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재즈의 탄생

리틀윙 2017. 2. 15. 14:24

재즈는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흑인음악도 백인음악도 아닌 별개의 위대한 음악장르로 창조된 겁니다. 구체적으로, 흑인음악이 재즈의 탄생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는 블루스 스케일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들이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우리나라 전통 민요인 <뱃노래><쾌지나 칭칭>처럼 매기고 받는(call & response) 형식을 취하는 field holler였습니다. 노동요의 일종인 필드 홀러가 블루스로 발전해 재즈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겁니다.

 

그런데 최초 흑인들이 부르던 노래는 서양의 정통 음계(이오니안 스케일)와 스케일이 달랐습니다. 특히 미와 시음이 달랐는데, 정확히 말해 미도 미b, 시도 시b도 아닌, 미와 미b / 시와 시b의 중간에 해당하는 묘한 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루스든 뭐든 서양악기로 표현을 하니까 백인들은 블루스 스케일을 미b과 시b을 넣어서 만들어 버리는데 이게 블루스스케일입니다.

 

이 블루스스케일은 단조도 장조도 아닌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건 저의 상상력입니다만) 그래서 흑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백인이나 백인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흑인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이었던 거죠. 이 점에서 흑인들의 처참한 애환이 음악으로 승화된 블루스는 한으로만 점철된 정선아리랑 같은 우리 민요와는 많이 다릅니다.

 

블루스 음악은 재즈를 구성하는 양대산맥 가운데 한 축일 뿐입니다. 다른 한 축은 유럽음악이죠. 그러나 정통클래식 음악이 아닌 유럽 민중의 음악으로서 민스트럴 음악이라는 겁니다. 민스트럴은 일종의 유랑극단음악인데 유럽의 폴카음악이 변형된 딕실랜드나 마칭밴드 음악 등이 혼재된 음악입니다. 이 민스트럴 음악과 훗날 재즈의 효시가 되는 스콧 조플린의 피아노음악으로 유명한 랙타임 같은 백인음악이 흑인음악의 블루스스케일과 만남으로써 재즈음악이 탄생합니다.

 

제가 오늘 썼던 글에서 가 변증법적 통일을 이룰 때 최고의 미학이 탄생한다고 했는데, 이 재즈라는 음악이 유럽의 와 아프리카의 가 절묘한 통합을 이루면서 탄생한 인류문화사에서 최고의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들뢰즈의 접속이라는 개념으로 이 재즈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문화라는 것은 서로 다른 민족끼리의 강간혹은 간통의 산물이라고 저는 보는데,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전파주의가 이것입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접속은 어떠한 이질적인 것끼리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합니다. 재즈라는 음악은 백인의 문화가 흑인문화를 강간하면서, 혹은 백인정서와 흑인정서의 간통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강간 혹은 간통을 고상하게 표현하면 적과의 동침인데, 백인음악보다는 흑인음악이 주인공인 재즈라는 음악은 흑인이 자신을 짓밟고 수탈한 백인을 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탄생한 음악입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에게 강간당한 한국인들이 일본 문화를 철저히 배격하는 한국문화와는 대조를 이룹니다.

 

강간이니 간통이니 하는 어법이 귀에 거슬리겠지만, 인간 역사나 인류 문화사가 사실 이 강간과 간통으로 점철되어 오지 않았나요? 단일민족이라는 개념보다 더 심한 사기도 없습니다.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허구 아닙니까? 한반도 북쪽의 국경지대에 사는 조선인이 민족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개념을 갖고 살았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남쪽에서 당한 지긋지긋한 착취를 피해 북쪽의 산간지역으로 이주해 화전민 생활을 하던 사람에게 무슨 애국심이 있었겠습니까? 뙤놈이든 조선놈이든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쪽이 선량한 민족인 거죠. 몽고 침입 때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신했는데, 우리 역사서에서는 이를 민족의 혼이니 하면서 미화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고종이 항복했을 때 강화도 백성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임금이라는 인간이 자기네 땅에 피신 와서 민초들은 굶어 죽어도 잡아먹지 않는 소의 고기를 내놓으라 하니 죽을 지경 아니겠습니까?(초근목피로 가뭄을 견딜지언정 소를 못 잡아 먹는 것은 훗날의 농사를 기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깡패같은 인간들에 비하면 몽고군은 실로 해방군인 거죠.

 

마찬가지로, 조선후기의 민중들에게 일본의 침략이 해방적 요소로 다가온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갑오개혁이 그러합니다. 봉건 조선의 지배층에게 노비해방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불상사였습니다. 천민/상인과 양반이 하늘 아래에서 대등한 인민으로 취급받는 것은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카오스였던 거죠.

 

인간역사는 이렇게 발전하는 겁니다. 선이 악을 이기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 선을 이기면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물질세계의 발전이 정신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겁니다. 이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입니다.

재즈음악이 20세기초 랙타임에서 1930년대 스윙재즈, 1940년대 비밥, 1950년대 쿨재즈, 1960년대 프리재즈, 197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가 창안한 퓨전재즈로 발전해가는 것도 물질세계의 발전에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언제 시간 봐가며 글로 써보겠습니다.

 

 

201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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