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영화 이야기

영화 [역린]에 대한 비평글

리틀윙 2014. 5. 24. 23:42

며칠 전에 네이버 밴드에 올렸던 글을 다시 고쳐 써 본다. 개봉 초기에 이 영화를 봤는데 기대와 달리 실망이 너무 컸다. 그런데 이 영화가 연일 극장가에서 흥행몰이를 해가고 있다니 너무 황당하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는 분이 많을 것 같아 원글을 보강해 올려 본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평론은 간단히, “해병대 출신의 임금이 조선 최고의 킬러(살수)를 물리치는 SF 활극으로 요약된다.

 

세간에 소개된 대로 이 영화는 정조 원년(1777) 728일에 있었던 정조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함께 암살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역사적 팩트를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뻔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엮어가기가 원천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난점을 고려할 때 그래도 나름 박진감은 있었고 플래쉬백 기법을 써서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며 주된 인물의 심리 변화를 풀어나가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현빈빼면 아무 것도 없는 졸작이다. 무엇보다 스토리 전개가 너무나 조잡하고 비상식적이다.

 

역모가 한창 진행 중인 때에, 그 핵심세력으로 조선군대의 8할을 장악하여 임금을 죽이기 위한 출정의 준비를 하고 있는 구선복 장군 진영으로 임금이 달려간다. 장군에게 다가가는 임금 앞을 가로 막는 장군의 심복을 임금이 단 칼에 베어 버린다. 총사령관의 심복이면 무예가 출중할텐데 어찌 문약한 임금에게 한 방에 고꾸라지는가? 이 황당한 장면에 관객이 수긍한다면 그건 정조임금이어서가 아니라 해병대출신의 현빈이기 때문이 아닐까? 반란의 기운이 드센 가운데 고립무원의 상황에 있는 임금이 딸랑 보디가드 몇 명만 데리고 반란 수괴의 품으로 향하는 것도 상식 밖의 일일뿐더러 자기 눈앞에서 심복을 죽인 싸가지 없는 임금에게 설득을 당해 임금 편으로 돌아서는 것도 황당하다.

 

 

 

 

더 이상한 것은, 쿠데타 군이 임금에게 투항했고 역모가 발각된 상황에서 암살대가 왕궁으로 침입하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도 어찌어찌 해서 최고의 살수가 임금의 방까지 진입하여 임금과 칼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 전투 씬에서 결국 정조가 이기는데 이 일련의 상황들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임금이 해병대 출신의 강인한 배우라는 이미지라는 최면이 발동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정조 임금이 쌈을 얼마나 잘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조 분을 맡은 현빈은 해병대 출신이다. 그리고 잘 생겼다! 현빈은 최고다. 현빈은 왕이다! 이렇듯 이 조잡한 영화는 관객을 정신분열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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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모 가담에 있어 구선복 장군의 포지션은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조가 구선복 장군에 대한 품는 극단적 반감은 선명하게 표출되고 있는 바, 구선복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구선복의 가문은 대대로 병마절도사, 훈련대장, 병조판서를 지낸 무반 명가로서 노론에 속해 있었다. 정순왕후와 노론 정치가들이 정조를 거세게 공격할 수 있었던 것도 구선복이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좋은 내용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는데 영화에서도 정조의 입을 통해 이와 비슷한 말이 언급된다.

 

정조는 구선복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위 16(1792) 4역적 구선복으로 말하면 홍인한보다 더 심했다매번 경연에 오를 적마다 심장과 뼈가 모두 떨리니 어찌 차마 하루라도 그 얼굴을 대하고 싶었겠는가라고 토로했다. 정조는 (구선복)가 병권을 손수 쥐고 있고 그 무리들이 많아서 갑자기 처치할 수 없었으므로 다년간 괴로움을 참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극도의 인내로 정국을 파탄내지 않고 끌고 갔던 것이다.

[중앙선데이2010.07.15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에서 인용

 

 

그러나 구선복은 임금의 선친을 죽인 천인공노할 사건에 가담했으며 그것도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뙤약볕 아래 죽어갈 때 칼 차고 그 현장을 칼 차고 지킨 인물이었다. 이러한 원죄 때문에 구선복은 정조 천하에서는 결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때문에 구선복이 정조 재위 이후에 수시로 일어났던 역모 사건에 가담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조는 재위 165역적 구선복의 일은, 그의 극도로 흉악함을 어찌 하루라도 용서할 수 있겠는가만 역시 그 스스로 천주(天誅:하늘의 주벌)를 범하기를 기다린 연후에 죽였던 것이다고 말했다. 부친을 죽음으로 몬 인물이지만 사사로운 감정으로 처벌하지 않고 스스로 법망에 걸린 후 처벌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정순왕후가 정조의 동생 은언군을 죽이기 위해 시작된 언문전교 사건은 노론 숙장(宿將) 구선복 일가를 몰락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고, 거꾸로 노론의 군부 한 축이 무너지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실로 하늘만이 알 수 있었던 대반전이었다. (위와 같은 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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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출신의 현빈씨가 군인으로서 상식에 맞지도 않은 오버액션을 한 것도 지적해야 한다.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벌이는 육탄전에서 임금이 활을 들고 원거리 사격(활쏘기)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것도 지붕 위에서 적의 사수가 임금의 얼굴을 스치는 조준사격을 가해오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 긴급한 상황에서 임금의 보디가드는 한 명도 안 보이고 - 역모의 주된 세력이 투항한 상황에서 - 해병대 출신의 강인한 임금은 스스로 옥체(보디)를 가드한다. 조선 최고의 킬러가 임금 앞에 쓰러지고 날 때야 비로소 경호원들이 도착한다.

