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부정 (5/5) – 미학적 삶

리틀윙 2017. 2. 26. 10:37

사유란 본질적으로 우리 눈앞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 헤겔

 

현상과 본질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비로소 본질(=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매스컴이든 대중문화든 또 교육이든, 1퍼센트를 위해 복무하는 상부구조(superstructure)의 모든 영역들은 진리를 향한 99퍼센트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그 결과, 매스미디어를 많이 접할수록, 대중문화에 많이 노출될수록, 또 교육을 받을수록 대중은 바보가 돼 간다.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에 마취되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일상에 익숙해 있는 상태를 나는, 로저 워터스가 만든 멋진 용어로 달달한 마비 Comfortably Numb’라 일컬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달달한 마취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으로 나는 미학적 삶을 제안고자 한다.

 

미학은 영어로 ‘esthetics(=aesthetics)’이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창조한 이 말은 감각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흥미롭게도 미학의 이러한 배경적 의미에 착안하여 존 듀이는 ‘aesthetics’의 반어의에 해당하는 ‘anesthetics’에 관해 언급한다. ‘anesthetics’는 미학적 삶과 대조적으로, 감각이 파괴된 혹은 마취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내가 말한 ‘Comfortably Numb’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달달한 마취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미학적 삶이라는 것이 명확해 진다.

 

어원상 미학이 감각에서 유래하듯이, 예술적 감수성은 감각에서 출발한다. 그림을 그리든 시를 쓰든 작가정신은 사물에 대한 감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무엇을 느낄 수 있어야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감상하는 입장에서도 감각의 발동은 필수적이다. 감각은 영어로 ‘sense’이다. 그런데, 그 형용사형인 감각적인에 해당하는 영어 ‘sensual’관능적인, 육감적인의 뜻이다.

지금까지 전개해 온 낱말풀이를 정리해보면, (미학-감각-관능)이 된다. 이 간단한 삼단논법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적인 무엇은 본질적으로 관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쾌감이나 록 음악이든 클래식이든 연주자가 클라이막스에서 혼신의 예술혼을 쏟아낼 때의 기분은 오르가슴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그러나 관능적 감각 그 자체가 자랑일 수는 없다. 관능적 감성은 비판적 이성과 결부될 때 비로소 미학적 감수성으로 연결되니, 이것이 프로이드가 말한 승화(sublimation)이다. 그렇지 않고 합리적 이성의 안받침이 없이 그저 동물적 차원의 관능미를 쫓는 경우는 승화의 대립물이라 할 달달한 마비를 파생시킨다. SM이나 JYP로 상징되는 천박한 K팝 음악이나, 저급한 오락 영화가 이에 해당한다.

숭고한 관능미가 아닌 말초 감각에 호소하여 비판 정신을 마비시키고 현실적 사회모순과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무뇌아들을 양산하는 저질 문화상품으로서의 대중음악과 종편 방송 등의 폐해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지금이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이런 저질 대중문화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아이들에겐 비판정신을 길러 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아도르노가 말한 내적 자연으로서 소박한 예술적 감수성을 보존하며 아름다운 노래, 품위 있는 음악을 가까이 하도록 안내하자.

 

요즘 애들 발랑 까졌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는 아이다. 교사가 이끌기 나름이다. 스티븐 포스터의 아름다운 미국민요 [마이 보니][진주조개잡이]를 가르쳐 주면 아이들은 그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되어 집에 가서도 하루 종일 흥얼거린다.

(교무부장으로서 내가 1~2학년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노래 선물을 들고 가서 특별 수업을 한다. 영상은 1학년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인데, 노래를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내가 잘 못 가르쳐서 그렇다^^)

 

어릴 적에 저질 K팝에 오염되지 않고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들을 가까이 하며 미학적 감수성을 잘 보존한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적 모순이라든가 이웃의 바람직한 삶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달달한 마취의 포섭을 피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모든 철학자는 예술가이어야 하고, 모든 예술가는 철학자이어야 함을 역설했다.

교사가 곧 철학자이어야 한다. 교육 행위가 본질적으로 철학이 바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교사는 미학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

 

실로, 우리 교육자들이 아이들을 풍성한 미학적 감수성을 갖도록 길러낸다면, 그래서 모든 시민들이 미학적 삶을 추구하게 한다면...... 사회 변혁은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환원하면, 친일세력들이 대대손손 이 사회의 주인 노릇해 오고 있는 이 언어도단의 사회가 끄떡없이 현상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순전히 마취된(anesthetical) 미학적(aesthetical) 에 절대 우위를 점해 왔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다 덜 추한 세상을 꿈꾸는 이에게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은 SM + JYP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실에선 나는 욕설을 심하게 구사하는 아이보다 ~ ~ , 내 나이가 어때서흥얼거리는 놈들을 못 봐 넘기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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