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인의 영화 이야기

사운드 오브 뮤직

리틀윙 2012. 6. 23. 22:22

  사운드 오브 뮤직 Sound of Music. 1965년에 만들어져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영화다. 한국인 치고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잘 없을 것이다. 뮤지컬 영화의 대명사로서 [사운드 오브 뮤직]은 주옥같은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는 영화보다 음악이 더 유명하고 더 훌륭하다. 사실상 음악을 빼면 이 영화는 미천한 신분의 청순 여인이 백마 탄 기사를 만나 사랑에 빠져 해피엔딩을 맺는다는 진부한 신데렐라 콤플렉스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로저스(Richard Rogers)에 의해 작곡된 음악들은 하나같이 훌륭하다. <도레미 송><에델바이스>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등장하여 너무 유명하고, <외로운 염소치기 Lonely Goatherd><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 My Favorite Things> 같은 곡들의 멜로디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특히 <My Favorite Things>는 재즈의 거장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 러닝타임 1시간에 육박하는 대곡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 중에서 글쓴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my favorite thing)을 꼽으라면 <the Sound of Music>이라 하겠다. 음악을 사랑하는 초등교육자로서 내가 특별히 이 곡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부터 이명박 정부의 집권기 5년 동안 벌어지고 있는 그릇된 교육정책을 비판하고자 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Sound of Music]이 세 번 나온다. 영화제목과 같은 이름의 곡인만큼 이 음악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대변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 부분과 영화가 끝날 때 엑시트 곡으로 이 음악이 배치된다. 모든 영화는 도입과 결말 씬이 만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아름다운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음악소리와 함께 산이 활기를 띤다. The hill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로 시작하는 <Sound of Music>이 흘러나온다마리아 수녀(줄리 앤드류스 분)가 봄기운이 완연한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 노래를 부르는데, 자연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리아의 자유분방한 성향이 규율과 통제로 돌아가는 수녀원 생활과 맞지 않아 이 여인의 삶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트랩 대령 일가가 독일군의 감시를 피해 알프스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엔딩씬에서는 <Climb Ev'ry Mountain>이 웅장한 오케스트라 반주와 합창단의 노래로 흘러나온다. 알프스의 대자연과 함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음악 그리고 자유를 찾아 산 능선을 넘는 행렬의 롱테이크 씬은 장관 그 자체이다. 이 음악이 끝나자마자 <The End>라는 글자가 보이고 이윽고 출연진의 이름이 적힌 엔딩크레딧과 함께 <Sound of Music>이 흘러나오면서 이 영화의 예술성이 완성되니 문자 그대로 '화룡정점'의 대미를 이 곡이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과 끝 부분 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중반부에 남녀 두 주인공의 갈등관계가 해소되며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장면에서 <Sound of Music>이 배치된다. 귀족 집안의 가정부로 고용된 마리아 수녀는 아이들 양육 방식을 놓고 트랩 대령과 충돌을 벌이는데, 피고용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감히 주인어른에게 대들었으니 어떤 결과가 빚어질 지는 뻔한 이치였다. 자신이 먼 길 떠난 사이에 뼈대있는 가문의 자기 자식들을 모두 허클베리 핀으로 둔갑시켜 나무에 올라가 장난질 하도록 한 가정부를 용서할 귀족이 어디 있겠는가. 대령이 화가 폭발하여 마리아 보고 당장 보따리 싸라고 하는데,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음악 소리(sound of music)’가 들려온다. 이 집에서 사람 목소리 외에 들리는 소리라곤 자신이 아이들을 집합시킬 때 사용하는 호루라기 소리밖에 없었으니 대령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뿐만 아니라 그 음악소리는 자신이 한때 즐겨 불렀던 노래다. 대령은 기타를 들고 아이들 앞에서 한 곡 뽑는다. 아이들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다. <Sound of Music>으로 모든 것이 반전을 이룬다. 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도 그러하고 우리의 주인공 마리아의 해고도 보류되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스토리 전개상 두 사람은 얼레리꼴레리 관계로 접어들어야 한다. 수녀원에서조차 왕따 취급받으며 살아온 마리아가 남작부인이라는 화려한 스펙과 미모를 자랑하는 약혼녀를 물리치고 당당히 안방마님 자리에 입성한다.

 

(이 대목에서 이 글도 '반전'을 꾀해야 한다.)