 

반란의 전모가 밝혀져 임금의 궁궐(존현각)로 킬러들이 다가오고 있을 때 임금이 취해야 할 상식적인 처신은 뭘까? 말할 것도 없이 옥체를 숨기는 것이다. 연평도해전 때의 이명박이처럼 지하벙커로 잠입해야 한다. 이명박이는 궁궐에서 수백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가 벌어짐에도 헬멧 쓰고 숨는데 정조란 임금은 웬 생쇼를 그렇게 벌이는가? 가히 심형래의 우뢰매를 방불케 하는 그 쇼를 배치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해병대 출신의 미남배우가 상식대로 몸을 숨기고 보디가드들이 악당들을 물리친다면 이 영화의 흥행이 보장될까?

 

 

그렇다. 이 영화의 볼거리는 너무 잘 생긴데다가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현빈이라는 배우의 특별한 캐릭터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현빈의 외적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조잡하게도 현빈의 벗은 상반신을 자주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 시작부터 현빈이 웃통 벗고 팔굽혀펴기를 한다. 얼마나 황당한가? 존현각이 무슨 헬스장도 아니고 조선시대의 임금 가운데 존귀한 옥체를 드러내놓고 푸샵 해대는 미친 놈이 과연 있었을까? 더구나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임금 못 씹어 안달 난 인간들이 궁궐에 수두룩한 상황에서? 이건 상식 밖의 시츄에이션이고 감독의 이러한 발상은 쓰레기 포르노그라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현빈이 벗지 않았으면 여성관객의 입소문도 줄을 잇지 않았을 것이고 대박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현빈은 등장하는 모든 영화에서 벗을 것이다. 벗지 않는 샤론 스톤을 생각할 수 없듯이 복근을 노출하지 않는 현빈 영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교육자로서 내가 그나마 이 영화에서 관심 갖고 지켜본 포인트는 봉건조선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된 아동학대 현상에 대해서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 갑수(정재영 분)와 을수(조정석 분) 그리고 월혜(정은채 분)는 모두 고아 출신으로 조선중기 이후로 치열하게 전개되어온 당파싸움 속에서 소모품으로 쓰이기 위해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다. 이들 중 갑수와 을수는 정조 임금의 정적인 노론 진영과 내통하는 노예 상인(조재현 분)에 의해 갖은 학대를 겪으며 조련된 뒤 결국 정조의 암살에 가담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이들 외에 아역으로 등장하는 복빙은 노론과 반대편에 있는 혜경궁 홍씨(정조의 어머니)의 꼭두각시로서 홍씨로부터 홍씨와 견원지간인 정순왕후를 독살하라는 분부를 하달 받는다. 발달단계상 유치원 아이에 불과한 복빙이 태연자약하게 그 어려운 미션을 수행해낼 리는 만무하고 간악한 정순왕후는 복빙을 취조하여 그 배후 인물이 홍씨라는 자백을 받아낸다. 만약 일이 잘 못 풀려 정조가 암살되었다면 홍씨와 복빙 또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어차피 홍씨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어린 복빙의 운명은 애당초 홍씨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일까? 불후의 여성 한글작품 [한중록]의 저자이자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비참한 최후를 당한 사도세자의 아내로서 우리에게 비운의 여성으로 연민과 존경을 받는 혜경궁 홍씨가 너무도 무책임하게 복빙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물론 아동인권이란 개념이야 그 당시엔 선진된 유럽사회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유교사상에 기반한 그 놈의 충효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봉건조선사회에서 자행된 아동학대의 수준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미개하다 못해 극악무도했다. 조선 후기 한글 소설의 대명사인 [심청전]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앞 못 보는 아버지 - 말이 아버지지 세상을 살만큼 산 노인네 - 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꽃다운 나이의 딸자식이 자기 생명을 바친다는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미개하지 않은가? 어린 심청의 가상한 효심은 감동이라 가르치고 그 이면에 있는 심각한 아동학대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이 21세기 개명 사회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 점에서 그 미개함이 현재도 진행 중인 것은 아닐까? 진도 앞바다라는 현대판 인당수에 수백 명의 심청이들을 빠뜨려놓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 말도 안 되는 작금의 사태가 미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영화 속에서 갑수와 을수 그리고 복빙이 겪은 아동학대나 복빙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월혜의 감동적인 노력은 현빈의 명품 복근이나 황당무계한 전투씬에 가려져 그저 빈곤한 스토리를 채우기 위한 양념 정도로 퇴색되는 것이 유감이다.

나의 글을 읽은 많은 여성 독자들이 그럼에도 현빈을 보러 극장 가야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같이 영화 본 우리 마누라도 극장 문을 나서면서 이 영화가 재밌다고 했다. 속으로, ‘씨바, 현빈이가 아니었어도 재밌었겠냐?’라고 반항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눈요기로 전락한 상업영화를 개탄하여 저 유명한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Guy-Ernest Debord)스펙터클한 사회라는 개념을 남겼다. 스펙터클한(spectacle) 볼거리에 현혹되어 현대인들은 구경꾼(spectator) 또는 방관자가 되어 간다. 볼거리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대중의 이성은 마비되어 가고 오직 감각에만 의존한다. 권력의 입장에서는 환호할 일이다. 참여자는 줄어들고 방관자가 늘어나니. ‘역린이 흥행할수록 세월호는 점점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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