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교사에게

교육의 쓸모

리틀윙 2014. 11. 14. 08:45

 

대구교대 조용기 교수가 쓴 <교육의 쓸모>라는 책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교육의 쓸모란 테제는 하버드의 교육철학자 브라우디(Broudy, H.)학교교육의 쓸모 use of schooling’란 개념을 비판적으로 패러디한 것으로서, 저자는 교육은 쓸모가 없어야 쓸모가 있다는 역설을 펼칩니다. 존재론적으로 교육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유용한 무엇이어야지 무슨 목적을 위해 쓰이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아가 그는 교육의 쓸모를 추구하다보면 결국 실용적 가치마저 획득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합니다. 초등교육자로서 이 말에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현 정부 들어서는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자기 가슴팍보다 더 큰 문제집과 씨름하는 것이 우리네 교육현실입니다. 선행학습이라는 얄궂은 개념이 교육의 쓸모를 획득하기 위한 첩경으로 인식되어 아이들은 학원에서 교과서 내용을 미리 다 배워 옵니다. 그런 아이들을 교실에 앉혀 놓고 창의적인 수업하라고 하니 참으로 기도 안 찰 노릇이죠. 베토벤 될 아이도 셰익스피어 될 아이도 모두 획일적인 틀 속에 집어넣고서 소모적인 무한경쟁을 시키는 곳에서 어떻게 인재가 나오겠습니까? 요컨대, 교육의 쓸모를 지나치게 쫓는 이 과도한 교육열은 국가경쟁력에도 아무 쓸모가 없는 자가당착적 광기라 하겠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사업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데, 이를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라 합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외재적 가치(extrinsic value), 즉 실용성(조 교수의 개념으론 쓸모’)을 쫓는 순간 전자와 후자 모두 공멸로 향합니다. 경제학 개념으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어리석음이 빚어지는 겁니다.

선량한 가치가 불량한 것에 의해 질식당하는 본말전도의 현상은 교육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죠. 이런 것들은 예외 없이 실적물 쌓기의 모습을 띱니다. 몇 해 전 영어전담교사를 맡고 있을 때 영어교사심화연수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6개월 코스로 교원대에서 합숙 연수를 받는데, 강의실에서는 물론 기숙사 내에서도 동료 연수생들 간에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하는, 말 그대로 강도 높은 영어교사연수(Intensive English Teacher Training Program, IETTP)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중등 영어교사들이 24시간 내내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하며 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 영어수업을 영어로 가르치기) 역량을 키워 가는데, 정규 연수시간이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거나 하면서 모두들 자기연찬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수 과제 가운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포트폴리오란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A4파일집 속에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출력한 자료 따위로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영어 역량강화라는 연수 본연의 목적에 오히려 저해가 되는 소모적인 짓거리로서 정상적인 마인드를 가진 교사라면 그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그 시간에 다른 가치 있는 학습활동에 몰입하는 것이 맞습니다. 보통의 무난한 처신으론 위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의만 보이거나 할 법한 상황이었죠.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선생님들이 경쟁적으로 남보다 더 많은 실적물을 포트폴리오에 담고자 하는가 하면 표지를 알록달록하게 장식하며 동료들과 차별을 꾀하려 애쓰시는 것이었습니다. 점수를 0.1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생각인 거죠. 우리가 집을 떠나 거기서 그런 고생을 자처한 까닭은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지 점수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점수라는 것은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사 연수가 그러하듯 그 연수도 이수 시간을 채워 과정을 수료하는 게 관건이지 점수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었어요. 더구나 포트폴리오 제출은 점수 비중이 아주 작은 부가항목이었는데도 자기발전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그 사소한 영역에서조차 최고점을 받기 위해 애쓰시는 젊은 선생님들을 보면서 현재와 미래의 교직사회에 대한 어떤 씁쓸한 기우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영어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은 대부분 20~30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우리 때와 달리 교대나 사대에 들어가기도 어려운데다가 졸업 후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단에 서기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사실 우리 시절엔 교사되기가 쉬웠습니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마침내 교단에 서신 우리 젊은 선생님들은 교직에 대해 우리 선배들과는 차별화된 자긍심과 프라이드를 가져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른 시기의 학창시절부터 교사가 되기까지 우리 선생님들의 삶이 쓸모를 쫓는 치열한 경쟁으로 일관되어서 혹 삶과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결여될 수도 있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품어 봅니다. ‘승진에 관심을 품고 이런저런 스펙이나 점수 관리에 열심이신 젊은 선생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때는 40 줄 가까이 돼서 승진에 눈을 떴지만,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발령 받자마자 승진 준비하거나 심지어 교생실습 때부터 담당 지도교사에게 어떻게 하면 승진할 수 있는가 묻는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젊은 선생님의 세태에 대한 나의 통찰이 정확하다 할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선생님들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인간은 항상 시대의 인간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살아남기 위한 다툼으로 점철될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경쟁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습관으로 자리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분들이 교사가 되면 교직생활도 하나의 각축장으로 여겨 동료를 제치고 승진의 사다리를 한 칸씩 오르는 것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간의 자기 삶은 내내 경쟁을 쫓아 왔는데, 임용고시를 통과해 마침내 교직에 발을 내딛으니 경쟁이 없으니 허전한 것일까요? 그래서 승진이라는 교직생애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일찍부터 뛰어드는 것일까요?

그저께 교육청 연수에 참여했더니 연수에 앞서 담당장학사가 교육자료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젊은 교사를 소개합디다. 자료전에서 우리 도의 교사가 대통령상을 받는 것이 40년 만에 처음 있는 쾌거라 합니다. 수상자들은 모두 이삼십대의 젊은 교사들이었는데 단상에 선 그 교사는 이 영광스러운 상을 타기까지 자기네들의 나름의 노하우와 눈물겨운 노력의 여정을 피력하였습니다. 장학사님께서는 우리 도의 영광이고 우리 교육청의 영광이라며 그 빛나는 전과를 칭송해 마지 않으셨지만 좌중의 우리 선배교사들은 씁쓸한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가 대통령상 타기 위해 2시간밖에 잠 안 자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 자랑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들려오는 후문이 좋지 않았습니다.

교사든 누구든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열심히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단에 서기 위해 선생님이 되었는데 교단에 서자마자 교단을 빨리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승진제도라는 괴물이 존속하는 한 이 교직은 희망이 없습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교사의 초상이 이러한 교단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습니다.아파야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젊음은 아픔입니다. 교단에 첫 발을 내디딘 교사는 일단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아야 합니다. 이런저런 좌절과 갈등을 느끼지 않는 교사는 참된 교육자가 아닙니다. 교사의 존재론은 아픔에 있습니다. 승진이라는 물신(物神)을 쫓는 데 아파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실존적 삶에 아파해야 합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선생이라는 사람이 승진이라는 쓸모를 쫓는 순간 스승이기를 그칩니다. ‘쓸모아픔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선생님들에게 마르크스를 권하고 싶습니다.

 

The more you have, the less you are and the greater is your alienated life. - Marx

쓸모를 추구하면 할수록 당신다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삶은 더욱 소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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