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나규식을 기리며... Wish You Were Here

리틀윙 2011. 11. 5. 15:18

 

- 2007년 5월 쓴 글 -

 

어제 구미지회 주관으로 고 나규식동지를 기리는 2주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적잖이 비가 내리더군요. 농부에겐 매우 반가운 단비지만, 보통의 행사에서 '비'는 악조건일 수밖에 없는 법이죠. 하지만, '비 내림'이 그렇게 어울리는 전교조행사가 둘 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고 나규식동지는 척박한 이 나라 교육현장에서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청송군에서 구미 상모와 황상초로 이어지는 그의 일터는 '참스승'을 더욱 필요로 하는 소외된 지역이었습니다. 상모초에서 나규식과 함께 근무한 어떤 후배교사가 기억합니다.

 

규식이선배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출근시간에 프라이드를 학교마당에 주차시킬 때 어김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던 영석(가명)이라는 녀석이 차에서 내리는 그의 가방을 딱 건네받는 풍경입니다...

 

지금도 사곡동의 '움막골'은 그러하지만, 아파트촌이 들어서기 전 당시의 상모-사곡동은 영석이가 수두룩했습니다. 못 먹고 못 씻어서 초라한 몰골에 기초학력이 부진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업시간이 고통인, 그래서 만고에 학교 올 낙이 없는 그런 아이들...

보통의 교사들에게 사랑받을 일이 없는 영석이가 나규식이라는 담임을 만나 학교 올 낙이 많아졌을 겁니다. 그 중에 한 낙이 아침 일찍 와서 주차장을 서성거리며 나규식의 프라이드 - 고인은 이 허접한 차가 마침내 길에서 멈출 때까지 애용했습니다. 그것도 전국대의원대회 다녀오는 길에서 - 를 기다리다가 그의 가방을 건네받는 일이었습니다.

 

교육운동에 있어서도 나규식동지는 '성난 파도'라기보다는 '봄바람' 같은 존재였음을 우리 모두가 기억합니다. 물론 그의 아이사랑은 파울루 프레이리가 말하는 '무장된 사랑(armed love)'이었기에 몇몇 파쇼교장이나 반교육적인 동료교사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최소한 전교조 내에서 나규식을 불편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람직한 교육운동가의 전형으로서 '나규식'을 기억할 것입니다.

'올곧은 스승됨'외에 '넉넉한 가슴'을 가진 탓에 그의 24시간은 '치열함'으로 점철되어... "그의 일상에서 과연 자신의 휴식을 위한 촌각이 얼마나 허용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살아남은 자"를 부끄럽게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침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을텐데 퇴근 후 지회사무실을 지킬 때에도 어떤 영역에서 누수가 발생하면 그 땜빵은 대부분 그의 몫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가 후에도 그의 가정은 결코 휴식처가 아니었습니다.

어제 추도사에서 "사모님 몸이 불편해서 이제는 쉬어야 하는 줄 알지만, 구미지회장을 한번 더 맡아달라는 모진 말을 내뱉았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구미지회장님의 흐느낌은 그 자리에서 머리 숙여 경청하던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분 또한 나규식 못잖게 조직에 헌신적임을 생각할 때 교육해방과 전교조의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모든 죽음은 한 인간의 삶의 완성"이라 합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으되 나규식의 삶은 그 자체로 완성일 것입니다. 완성된 삶을 살았던 한 인물의 2주기였기에 비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오염된 대기를 씻어주는 동시에 찌든 교육현실 속에서 우울한 우리의 영혼을 씻어주기 위해 하늘에 있는 나규식동지가 내리는 카타르시스처럼 느껴졌습니다. 우산 사이로 간간히 빗방울이 튀어들어 우리들 옷깃을 적시기도 했지만 그리 싫지가 않았습니다.

우산 속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늘 부르는 우리의 로고송이었지만 어제는 특별히 나규식동지가 우리에게 이르는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구미지회장님도 그렇게 추도사를 끝맺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지가 가고 없는 이 땅의 교육현실은 더욱 절망적이지만, 우리는 절망속에서도 동지를 기리며 희망을 찾아가겠습니다"

 

"Wish you were here..."

"나규식이 여기에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자의 육신이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그의 정신은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산자의 몫일 겁니다. 나규식의 삶을 기리며 우리가 그를 닮고자 하고 또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간다면, 나규식은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오늘따라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를 듣고 싶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의 상징이라 할 '핑크 플로이드'의 락 발라드입니다. 초기 멤버였던 '시드 베릿'의 죽음을 기리며 나머지 멤버들이 불후의 명반 [Wish You Were Here]에 수록한 곡이죠. 노랫말은 특별히 음미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 자체는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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