러한 이성과 감성의 변증법을 다음과 같은 경구로 표현합니다.

"뜨거운 가슴에 차가운 머리"

Warm heart, cool head!

(이 표현은 원래 경제학자 Alfred Marshall의 말입니다)


200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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