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동아리 문제

리틀윙 2017. 2. 26. 23:25

3월이라 할 일이 많다. 이번 주에 제일 중요한 일은 학생동아리 조직하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 근무할 때는 클럽활동으로 불리던 것인데, 우리 학교에선 이름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조직을 하는 것이 남다르다. 다른 학교에서는 교사가 동아리 몇 개를 선정해서 아이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을 취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이 동아리를 선정하게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품는 법이니, 일견 좋아 보이는 무엇의 이면에 있는 역기능을 생각해 봐야 한다. 교육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관념적인 구호로 하는 게 아니다. 교육은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현실 속에서 실천적으로 구현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존 듀이의 영향을 받아 아동중심을 전면에 내세운 진보주의 교육사조가 나오자마자 바로 퇴조해 갔던 것도 이런 이치를 간과한 탓이 크리라 본다. 아동을 교육의 중심에 세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동의 흥미를 존중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동을 중심에 두고,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전자만 있고 후자는 없는 것이 문제였다.

 

혁신학교에서,

학생을 중심에 두되, 어떤 교육적인 비전을 담보하지 못하면 혁신교육이 아니다.

사실 이게 어렵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대부분, 1)학생을 중심에 두지 않고 교육적인 무엇을 쫓거나, 2)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육적인 무엇은 대충 방임형으로 간다.

아마 대부분의 혁신학교가 이런 저런 내적 혼란 속에서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것으로 나는 본다. 어떤 가치를 쫓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이 혼란은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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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아리로 돌아가자.

작년에 학생 주도적으로 동아리 선정을 했더니, 제빵부, 레고부, 미니어처부, 등등 한마디로 달달한것들로 조직되었다. 아이들 흥미 위주로 선정했으니 각자 자기가 든 부서에서 자기주도적으로 활동한다. 지금은 이 학교를 떠난 어떤 교사는 이런 양상을 즐기기도 했다. 애들 혼자 소꿉놀이 하고 있고 교사란 사람은 컴터에 앉아 뭘 하는지 자기주도적으로시간 보내고 있었다.

학생중심이 이런 것인가?

존 듀이의 교육철학은 이런 모습과 아무 관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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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학생중심은 살리되 교사중심과 통합하기로 했다. 동아리 조직의 프로세스를

1단계) 교직원다모임(교직원협의)교사 개인의 역량과 흥미 그리고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여 각자 지도 가능한 부서를 한두 개 제시한다.

2단계) 그 부서를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그 밖에 학생들이 원하는 부서도 수렴한다.

3단계) 다시 교직원다모임에서 1)2)를 절충하여 최종 결정한다.

 

1단계는 이번 월요일에 있었고 2단계가 어제 있었다.

월요일 회의에서 선생님들이 각자 제안한 부서는 밴드, 독서, 판화, 생태(환경), 연극 등이었다. 나는 이 구성이 참 맘에 들었다.

 

그 뒤, 2단계로 어제 강당에 3,4,5,6학년 학생들을 모아 놓고 설명회를 가졌다. 1단계로 선생님들이 이러이러한 동아리를 제안했는데, 2단계로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제안해 보라. , 우리 교사들이 지도할 수 없는 것은 너희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아뿔사!

어제 아이들은 우리가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교육적인동아리들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학생중심의 새로운 동아리들을 내놓는데... 교무부장인 내게 동아리 대표들이 신고하러 온 내용들은 하나같이 달달한일색이었다. 무슨 인형 만들기니 하는, 경상도 토박이말로 빵게살이가 전부였다.

 

이걸 우짜노?

학생중심이란 것의 본질이 이런 것일까? 싹 무시하고 교사중심으로 회귀할까?

아니다.

 

학생을 중심에 두되, 교육적인 비전을 담보하지 못하면 혁신교육이 아니라 했지만,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교사 시절 혁신교육에 혼신의 노력의 기울여 남한산등등을 일궈 놓은 기라성 같은 활동가들이 교육청에 들어간 뒤로, 그 놈의 결과(=교육실적)’에 눈이 멀어 학교를 향해 이래라 저래라푸쉬 하는 바람에 혁신교육이란 게 예전에 우리 활동가들이 그렇게 비난하던 기존 제도권 교육처럼 변질되어 가고 있다.

 

교육은 결과의 교육이 아니라 과정의 교육이다. 과정이 교육적이면 결과는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다만, 현재의 실천 국면에서 안 나타나는 것 뿐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일컫는 것은 이런 게 아니던가. 눈앞의 교육 결과에 연연하면 교육을 망친다.

 

그러므로,

학생을 중심에 두는 기조는 어떻게든 유지되어야 한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흥미를 존중하되, 교육적 입장에서 그게 바람직한 것인지 대화의 장을 열고 아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말로는 이렇게 쉽게 하지만 자신이 없다.

자신은 없지만 확신은 있다.

 

확신 하나!

교육적 가치는 없고 달달하기만 무엇은 조만간 아이들도 회의를 느끼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려갈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생각을 달리 가져간다면 그것은 앞의 길을 가봤기 때문에 얻은 결실이다. 따라서 학생주도로 그릇된 길을 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 다음 국면에서 교사와 학생이 대화를 나눈다면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가 보다 쉬울 것이다.

 

확신 둘!

학생을 중심에 둔 결과로 지금 당장은 교사가 의도한 바의 교육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어릴 때 자기 선택의 경험을 많이 가져본 아이들은 훗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소중한 자질을 키워갈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적 성과도 없다.

 

확신 셋!

실패가 무익한 것은 아니다. 교사도 학생도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다만, 구성원들끼리 치열한 토론을 통해 실패를 최소화 하고 성공의 가능성을 극대화 하는...... 사실 학교에서 교사가 신경 쓸 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2016.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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