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다부교육공동체

리틀윙 2017. 6. 26. 10:36

경북에서 제일가는 학교 다부초에선 해마다 이맘때 학부모회 주관으로 12일 캠프를 연다. 학생-학부모-교사 모두가 참여하여 밥도 같이 지어 먹는가 하면, 교사와 학부모가 밤이 새도록 교육과 삶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 다섯 해째를 맞고 있는데, 갈수록 행사의 질이 점점 성숙해 지고 있는 느낌이다.




 

다부교육의 탁월성이 이러한 교육공동체의 활력에 기인한다. 사실, 오늘의 다부는 선진된 의식과 헌신성을 겸비한 학부모 집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지독한 보수교육감 체제에서 자생적 혁신학교의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는 것은 이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뒤를 받쳐 주시는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십수년 전만 해도, 개인 자격으로든 집단적으로든 학교교육에서 학부모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때는 민원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한 사람의 학부모가 교장실로 전화를 걸거나 교육청에 민원 글을 올림으로써 학교교육이 휘청거리는 시대가 되었다. 좋은 예가 그저께 내가 올린 에어컨 민원이다. “북극곰의 안타까운 운명에 대한 교육을 계기로 교사-학생이 맺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에어컨 사용을 줄이자라는 숭고한 결의의 실천이 더운데 왜 교실에 에어컨 안 틀어주냐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 한 통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학부모의 민원 제기가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를테면, 파쇼적인 학교장의 독단으로 교실 에어컨 가동을 통제하는 학교라면, 이런 학부모의 민원이 교사를 도와주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익명의 그 학부모께서도 자신의 전화 한 통이 전체 학교교육에 이렇듯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학부모가 개인자격으로 취한 돌출적인 행보인 것이다. 선량한 의도에서든 내 아이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이기심에서든, 학부모의 불만이나 제안은 학부모공동체 내의 집단토론을 거쳐 학교운영위원회라는 창구를 통해 제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건강한 학교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은 주로 신념과 철학의 문제인 바, 학부모의 민원제기와 교사의 신념이 상충될 때, 교사가 자기 신념을 내려놓는 교실에선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북에서 제일가는 다부초등학교에선 튼실한 교사-학부모 교육공동체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부모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교육실천을 하거나 할 일이 전혀 없다. 다른 학교에서 흔하게 빚어지고 우리 교사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교육 질곡인 '학교폭력위원회라는 게 다부초에선 전혀 열리지 않는다. 다부 아이들이 착해빠져서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싸움이 학부모의 싸움으로 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급한 공문 때문에 아이들 자습시켜 놓고 공문처리할 일이 없는 학교,

하지도 않은 교육사업을 번드레하게 포장하며 선량한 교사의 양심을 갉아 먹고 시간과 열정을 소진하는 반교육적 페이퍼워크가 없는 학교,

수요일에 친목회 한다고 강당으로 동원되어 팔뚝에 멍이 들도록 강제 배구를 할 필요가 없는 학교,

학부모와 교장/교감 눈치 보지 않고, 교사가 오직 학생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꿈의 학교가 다부초이다.

이 꿈같은 이야기가 다부초에서 구현될 수 있는 원천이 건강한 학부모공동체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무심한 학부모들의 이런저런 원성과 몰이해로 내상을 입으면서도 묵묵히 다부교육공동체를 이끌어 오신 몇몇 학부모님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2017.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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