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부정 4 – Comfortably Numb

리틀윙 2017. 2. 26. 10:36

 

부정(negation)이란 화두로 일련의 글을 쓰고 있다. 이 글들의 일관된 주제를 대변하는 한 문장이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이다.

 

사유란 본질적으로 우리 눈앞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는 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비로소 본질(=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 사유 또는 철학의 본질은 부정의 변증법인 것이다.

 

결국, 진리 탐구는 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전에서 부정보다 더 아름다운 낱말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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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知彼知己)란 차원에서 우리는 올바른 사고로 나아가기 위해그것을 저해하는 악 요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글에서는 부정의 반대 개념으로 긍정을, ‘부정 변증법(Negative Dialectics)’의 대립물로 실증주의(Positivism)’을 논했다. 실증주의에 해당하는 영어 positivism이 긍정을 의미하는 positive에서 온 것임에 유의하자.

 

지난 글에서 철학사조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부정의 변증법의 대립물로 실증주의를 논했기에, 이번 글에서는 개인적 차원의 부정의 사유에 대립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것을 나는 무사유 thoughtlessness”라 일컫겠다.

 

, 개인의 삶의 양식 면에서 부정적 사유의 반대는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생각 없이 살기이다.

우리 어릴 때와 달리 요즘 아이들 혹은 청년들은 생각 없이 살기에 너무 익숙해 있다. 나는 이것이 학창시절의 과도한 학습노동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실컷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논리보다는 직관으로 사물을 인식해야 할 나이에 학생들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니까, 역설적으로 정작 생각을 많이 해야 할 어른이 돼서는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행정실장님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공부를 죽도록 했다 한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꿈에서 공부하는 악몽에 시달린다고 한다. 삶과 동떨어진 창백한 지식 노동에서 만나는 문제풀이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실제로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고 또 못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바보가 되어 간다 하겠다.

 

꿈에서 공부하는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죽도록 공부해서 공무원이 된 행정실장님과 마찬가지로,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된 후배교사들 또한 (대단히 외람되지만) 생각 없이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는 듯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는 무관심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웹서핑에 몰두하는 사람들, 카드 긁어서 명품 가방 득템에 온 신경을 쏟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월요일부터 100대교육과정이나 도지정시범학교 사업이 요구하는 페이퍼 워크에 짜증과 회의를 느끼다가도, 주말이면 프로야구나 영화 관람 혹은 불금을 보내면서 스트레스 풀고 다시 무익한 기계적 노동에 헌신하는 일상에 익숙해 있는 교직사회의 풍속도는...... ‘안락한 마취의 삶 Comfortably Numb’ 그것이다.

 

[Comfortably Numb]은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의 명반 [The Wall]에 수록된 음악인데, 데이빗 길모어의 기타솔로가 록 음악사에서 최고의 솔로로 평가되는 훌륭한 작품이다. 길모어의 솔로가 왜 그렇게 훌륭한지 모르지만, 나는 로저 워터스(핑크 플로이드의 리더)푸근하게 마취된 삶이란 개념을 사랑한다.

 

이 글을 쓰는 새벽, 아파트의 베란다 밖으로 온갖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병원도 있고 술집도 있고 당구장도, 노래방도, 식당도, 모텔도...... 이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엔 딱 한 가지 빼곤 없는 게 없다. 모든 게 다 있는데, 희망이 안 보인다. 일제강점기때 민족을 배반한 친일세력들이 대대손손 이 사회의 주인 노릇하고 친일장교의 딸이 아비 뒤를 이어 국가원수가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는 이 모든 블랙코미디는 "달달한 최면 Comfortably Numb”의 결과다.

 

부정적 사유의 반의어는 긍정적 사고가 아닌 무사유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이를테면 성과급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의견이 반갑다.

가장 비참하고 무서운 것은 생각 없이 살아가는 자세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그건 최악이다. 안나 아렌트의 보고서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교육모순엔 아랑곳없이 오직 승진을 위해 제 앞길 열심히 가는 승진파 교사들 속에서 아이히만의 아바타를 본다.

게으르고 무능한 무사유는 자신만 망치지만, 부지런하고 유능한 무사유는 집단을 망치고 사회를 망친다. 최근 행정고시를 통해 1퍼센트의 반열에 들었음을 자랑하다가 온 국민을 멘붕에 빠뜨리고 있는 그 돼지도 그런 한 예일 것이다. 행정고시든 임용고시든 모든 시험은 무사유의 인간을 길러낸다. sheer thoughtles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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