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교사에게

좋은 수업을 위해 교사가 힘쓸 것은

리틀윙 2014. 2. 2. 00:03

   교사는 학생을 교육하는 사람입니다. 교사가 실천하는 교육은 크게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으로 나뉩니다. 이 둘은 수업생활지도라는 용어로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가 교사의 본업에 해당합니다.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한 역량이나 자질은 이 두 가지에 관한 것이 전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 둘 가운데 우선 수업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 직분인 수업과 관련하여 한 교사의 역량을 평가할 때 교육전문가의 위치에 있는 분들의 평과 학부모 또는 학생의 평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장학사나 연구사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수업명인따위의 타이틀을 자랑하는 교사의 수업이 학생들로부터는 인정을 못 받는가 하면, 수업과 관련한 아무런 실적이 없는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됩니다. 교사의 수업능력에 관한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것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일지라도, 그 전문가적 관점이 학생의 소박한 관점에 비해 반드시 정통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전자보다 후자의 관점이 더 힘 있는 사실성을 담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 수업에 관해 내가 품는 문제의식의 전부라 하겠습니다. 그 인과관계의 배후에 있는 리얼리티를 솔직담백하게 조명함으로써 진정한 수업전문가가 되기 위해 젊은 교사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수업에 관한 전문가의 관점보다 학생의 관점이 더 정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전자의 관찰은 일회적인 반면 후자는 상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수업공개의 허구성이 지적되어야 합니다. 한 두 차례의 수업 시연을 통해 한 교사의 총체적 수업역량 외에 교육자적 자질이나 헌신성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공개수업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평소에 좋은 수업을 하는 교사가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위축된 수업을 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교사의 수업을 경험하는 학생의 입장에선 돌발적이거나 이례적인 변수로 인해 판단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교사의 수업을 보는 두 관점의 차이는 수업을 잘 하는가잘 가르치는가의 차이로 요약될 것입니다. 공개수업 따위에서 수업 전문가들이 수업자를 평가하는 시선은 대개 수업을 얼마나 매끄럽게 진행해 가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학생들의 관심사는 얼마나 알기 쉽게 가르치는가하는 것이지요. 요컨대 전자는 수업의 형식에, 후자는 수업의 내용에 포커스를 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수업을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이 별개의 것일 수 없습니다. 문제는 공개수업에서 다루는 수업제재가 임의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수업자가 제일 자신 있는 걸로 선정한 것이기에 얼마나 알기 쉽게 가르치는가와 관련한 일반성, 즉 내용적 측면은 은폐되고 수업의 형식적 측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수업을 받는 학생은 해당 교과목에 관한 교사의 일반적인 수업역량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교사의 수업역량에 관한 가장 정확한 시선은 학생의 몫이라 하겠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잘 한다 못한다 하는 것은 그리 정교한 전문가적 식견을 동원할 필요 없이 상식적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해당 교과에 대한 총체적인 지적 역량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수업기술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습니다. 좋은 수업이 과연 테크닉이나 전략·전술의 문제일까요? 그런 것들은 단지 부착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유능한 음악교사가 되기 위해선 유능한 음악적 자질을 지녀야만 합니다. 그것은 상식적 차원의 음악적 역량이지 수업기술의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선 영어와 관련한 총체적 역량을 키울 일입니다. 영문법 실력이나 어휘력이 빈곤하거나 발음이 안 좋은 영어교사가 수업 테크닉이 뛰어난들 어찌 유능한 영어수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똑같은 역량을 가졌더라도 보다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적 측면조차 교과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이 형성될 때 부수적으로 따라옵니다. 한 분야에 대해 정통한 지적·정의적·심동적 역량을 지닌 교사는 수업설계를 효율적으로 하여 학생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습니다.

 

교사에게 수업보다 더 중요한 본분은 없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수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수업을 스스로 모니터링을 하며 수업을 분석하고 반성하는가 하면, 혁신적인 수업모형이나 수업이론을 섭렵하기 위한 자기연찬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교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수업을 위해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자질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장에선 이것을 간과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이 자질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전문가를 잘 볼 수 없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스승으로서 훌륭한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의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업기술을 고민하기보다는 삶을 고민해야 합니다. 교사 자신의 삶과 학생이 처한 삶, 한마디로 이 세계를 보다 정확히 바라보는 관점을 길러야 합니다. 수업연구 실적을 쌓기 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 교양을 쌓아야 합니다. 교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과에 대한 안목을 넓혀야 합니다. 사회교과를 가르치기 위해 사회교과서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에 대한 폭넓은 소양을 길러야 합니다. 이러한 소양은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며 교직생애 평생토록 분투해야 할 문제입니다.

33년 교직에 몸담은 한 역사 교사가 공개수업을 했습니다. 수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많은 참관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수업 후에 이웃 학교의 한 교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 훌륭한 수업을 준비하는 데 몇 시간을 들였나요?” 역사교사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평생 이 수업을 준비했고 모든 수업을 평생 준비합니다.” 수호믈린스키의 책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수호믈린스키는 평생토록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사가 노력할 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다소 길지만 이 글귀 속에 수업에 관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준비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독서다. 날마다 책을 읽으면서 한평생 책과 사귀어야 한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하루도 멎지 않고 흘러서 사상의 바다로 들어간다. 독서는 내일의 수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의 내면적 필요와 향학열에서 나온다...... 당신이 가르치는 학문 영역에서 교과서에 담겨 있는 지식은 일차적인 것이 돼야 한다. 당신이 학생에게 가르치는 교과서의 기초 지식은 당신의 학문 지식이라는 큰 바다 속에 있는 작은 물방울이 돼야 한다....... 우수한 교사의 강의 능력은 늘 독서하면서 쉼 없이 지식의 바다를 채움으로써 높아진다...... 이 모든 것이 독서로 달성된다. 교과서라는 물방울은 세월이 한 해씩 지나감에 따라 교사라는 큰 바다 속에서 더욱 작아질 것이다. 여기서 이론적 지식의 양이 늘어가는 것만이 아니다. 양은 질로 바뀐다. 자그마한 빛발들이 모여 더 선명한 빛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교과서에 들어 있는 배경 지식이 넓을수록 교수 능력의 기초가 되는 직업적 자질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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