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교사에게

비움과 채움

리틀윙 2014. 2. 22. 23:32

   교직의 가장 큰 매력은 방학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교사인 사람 외에 이렇게 긴 휴가 기간을 갖는 직업인은 잘 없을 겁니다. 대통령도 못 누리는 호사가 교사의 방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방학은 학생을 위한 방학이지 교사를 위한 방학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이든 교사든 일반인이든 사람은 '휴가'를 통해 의미있는 변화와 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논거로 '비움과 채움'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방학은 영어로 ‘vacation'인데, 라틴어로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하는 '바카티오(vacatio)'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유사 어원으로 라틴어 'vacuus'텅 비우다란 의미인데, 이로부터 파생된 단어가 vacant(텅 빈)vacuum(진공)입니다. 방학(휴가)의 프랑스어에 해당하는 바캉스(vacance) 또한 이 어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이처럼, ‘방학이란 말은 어원상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또는 텅 비우기란 뜻이라는 걸 기억해 둡시.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에 찌들어 있는 우리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은 vacation을 맞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한 심리에 빠집니다. 이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곧 발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사고가 언제 진정으로 성장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독서실에서 머리 싸매고 열공하면 시험이라는 특별한 기제에는 이로울지 모르지만 정신적·지적 성숙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교육학 용어로 드릴(drill)’이라 일컫는 이러한 학습노동은 인간이 인간답게 성장하는데 오히려 해로울 따름입니다차라리 인간은 모든 것을 텅 비우고(vaccus) 일상에서 벗어나 기차에 몸을 싣고 여행을 떠날 때 한층 성장합니다. 긴긴 겨울 방학 뒤에 다시 만났을 때 마치 낯설게 느껴질 만큼 부쩍 성장해 온 아이들은 대개 이런 경험을 한 경우입니다. 반면, 학원이나 독서실 따위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일상의 쳇바퀴를 못 벗어난 아이들에게선 그런 성장의 징후를 못 느낍니다.

3수험생이라면 몰라도 초등학생들의 방학은 텅 비우게 해야 합니다. 방학 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불안해서 학원을 평소보다 2배로 돌리고 하면 아이를 망칩니다. 성장하는 아이의 그릇은 채울 때보다 비울 때 커집니다. 그리고 이 비움을 통해 학생은 긴 호흡으로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길러갑니다. 멀리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개구리의 동작을 퇴행으로 보지 않듯이, 먼 길 가는 여행자가 잠시 쉬는 것을 게으름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요. 학업을 수행하는 것은 장거리 여행이고 마라톤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초반부터 전력으로 달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초등학생 시절에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학급에서 우등생 소리 듣던 아이가 상급 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에 염증을 느끼고 학교생활 부적응아가 되는 안타까운 경우를 최근 빈번하게 봅니다.

비움과 채움의 역설은 놀랍게도 학습과 수면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잠자는 동안 우리의 두뇌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뇌는 우리가 낮에 학습한 것을 임시로 저장해두었다가 수면시간에 기억으로 완성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 낮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정보의 양이 많으면 저장하고 기억하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낮에 많은 것을 학습했다면 그 날 밤에 더 많이 자야 하는 겁니다. 이런 까닭에 수면은 또 다른 학습 과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는 학생 치고 학업성적이 썩 우수한 경우가 잘 없는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중학생 시절엔 자기 몸을 학대해가며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한계가 드러납니다. "1시간 덜 자면 장래 직업이 바뀐다."는 고3교실에 붙은 천박한 구호와는 달리,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선 잠을 많이 자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공부와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일도 그러합니다. 일의 능률은 휴식이 뒷받침 될 때 생겨납니다. 상식적으로도 쉬어야 일을 할 수 있죠. 실로 역사상 위대한 발견은 대부분 '휴식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도 산책길에서였고 베토벤은 밤길을 거닐다가 <월광소나타>를 작곡했습니다. 학생이든 어른이든 인간의 그릇은 비울 때 제대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릇의 존재론은 무엇을 담기 위한 것인데,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 온 낯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스웨덴 초등학교 아이들 모습. 카메라를 들이대자 '이 모습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한다. "우리는 협력해서 이렇게 용감한 동작을 취할 수 있어요"라고 자랑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그렇게 성장해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만큼 한국아이들의 현실이 슬펐다.

이 사회의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그리고 똑똑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의 비결은, '경제력'이 아니다. 그저, 아이들 충분히 놀게 하고 충분히 잠 자게 하고 적당히 그리고 즐겁게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예산 투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이 단연 세계 최고다. 사교육비 생각하면 북유럽의 나라 두 배는 될 거다. 이 어리석은 나라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가며 아이들 병들게 하는 것이다.

 

 

눈치 채셨겠지만, ‘채움과 비움의 역설이나 거기서 파생되는 일과 휴식’, ‘학습과 수면의 관계 또한 일견 상극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상호밀접하게 연관된 속성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정리가 됩니다.

 

아메리카인디언들은 급히 말을 달리다가도 한 번씩 멈춰 서서 반드시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너무 급히 달린 나머지 자신의 영혼이 못 따라올 것을 염려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은 죽자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그 결과 눈부신 경제적 성장은 이뤘지만 우리의 영혼이 미처 못 따라와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학교가 황폐화되어 갑니다. 아이들이 병든 사회의 미래가 밝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우선 아이들에게 놀이터와 방학을 돌려주었으면 합니다. 실컷 뛰놀게 하고 나름의 그릇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끔씩 텅 비우게 하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은 방학 때 아이들 학원 덜 보내고 선생님들은 방학숙제를 적게 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