모든 영화는 일정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는 법이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음악의 힘'이라 생각한다. 대령의 무식한 훈육방식으로 삐뚤어져 있는 아이들의 동심을 되찾은 마리아의 노력도 음악이고, 얼음같이 차갑고 돌같이 딱딱한 대령의 마음을 녹인 것도 음악소리였다. '음악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어린 시절 자신이 애착을 가졌던 선율이 들려오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옛 추억에 잠기게 되고 그간 숨 가쁘게 달려온 일상을 되돌아보며 진정 인간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반추하게 된다. 음악은 음악 행위를 하는 사람이건 우연히 그 소리를 듣게 되는 사람이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모둠별로 리코더 잘 불기 시합을 한다고 예고하니, 쉬는 시간에 모둠끼리 연습이 한창이다. 리코더 연주가 서툰 한 아이를 모둠 친구가 돕고 있다. 아이들이란... 

 

 

우리 삶에서 음악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초등학교다. 나는 이웃교실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 들려올 때 행복에 젖는다. 음이 잘 맞지 않아 불협화음이 들려오면 아마 1차시 수업인가하고 생각하며 그 어눌한 음악소리에 빙긋 웃음을 짓는가 하면, 아주 세련된 하모니가 들려오면 그 반 선생님이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에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특히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은 절정을 이룬다.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고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음악소리가 멀리 퍼져가는 탓도 있지만, 교육과정 구성상 이 무렵에 합주나 합창 곡이 많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의 교육열정이나 아이들의 향학열이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고조되어있는 여름철 초등학교에서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는 교실이 있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치르는 6학년 교실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 해마다 6월말 또는 7월초에 전국단위의 일제고사를 쳐온 6학년 교실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종되고 없다. 아이를 줄 세우고 학반을 줄 세우고 학교를 줄 세우는 이 일제고사 시스템 하에서 교육과정의 변칙 운영은 불가피하다. 모든 수업은 국영수 3개 과목에 맞춰 이루어지며 탐구형 수업이 아니라 문제집 풀이 위주로 이루어진다교육청에서 발견 학습이니 자기주도적 학습이니 아무리 떠들어대도 시험 점수 올리는 데는 문제집 위주의 학습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장학 기관이 한편으로는 '창의/인성교육'을 부르짖으며 다른 한편으론 일제고사 성적을 강조하는 것은 이 나라 정신분열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After 1st break, test!

After 2nd break, test!

After 3rd break, test!

Test, test, test!

 

6학년 한 학생이 남긴 영어일기다. 1교시 마치고 테스트, 2교시 마치고도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 일제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전국의 6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시험만 친다.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을 감시하기 위해 며칠 전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학교를 순시한다는 통보가 왔다. 현장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코미디다. 6학년 교육과정을 이렇게 파행적으로 운영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다름 아닌 교육청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일제고사를 앞두고 열린 평가담당자 회의에서 교육장이 교사들에게 시험감독을 너무 철저히 하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교육장부터 관내 학교의 성적이 높게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은근슬쩍 편법을 강요하는데, 교육자적 양심에 입각한 정상적인 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밥 빨리 먹기 시합을 앞두고 뒤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등하라고 주문하면서, 앞으로는 밥 빨리 먹으면 건강에 해로우니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밥 빨리 먹기 시합이나 일제고사나 아이들 건강이나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하루 종일 문제집 푸는 아이들의 불행은 물론, 엄청난 사교육비와 공교육비의 낭비와 함께 이 한심한 정권이 유일하게 목적을 품는 국가경쟁력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소모적인 짓거리일 뿐이다. 생각해보라우리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이 다음 중 ~~가 아닌 것은?이라는 객관식 형태로 주어지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를 잘 푸는 자동인형 같은 사람이 회사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베토벤 될 아이도 셰익스피어 될 아이도 모두 문제집 위주로 돌리는 이 나라에서 어찌 과학/문학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겠는가?

 

백년지대계로서 조기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성과 덕성과 체력을 겸비한 전인격을 갖춘 아이들을 기른다면 학교폭력이나 범죄도 현저히 줄 것이며 똑똑한 재목이 길러져 이 나라를 빛낼 것이다. 국가경쟁력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재의 창의성과 비판력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자질은 오직 예술 문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길러진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종되고 없는 교실에서는 공부 못 하는 아이는 물론 똑똑한 아이의 천재성도 말살되고 만다. 이래저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이 미친 짓거리가 언제쯤이면 멈춰질 것인가. 누가 이 비를 멈출 것인가? Who’ll stop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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