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

리틀윙 2017. 6. 23. 13:14

어제 학교로 반가운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군산영광중학교 정은균 선생님께서 책을 보내셨다.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

 

평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부조리한 일상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즐겨 쓰시는 분인 줄은 알지만, 책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어서 조금 놀랐다. 선생님 가까이에서 그 온화한 성품을 지켜보신 분은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좋은 것과 과격한 것은 별개의 문제라 생각한다. 아니,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라면 불의한 무엇에 대해 파도 같은 분노를 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학교 교사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학을 가르치든 선생님처럼 국어를 가르치든 나처럼 초등학교에서 전과목을 가르치든 교육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에서 지고의 가치어가 민주주의이다. 모든 법의 으뜸인 헌법의 제1조 문구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고 있고, 교육법 1조도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는 과연 민주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집단이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알아보려면 회의 모습을 보면 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참여하는 회의는 교직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데, 말이 협의회지 그 속엔 협의가 전혀 없다. 업무담당자의 전달과 관리자들의 훈화와 지시가 전부다. 학교 내에서 교육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회의 시간에 그 문제를 공론화 하려면 비상한 용기를 발동해야 한다.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는 벌떡교사라는 낙인을 각오해야 한다.

 

>> 수년 전부터 벌떡교사로 살려고 나름 노력해 왔다. 갈수록 벌떡의 방식에 회의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 (188)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집단인 학교 교사집단 내에서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실체를 저자는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이들 민주주의의 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 있으니, ‘인격자 교사들이다.

 

>> 나는 매일 가슴 밑바닥에서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논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들이 무섭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 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는 대다수의 인격자교사들이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교무실을 지키며 점잖게 보낸다. 그들이 보다 더 적대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17)

 

학교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해 본 사람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심금을 울리는 이 대목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진정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적들의 폭력이 아니라 벗들의 침묵이라는 마르틴 루터 킹의 말이 떠 오른다.

 

교육은 삶이다. 존 듀이가 이 말을 역설할 때는, 학생의 배움이 삶과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나는 교사의 가르침 또한 삶과 함께 간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오직, 민주주의를 살아본 교사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다.

정은균 선생님이 그런 분이시다. 그런 삶을 살아 오셨다.

이런 분의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 선생님을 돕기 위해 사드리는 게 아니라, 이론과 실천이 통일된 훌륭한 교직삶을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접하는 선생님의 책이다. [교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읽을 때도 느겼지만, 선생님의 책이 주는 큰 장점 한 가지가 책 속에서 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점이다. 선생님은 훌륭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늘 책을 가까이 하시는 독서가이시다. 교사로서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움 느낀다. 나의 지론인 교사는 지성인을 입버릇처럼 떠들면서 정작 책을 멀리 하고 있음을 자책하게 된다. 교사인 사람이면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품지만 막상 무슨 책을 읽을지 막막할 때가 많은데, 선생님의 책 속엔 교사인 사람인 읽어야 할 책 리스트가 본문 속에 망라되어 있다.

 

사람이 귀한 시대다.

진보적인 교사는 더더욱 귀하다.

종파주의에 찌들지 않은 지적인 교육운동가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 면에서, 정근균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교육동지를 만난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벗들에게 이 책을 통해 선생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드리고자 이 글을 남긴다.

 

정은균 선생님, 앞으로도 좋은 글 좋은 책 많이 지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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